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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망머리 앤 Feb 29. 2024

깍두기 없는 술장사

                                                              

       캐나다에 이민 와 처음 사업을 시작하려고 할 때 가장 많이 들었던 조언이 방 또는 물 장사를 하라는 것이었다. 즉, 술 파는 바(bar)가 있는 호텔을 하든지, 아니면 또 다른 물인 기름을 파는 주유소를 하라는 말이었다. 그래서 남편과 시작한 첫 사업이 바로 호텔이었다. 


이야기에 앞서 일단 여인숙부터 호텔까지 잠자는 곳의 명칭을 간단하게 정리해 볼까 한다. 한국에서는 여인숙, 여관, 모텔, 호텔 등 이런 명칭에 따라 대충 시설 정도를 파악할 수 있었고, 가격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캐나다에선 이런 명칭이 크게 도움이 되질 않았다. 


우리가 호텔을 한다고 하면 사람들이 “어머! 호텔씩이나!”라고 하는데, 사실 여기서 호텔이란 명칭은 꼭 좋은 곳이라는 의미가 아니었다. 먼저 ‘Inn’ 굳이 해석하면 여인숙으로 한국에서는 후미진 골목길에 허름하게 붙어있는 간판이 바로 여인숙이었다. 하지만 여기선 유명 프렌차이즈는 대부분 Inn이 붙는다. 할러데이인, 노바인 등등. 모텔은 자기 차를 주차할 공간이 있는 곳이라는 뜻인데 사실 요즘 주차장 없는 곳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러니 motel, inn, hotel, lodge 거의 같은 말이다. 조금 다른 것은 B&B인데 이건 침대와 아침(bed and breakfast)이라는 의미로 아침 주고 잠도 자는 곳이라는 뜻이다. 호텔이란 명칭은 그 건물 내에 방뿐만 아니라 레스토랑, 술집(bar), 술 가게(liquor store) 등 이런 여러 시설이 같이 있는 곳이라는 뜻이지, 결코 시설이 엄청 좋은 곳이라는 의미는 아니었다.


그러면 우리가 하는 호텔의 수준은 어떠한가? 그러니까 이게 1902년 처음, 이 타운과 함께 시작된 제1호 상업빌딩으로 100년도 넘는 역사를 지닌 곳이었다. 오래되었다고 무슨 담쟁이덩굴이 벽을 덮고 있는 그런 호텔을 상상하면 안 된다. 굳이 상상을 돕자면 옛날 서부 영화에서 총을 찬 건달들이 바에서 술을 마시다가 맘에 드는 여자가 생기면 끌어안고 위층 방으로 올라가는, 바로 그 장면에서 나오는 그런 수준의 호텔에 더 가깝다고 보면 될 것이다. 


당장이라도 존웨인이 총 한 자루만 차고 나타나면 바로 서부영화를 찍어도 크게 손색이 없을 듯한 그렇게 허름한 곳이었다. 하지만 방도 바도 리퀄스토어도 있기에 이름은 버젓한 호텔이다. 이 비즈니스의 노른자이면서 동시에 가장 운영하기 어려운 곳이 술을 파는 바(bar)라고 할 수 있었다. 


바 이야기에 앞서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을 한 장 올릴까 한다.

    

아주 바쁜 날이면 남편도 이렇게 바텐더로 일을 한다. 물론 난 한 번도 바텐더는 해보진 않았다. 왜냐면 칵테일 이름을 못 알아들어 주문을 못 받는다. 옛날에 영어를 대충 50% 정도나 띄엄띄엄 알아듣던 시절 리퀄스토어에서 캐쉬어로 일할 때였다. 한 20살 정도나 먹은 남자가 술을 사면서 대뜸 나한테 저녁 데이트를 신청했다. 난 “인석아! 너희 엄마가 18살에 널 낳았으면 내가 바로 너희 엄마 나이거든.”이라고는 영어가 짧아 일단 속으로만 말하고, 겉으로는 정중하게 웃으며 “나 남편 있거든. 브라이언이라고 너도 내 남편 알지?”라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이 녀석이 “상관없어! 우리가 데이트하는데 굳이 네 남편한테 말할 필요는 없잖아?”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 순간 열이 확 오르는데, 다른 사람 같으면 당장 ‘F’로 시작되는 욕이 튀어나왔겠지만, 영어가 짧은 난 욕도 캐나다 욕은 해봤자 속이 시원해지질 않는다. 아무래도 내겐 욕도 메이드 인 코리아 욕이 최고다. 나는 두 주먹을 양 허리에 올리고는 눈에 힘을 주면서 내가 제일 잘하는 욕으로, “미~친 놈! Get out of here! Get out!”이라며 소릴 질렀다. 난 엄청나게 화가 나서 당장 나가라며 소리를 지르는데, 이 녀석은 그냥 어깨만 으쓱하더니 피식 웃으며 나갔다. 참말로 욕이라는 것이 그렇다. 난 한국 욕을 해야 속이 시원하고, 듣는 놈은 영어로 욕을 얻어먹어야 기분이 나쁘니.


그러고 며칠이 지났는데 이번에는 다른 젊은 녀석이 스토어에 오더니, 사갈 것만 곱게 사갈 것이지 도대체 가질 않고 오늘 자기가 뭐를 했고 뭐를 했고 하면서 자꾸 중얼거렸다. 난 무슨 말인지 다 알아들을 수도 없었지만, 그래도 웃으면서 듣는 척해주는데 가만히 듣다 보니, “...sex on the beach”라고 하는 거였다. 


난 얼굴을 확 굳히며, “아~! 또 열 받네. 네가 해변에서 섹스를 하건 말건 그게 나하고 무슨 상관인데? 내 얼굴을 그렇게 빤히 쳐다보면서 무슨 의도로 그런 말을 내게 하냐?"라는 이 말도 물론 영어가 짧아 속으로만 하고, 난 이번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절도 있게 손가락으로 문을 가리키며 “Get out!”이라고 소리쳤다. 


그렇게 그 녀석을 시원스럽게 쫓아낸 후 남편이 왔기에 세상이 어찌 되려고 저러는지, 어린 것들이 성희롱을 일삼는다고 한탄을 했더니 남편이 물었다.


“분명히 그렇게 말했어? 정확히 들었어?”

“그래. sex on the beach 하더라니까.”

“그니까 그것 마셨다고 안 해?”

“뭐?”

"칵테일 이름이잖아. 오늘 그것 마셨다고 하지 않아?”

“어머! 그럼 그게 했다는 것도, 하자는 것도 아니고 마셨다는 거였어?


난 순간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손으로 입을 막아봤지만, 이미 손님은 쫓아낸 다음이었다. 칵테일 이름이 이처럼 섹스와 연관된 속어가 많다 보니, 영어가 짧은 내가 바텐더를 하다간 손님들을 다 쫓아내고 말 것이다.    

시골 라이브 바의 특징은 한국과는 달리 안주 없이 그냥 생술만 판다는 거다. 그러니 술 대신 안주만 축내러 가는 사람들은 절대 갈 곳이 못 된다. 사람이 많아 풀 하우스가 돼 앉을 의자가 없으면 손님들은 안주를 먹을 필요가 없으니, 그냥 술만 한 병씩 들고 서서 술을 마신다. 


보통 주말엔 컨트리송을 부르는 라이브 밴드를 부르는데, 손님들은 그 음악에 맞추어 투스텝을 추며 신나게 즐긴다. 이게 바로 시골에 있는 라이브 바의 모습이다.

처음 이런 바를 시작할 때 개인적으로 가장 무서웠던 건 깍두기 아저씨들 없이 이런 술장사를 할 수 있냐는 것이었다. 한국에서는 조폭을 끼어야만 술장사를 할 수 있다고 들었기 때문이었다. 여기 손님들을 보면 다들 덩치가 좋고, 대부분이 문신을 무슨 옷처럼 입고 다닌다. 


내가 병원에서 일할 때도 보면 동료 간호사나 의사 중에 문신을 한 사람이 상당히 많다. 얼마 전엔 젊은 의사가 왔는데 얼굴 빼곤 팔, 다리, 목까지 전체가 컬러 문신이었다. 문신에 대한 편견이 있는 난, “진짜 의사 맞아?” 의심의 눈길을 거둘 수가 없었다. 그런데 다른 직원들은 다들 몰려들더니 너무 멋진 문신이라며 의사 가운을 벗겨 팔을 걷어 보고, 등을 걷어 올리고 거의 옷을 다 벗길 지경까지 난리를 치더니, 끝내는 문신 집 주소를 받아 적느라 바빴다. 이렇게 내 상상을 초월하는 일들을 많이 겪다 보니, 이제 내 편견의 울타리는 사방으로 다 무너져내려 버렸다. 문신 때문에 잠깐 이야기가 옆으로 새어 나갔다.


다시 돌아와서, 술집을 하려면 깍두기 아저씨가 필요할까? 손님들이 다 깍두기 아저씨들 같은데 거기에 기도(bouncer)로 조폭을 쓰면 어찌 되겠는가? 싸움만 더 커질 뿐이다. 한마디로 필요 없다. 바쁠 땐 기도를 세우는데 대부분 바운서는 여자가 한다. 여자가 덩치 큰 손님들 사이를 휙휙 빠져 다니며 일을 하기에도 좋고, 무엇보다 여자를 때리면 바로 경찰이 와 때린 사람을 끌고 가 버린다. 남자들끼리는 주먹질을 해도 맨주먹으로만 싸운다면 크게 문제가 되질 않는다. 보통 바에서 싸움이 일어나면 일단 바 밖으로 쫓아내고, 한 명이 항복할 때까지 싸운 다음에 다시 들어와서 서로 다른 자리에 앉아 술을 마시거나, 아니면 진 사람이 집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끝이 난다. 


그런 곳인데 덩치 큰 남자 바운서가 와서 문제 일으킨다고 나가라고 하면 남자들끼리라 더 큰 싸움으로 번질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작은 여자 바운서가 와서 나가라 소리치면 곱게 나가는 수밖에 별 도리가 없다.


또 하나 아주 특징적인 게 만약 손님이 바에서 문제를 일으키면 주인인 남편이나 바텐더가 'bar out(바 출입금지)'를 시킨다. 기간은 일주일, 한 달, 석 달, 일 년, 삼 년, 영원히 등 문제를 일으킨 정도에 따라 다르다. 


처음 이 비즈니스를 인수하고 남편이 했던 일이 바로 바 청소였다. 즉, 문제 있는 손님들을 모두 '바 아웃'시키는 그런 청소를 시작했다. 전과가 많다는 엄청 무섭게 생긴 남자를 바 아웃시켰을 때 혹시 앙심을 품고 우리 가족에게 해코지를 하진 않을지 걱정된 난 남편에게 살살하라고 잔소리를 했었다. 


그런데 하루는 그 남자가 찾아오더니 남편을 졸졸 따라다니면서 정말 미안하다. 내가 잘못했다. 하지만 상황이 나만 잘못했다고 하기엔 나도 너무 억울하다. 그러니 정상을 참작해서 바 아웃 기간을 1년에서 6개월로 줄여 달라며 따라다녔다. 결국 그게 그 전과자가 남편을 몇 시간을 따라다니며 사과를 하는 요지였다. 이들과 지내다 보면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달리 속은 참 순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그러면 바 아웃을 당한 사람이 기간이 끝나기 전에 바에 들어오면 어떻게 될까? 언젠가 추운 겨울밤에 바에 잠깐 들른 적이 있었다. 막 바로 들어가려는데 단골손님 중의 하나인 어떤 여자가 날 불러 세웠다.


“크리스틴! 나 좀 도와줄 수 있어?”

“뭔데?”

“찾는 사람이 있는데, 바에 들어가서 그 사람 좀 찾아줘.”

“나 그 사람 모르는데. 네가 들어가서 찾지?”

“나 바 아웃당했는데 아직 이틀 남았거든. 만약 내가 이 문 넘어가면 손님들이 막 욕하고 뭘 던지고 그럴 거야. 나 무서워서 이 문 못 넘어가.”


보기와는 달리 여기 사람들은 국가가 정한 법률이든 관습이든, 비록 이 바가 정한 사소한 규칙이라도 의외로 잘 지키는 경향이 있었다. 처음 금연법이 시행될 때도 서로 망봐주며 화장실 가서 막 담배를 피우진 않을까 걱정했었는데, 이들은 법이 한번 정해지면 무조건 따르는 경향이 강했다. 


그리고 우리에겐 좀 나쁘게 인식되는 고자질을 이들은 아주 사명감을 가지고 해댄다. 고자질이 나쁘다는 인식보다는 공공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철저한 신고 정신이라고 해두는 것이 더 맞을 듯했다. 이렇듯 바 아웃만 시켜 놓으면 그다음은 손님들끼리 지키고 고발하고 처벌하고 다 알아서 한다. 


한국에서 펜대만 굴리다 온 남편이 이 덩치 큰 손님들을 상대로 술장사를 하며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한국과는 많이 다른 여기 사람들의 의식 때문이었다. 규범의 대소를 굳이 따지자면 법률이 이런 작은 곳에서 정한 규칙이나 개인 간의 약속보다 훨씬 우선할 것이다. 하지만 캐나다는 선진문화가 정착된 곳이라서 그런지 개인 간의 약속이 가장 큰 규범이 되는 듯했다. 


우린 이런 일들을 통해 이들의 삶의 방식, 문화, 영어 등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다. 그런데 살짝 문제인 게 영어가 늘긴 느는데, 영어를 배우는 학교가 술집이다 보니 남편이 갈수록 영어로 욕만 느는 게, 아무래도 학교를 잘 못 고른 것 같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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