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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망머리 앤 Feb 28. 2024

졸부의 꿈

                                    

 

     TV 드라마를 보면 신데렐라 이야기가 참 많다. 결혼이 무슨 인생의 로또라도 되는 양 혼인을 통해 단번에 부자가 된다는 참으로 판에 박힌 스토리이다. 그런데도 그런 드라마가 매번 시청률의 상위를 차지하는 것을 보면, 그만큼 사람들이 행운을 바라며 산다는 말일 것이다. 


그런데 이게 꼭 결혼에만 해당되는 이야기일까? 사실 따지고 보면 복권을 사거나 주식투자를 하는 것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한 번의 행운으로 갑자기 부자가 되는 것을 꿈꾸는, 결국은 같은 맥락의 꿈이 아닐까?

 

난 지극히 현실적인 사람이라 개인적으로 그런 행운을 바래보질 않았다. 첫 아이를 임신하고 입덧이 너무 심해 2주 만에 8kg이 빠졌을 때, 그런 몸을 이끌고 병원에 밤 근무를 하러 가던 길에 딱 한번 복권을 사본 적이 있었다. 당첨되면 내일 당장 병원을 그만 둬야지 하면서, 병원 벽에 기대어 긁어 봤지만 될 리가 없었다. 사실 그때도 진짜 될 거라 믿어서 샀겠는가? 단지 가끔 주저앉고 싶은 내 의지 앞에 세상엔 공짜가 없으니 계속 이렇게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또 하나의 이유를 들이밀고 싶었던 것이리라. 여하튼 기본적으로 난 열심히 일하고 모아서 한 계단씩 올라가는 게 최선이라 믿으며 살았었다.

 

그런 내가 딱 한번 주식투자를 했었다. 동갑인 남편이 졸업도 하기 전에 집에 인사를 왔다가 친정 부모님께 직장부터 잡고 오라고 한 소리 들은 후에 서둘러 입사한 직장이 이동통신 회사였다. 그 회사에 특채 1기로 들어가는 통에 우리사주라는 것을 받게 되었는데, 돈이 없어서 엄청난 빚을 내다가 그걸 사들였다. 시골 출신인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 나도 졸업과 함께 돈을 벌어 남동생 대학학비를 대느라 막상 결혼할 때는 결혼비용조차 없었다. 남편도 2월에 졸업하고 3월에 결혼했으니, 정말 둘이 달동네에 방 한 칸 얻기도 힘든 처지였다. 그런 우리가 겁도 없이 빚을 내다가 사주를 산 건, 곧 그 주식이 20, 30배가 된다는 주위 사람들의 말에 잠시 홀려서였을까? 여하튼 돌보다 더 무거운 빚을 머리에 이고 26%에 달하는 이자까지 내가며 IMF를 통과했지만, 야속하게도 그 사주는 정말 죽은 듯 5년이 넘도록 미동도 하질 않았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화산이 폭발하듯 사주가 오르기 시작하더니, 끝내는 25배가 훌쩍 넘게 올라가 버렸다. 돈벼락을 이렇게 맞는 거구나! 우리가 바로 그 말로만 듣던 졸부가 된 거야? 정말 꿈같은 현실에 우리는 어안이 벙벙했다.

돈벼락을 맞은 기분, 일단 남편과 난 거의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남편은 직장에 가도 볼펜으로 책상만 두드리며 눈동자만 굴리다 왔고, 나도 병원에 나가 간호사로 일을 할 수가 없었다. 내가 뭐 하러 밤잠도 못자며 이런 고생을 하지? 결혼 후 두 아이를 낳으면서 일과 공부를 병행하며 그때까지 나름 열심히 살았었는데, 갑자기 공부는 뭐 하려 하나? 일은 뭐 하려 하나? 그동안 내 삶에 가치 있다 여겼던 모든 것들이 큰돈이 생기자마자, 곧바로 그 의미를 잃어 갔다. 좀 더 좋은 집을 사기 위해, 아이들을 안전하게 이동시킬 좋은 차를 사기 위해 열심히 해야 했던 그 모든 노력들이 갑자기 할 필요가 없어져버렸다. 


왜 복권에 당첨된 사람들의 90% 이상이 가정이 깨지고 결국은 마약 중독이나 도박으로 폐인이 돼 삶을 마감하는지, 그때 처음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처음부터 부자였던 사람에게 돈이 더 생기는 건 그저 돈이 더 많아진 것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가난한 사람에게 갑작스레 주어진 큰돈은 정말 독이 될 수 있었다. 사실 죽을 때까지 고민할 것 없이 자식 키우고 먹고 살기 위해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야 하는 삶, 그게 어쩌면 가장 행복한 삶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해야 할 이유가 없는 삶, 하지만 그런 사람에게도 매일 24시간은 주어질 것이고, 그럼 결국은 시간을 어떻게 죽이느냐 만이 숙제로 남을 뿐이었다.

 

한동안 밤잠을 못자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방향을 찾아 난 남편과 고민을 거듭했다. 어떤 이는 회사를 그만두고 주식을 다 팔아 강남에 빌딩을 샀다는데, 우리도 그렇게 살까? 


그때 남편 말이, 우리 나이가 이제 33살, 그런 큰돈을 갖기엔 너무 어리다. 어린 나이에 너무 많은 돈을 갖게 되면 그건 돈이 아니라 똥이다. 똥은 파리를 부르고, 그 파리들이 똥을 부패시키듯이, 결국은 그 돈이 우리 삶을 망가뜨릴 것이다. 


그래서 감행한 이민이었다. 언어도 문화도 모든 것이 낯선 곳에서 삶의 긴장을 유지한 채 계속 노력하며 살기 위해. 반은 뚝 떼어서 주위 가족들 좀 도와주고, 반은 남겨 캐나다로 가 새로운 삶을 위한 종자돈으로 쓰자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둘 다 동시에 직장에 사표를 내던지고, 캐나다로 이민을 와서 밴쿠버에 자리를 잡았다. 생각처럼 영어가 빨리 늘진 않았고 거기에 문화적 충격까지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그래도 믿는 건 돈이었다. 아직 버틸 돈이 충분하니 천천히 가자 위로하며. 


그런데 진짜 문제는 주식을 팔지 않고 왔다는 데 있었다. 둘 다 직장에서 받은 퇴직금과 집 정리를 하고 보니 당장 쓸 돈이 충분했다. 무엇보다 회사 동료들이 곧 상장이 될 거니 그때 정리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하는 통에, 그냥 한국에 주식을 묻어놓고 왔던 것이었다. 


하지만 이동통신 회사들의 합병 문제가 표면화 되면서 그만 주식이 곤두박질치고 말았다. 장외에서 비싸게 사들여 다시 싸게 내다 파는 수법으로 합병할 회사의 주식가치를 떨어뜨린 다음, 좀 더 유리한 합병을 시도하는 그런 시나리오가 물밑에서 진행되었다. 그 통에 손써볼 겨를도 없이 우리가 가진 주식이 순식간에 바닥을 쳐버렸다. 그런 일이 있을 줄도 모르고 주식만 믿고 이민을 와버렸으니, 우리 가정은 정말 풍전등화와 같은 신세가 되고 말았다.

 

졸부가 졸지에 깡통을 차는 기분, 그건 높은 곳에서 갑자기 뚝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꿈에서 추락할 때면 손발이 움직이질 않아 더 두려운 것처럼, 떨어지는데 아무런 조치도 취할 수 없다는 무력감과 공포가 내 심장을 거머쥐었다. 


우린 그렇게 몇 십억 졸부가 되어 삶의 방향을 잃었을 때보다도 더 어둡고 혼란스러운 시간을 그때 다시 통과해야만 했다. 평소 나 자신을 상당히 긍정적인 사람이라 자부했었는데 그때의 난 결코 긍정적일 수가 없었다. 둘 다 직장도 없고, 영어도 못하고, 앞으로 나가려 해도 길이 보이질 않았고, 뒤로 다시 돌아가려 해도 그 사이엔 태평양이 놓여 있었다. 자신감이 바닥인 상태에서 믿었던 돈까지 없어졌으니 참으로 암담한 현실이었다. 


다시 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자려고 해도 머리에서 보글보글 열이 오르니, 잠 못 드는 새벽이면 혼자 정원으로 나가 그 열을 식혀야만 했다. 


그날도 새벽 3시쯤 정원에 앉아 머리를 식히고 있는데, 여느 때처럼 남편이 날 찾으며 뛰어 나왔다. 넋이 나간 사람처럼 정신을 못 차리고 앉아있는 나를 남편이 붙들어 세우더니, 내 어깨를 흔들었다. 진짜 너 맞아? 너 아니지? 뭔가 다른 게 둔갑해서 온 거지? 너 이런 사람 아니었잖아? 남편이 내 어깨를 흔들며 눈물을 억누른 목소리로 말하는데,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항상 바위처럼 꿋꿋하게 버티던 남편이었는데, 그때 느꼈다. 남편도 무척 힘들다는 것을, 이 사람도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정말 덜컥 겁이 났다. 이 사람까지 무너지면 우린 진짜 일어나기 힘들 텐데, 그래 내가 정신을 차리자, 차려야지!

 

그 당시 처음으로 마음의 가난이라는 것을 맛보았다. 남이 잘못 되었다는 이야기가 위로가 되고, 잘 되었다는 소식에 진심으로 기뻐해 줄 수가 없는, 마음의 가난은 그런 식으로 찾아왔다. 결혼하고 천원을 아끼며 살던 시절에도 진짜 마음까지 가난해져 본 적이 없었는데, 그때는 통장의 잔고를 떠나 정말 마음까지 가난해지기 시작했다. 


마음이 먼저 가난해지고, 그런 다음에 물질적인 가난이 소리도 없이 뒤를 따라 오는 거라고 난 생각했다. 그게 내겐 가난이 오는 순서로 보였다. 내가 마음의 가난을 여기서 못 이기면 난 진짜 가난해지고 만다. 그렇게 찾아드는 마음의 가난은 내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빨간 신호등처럼 내 눈 앞에 항상 켜져 있었다.

 

모든 것을 알았으면서도 왜 나를 이쪽으로 오게 했는지, 처음엔 내가 믿는 신을 원망했었다. 그런데 정말 신은 우리 가족이 이쪽에서 고통 받길 원하셨을까? 아니다! 분명 우리를 여기로 옮기신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나 이제부터 그 이유를 찾아야겠다! 


이렇게 마음을 바꿔 먹은 날, 내가 찾은 첫 번째 이유는 공원에서 두 딸들이 다람쥐를 쫒아 숲을 달리는 것을 지켜보면서였다. 내가 아무리 부자여도 딸들에게 사줄 수 없는 이 깨끗한 공기, 딸들은 이 나라에서 이 자연을 평생누리며 살겠구나. 아! 그래서 옮기셨구나! 참 감사하다! 


매일 밤, 난 내가 찾은 사소한 이유들을 늘어놓으며 감사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살다보니 어느덧 불평할 게 없는 삶이 되어 버렸다. 그렇게 찾은 감사의 이유들은 내 마음속 가난을 몰아내 줬고, 내 앞에 켜져 있던 빨간 신호등은 천천히 녹색 신호등으로 바뀌어 갔다.

 

사실 있다고 믿었던 돈도 진짜로 내가 만져본 것도, 세어본 것도 아니었다. 그냥 주식 곱하기 얼마 해서 계산기에 떴던 숫자를 내 돈이라 믿었던 것일 뿐. 밀물과 썰물이 들어오고 나가듯 그냥 때가 되어 그게 다시 나갔을 뿐이었다. 


아마도 그 돈이 내 영혼에 독이 되는가 보다. 그래서 다시 갖어 가셨나 보다. 그래도 적어도 본전과 이자 정도는 남겨 주셨으니, 사실 따지고 보면 크게 잃은 것도 손해 본 것도 없는 삶이 아닌가? 


남편 말대로 도박으로 번 돈은 도박으로 나가고, 주식으로 번 돈은 다시 주식 판에서 잃게 돼 있는 것이리라. 우린 그 모든 것을 한낱 꿈이라 여기며 다시 탁탁 털고 일어났다.

 

언젠가 병원에서 일을 하는데 동료 간호사들이 커피브레이크 타임에 만약 복권이 되면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복권이 되면 그 돈으로 이것을 할까 저것을 할까 다양한 꿈들을 늘어놓더니, 갑자기 나한테도 복권이 되면 뭘 할 건지 물었다. 


“나? 난 복권되기 싫어!라고 딱 잘라 말하자, 모두들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What?"이라며 내게 소리를 질렀다.

 

사실 나를 비롯해 세상을 살아가는 그 누구도 돈에 초연해질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난 이미 그 정상에 한번 가봤다. 그런데 풍선을 타고 단숨에 올라가 본 정상은 내게 행복 대신 현기증과 멀미만 안겨줬다. 어지러움에 비틀거리다가 균형을 잡기도 전에, 그만 풍선이 터져 다시 아래로 곤두박질치고 말았다. 


난 우리 가족이 그 추락에서 무사히 랜딩했다는 사실에 무엇보다 감사한다. 그리고 지금은 다시 옛날처럼 한걸음씩 오르고 있다. 이젠 서둘러 오르려고도 하지 않는다. 행복은 행운이라는 풍선을 타고 올라간 정상에 있는 게 아니라, 내 두발에 의지해 오르는 바로 이 여정에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안전한 길이 있는데, 내가 뭐 하러 다시 복권을 타고 저 하늘 높이 솟아오르고 싶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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