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간호사가 되었을 때 가장 두려웠던 건 바로 죽음을 다루는 일이었다. 암 환자가 많은 병동에는 ‘터미네이터’라는 별명을 가진 간호사가 꼭 한두 명은 있었다.
터미네이터는 심장이 없는 인조인간으로 많은 사람을 죽이고도 눈 하나 꿈쩍 안 하는 그런 매정한 종결자로 영화에 나온다. 이 별명은 유독 그 간호사들이 근무할 때면 많은 환자들이 죽어, 매일 죽음을 주무르는 간호사란 뜻에서 붙여진 것이었다. 진짜 손으로 많은 죽음을 만지다 보면 심장이 점점 딱딱해지고, 결국은 차갑고 무심한 인조인간이 될 것만 같았다. 난 절대 그런 터미네이터가 되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더 하게 된 공부가 바로 산파가 되는 거였다. 일 년의 트레이닝 끝에 결국 난 조산사 면허증을 땄고, 그토록 원하던 분만장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생의 첫 자락에 꼭 붙어 최대한 생의 끝자락을 멀리하며 밝고 활기차게 살아야지 싶었다. 산파가 되어 아기들이 세상으로 오는 그 여행길을 인도하고, 그렇게 태어난 아기들의 첫울음을 들으면서 난 다른 간호사들보다 참 운이 좋다고 생각하며 살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임종간호 교육을 받게 되었다. 병원에서 실시하는 직무교육이라 어쩔 수 없이 참석은 했지만 사실 처음부터 좀 거부감이 들었다. 임종간호라는 제목이 마치 환자를 죽음으로 인도하는 저승사자 같다는 인상을 줬기 때문이었다.
난 그냥 대충 시간만 때우고 가자 싶어 팔짱을 낀 체 몸을 뒤로 젖히고 의자 깊숙이 웅크리고 앉았다. 그런데 생각과는 달리 저승사자와는 전혀 친분이 없을 듯한 따뜻한 미소를 지닌 수녀 간호사가 강단에 오르는 걸 보고는 난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그녀가 던진 예상치 못한 첫마디, “저는 산파입니다.” 꺼져가는 생명을 지켜봐야만 하는 삶의 끝에서 산파라니?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다음 말이 기대가 된 난 몸을 살짝 일으켰다.
그 말은 죽음의 벼랑 끝에 선 영혼들을 편안한 임종을 통해 이 세상에서 다른 세상으로 다시 분만시키는 산파라는 뜻이었다. 그럼 삶의 시작과 끝이 쌍둥이란 말인가?
죽음이 싫어 극단적으로 삶의 시작에만 붙어 있으려던 내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상당히 충격적인 말이었다. 그리고 그때 처음으로 어쩌면 내가 삶의 끝에서도 산파를 하게 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어렴풋이 스쳤다.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 난 그 예감처럼 캐나다에서 삶의 끝자락 산파가 되어 일하고 있다.
바로 얼마 전에 ‘고통완화 임종간호(Palliative Care)’라는 교육을 받게 되었다. 큰 회의실은 150명 정도의 청중으로 꽉 차 있었다. 대부분이 병원에서 일하는 의료진이거나 아니면 임종을 많이 다루는 성직자나 자원봉사자들이었다.
고통완화 임종간호란 말기 환자에게 육체적, 정신적, 영적인 간호를 제공해 마지막까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가운데 고통 없이 임종하도록 돕는 간호를 말한다. 강의는 그런 간호를 제공하기 위해 고려해야 할 많은 것들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며 진행되었다.
그러다가 50대 중반의 임종 전문 의사인 강사가 자기 아버지의 임종을 언급하며 갑자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앞에 앉은 청중은 화장지를 건넸고, 그 닥터는 마이크를 든 채 코까지 풀어가며 말을 이어갔다. 평소에 그의 아버지는 매일 밤 자신만의 독특한 말로 가족들에게 잘 자라는 인사를 했다고 한다. 임종이 다가온 순간 그의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뱉은 말은, 가장 긴 이별 앞에서도 바로 그 잘 자라는 인사였다고 한다.
눈물까지 흘려가며 그가 여기서 강조하고 싶었던 건 죽음도 그저 삶의 한 부분일 뿐이다. 그러니 그들의 평범한 하루처럼 가장 그 사람답게 떠나도록 돕는 게 바로 우리가 해야 할 임종간호라는 말이었다.
캐나다에서 임종간호를 할 때 보면 많은 보호자들이 죽어가는 환자 옆에서 웃으며 왁자지껄 떠드는 일이 자주 벌어지곤 했다. 처음엔 그런 모습이 내겐 너무나 적응이 되질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장면이 더없이 아름다울 수가 없다. 그 환자의 일상을 죽어가는 순간에도 그대로 옆에서 재연해 주는 보호자들이 고맙기까지 했다. 그들 옆에 있으면 나마저도 죽음이 특별한 게 아니라, 그저 일상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었다.
그 임종 전문 닥터가 목격한 가장 아름다운 임종은 한 석탄 광부의 죽음이었다고 했다. 죽어가는 할아버지를 할머니가 꼭 껴안은 채 침대에 같이 누웠고, 성인이 된 네 명의 딸들은 그 침대에 쭉 둘러앉아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딸들이 어렸을 때 광부인 아빠의 피로를 풀어 주기 위해 불러줬던 바로 그 노래였다. 딸들이 계속 노래를 부르는 가운데 할아버지는 눈을 감았고, 그걸 지켜보던 의료진들은 너무 일상 같은 그래서 더 아름다울 수밖에 없는 임종 앞에서 모두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삶의 시작을 돕는 산파는 특정 지식과 기술이 필요하지만, 이처럼 삶의 끝자락을 돕는 산파는 그 누구라도 될 수 있었다. 가족이 될 수도, 의료진이 될 수도, 하물며 혼자 아기를 낳는 여인처럼 스스로가 산파가 되어 자기 영혼을 분만시킬 수도 있는 것이었다.
이 이야기를 하면서도 그 닥터는 눈물을 흘렸고, 그 앞자리 청중은 다시 화장지를 건넸다. 그리고 많은 청중이 각자의 화장지를 꺼내 자신들의 눈물을 훔쳤다. 누구도 그 닥터에게 전문인답지 않게 울며 강의한다고 불평하지 않았다.
모든 의미가 끝나고 어둡고 무거울 것만 같은 죽음의 순간이 사실은 아기가 태어나는 순간만큼이나 많은 감동을 품고 있다는 걸 모두가 알기 때문이었다.
타인의 죽음을 자연스레 만나면서 언젠간 삶의 길목에서 내 죽음과도 만날 것임을 매번 느끼면서, 그렇게 죽음을 정서적으로 섬세하게 관조하다 보면 심장이 딱딱해지기보단 되레 더 말랑해지고 눈물만 많아진다. 그러다 보니 비록 주책이라 할지라도, 모두가 삶의 감동 앞에서 눈물 흘리기를 주저하지 않는 것이었다.
온종일 진행된 교육 말미에 그 닥터는 우리 모두에게 질문을 던졌다. “환자와 가족은 우리가 돌봅니다. 그런데 환자와 이별하면서 사실 우리도 슬프지요. 그 슬픔을 어떻게 통과하는지 방법이 있으면 좀 말해주십시오.”
몇몇 청중이 손을 들어 친구와 수다를 떨거나 술을 마신다는 등의 말을 했다. 나도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마음이 두 갈래로 나뉘었다. 한 마음은,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영어 못하는 것 광고할 일 있냐? 그러니 가만히 있어!” 또 다른 마음은, “나도 저들처럼 생각하는 머리도 있고, 느낄 수 있는 가슴이 있거든. 내가 말을 못해도 사람들이 가슴으로 듣겠지. 그러니 말해!” 두 마음이 이렇게 계속 싸우다 보면, 성질 급한 내 오른팔은 결론을 듣기도 전에 미리 하늘로 올라가 버린다.
난 작은 목소리로 말을 시작했다. “가족들이 모두 떠나고 임종한 환자를 영안실로 보내기 직전에 전 혼자 환자의 방으로 들어가 둘만의 시간을 갖습니다. 침상으로 다가가 이미 얼음처럼 차가워진 환자의 손 위에 내 손을 얹고 그의 영혼을 위해 기도를 해줍니다. 그런 다음 눈을 떠 환자의 얼굴을 보면 그 얼굴에서 평안이 보입니다. 그 평화로운 얼굴이 바로 내게 남겨진 슬픔과 두려움을 지워줍니다. 전 그렇게 죽은 분으로부터 위로를 받습니다.”
내 말을 듣던 닥터와 청중들의 붉어진 눈을 보니 그들이 내 말을 가슴으로 듣고 있음을, 나만이 아니고 그들 또한 나와 같은 일을 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모두가 일출과도 같은 힘찬 첫울음으로 시작된 삶이 끝내는 일몰과도 같은 평화로움 속에 잠기는 걸 목격하고 있는 것이리라.
끝으로 그 닥터는 자신이 찍은 석 장의 사진을 보여줬다.
처음은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을 찍은 사진이었고, 두 번째는 그 물이 두 갈래로 나뉘어 흐르는 것이었고, 마지막은 그 두 갈래의 물이 흘러드는 고요한 강을 찍은 사진이었다.
그 사진으로 그가 말하고 싶은 것은 죽음의 이미지였다. 저 폭포에서 떨어지는 걸 피할 수 있는 물은 없습니다. 하지만 두 번째 사진을 보십시오. 한쪽은 물이 거칠게 바위에 부딪히고 깨지면서 격렬하게 흐르지만, 다른 쪽은 잔잔히 흐르지요.
우리가 해야 할 임종간호의 이미지가 바로 저 잔잔한 물길입니다. 죽음을 막을 수 없듯 저 폭포에서 떨어지는 걸 막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돕는다면 저 잔잔한 물길처럼 훨씬 부드럽게 내려앉아 강으로 흘러들게 할 수는 있다는 것입니다.
교육이 끝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그 사진의 이미지가 계속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래서 현자들이 사람을 흐르는 물과 같다고 했나? 결국은 저 강도 어딘가로 흘러가겠지? 그럼 물처럼 삶도 끝없이 이어지는 연속인 걸까? 답 없는 물음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지만, 생사의 수수께끼는 거미줄 엉키듯 빙빙 돌기만 할 뿐, 내 짧은 생으로는 풀어낼 길이 없었다.
난 그저 내가 그릴 수 있는 하나의 이미지만을 마음에 남겨둔 채 생각을 멈췄다. 산파인 내 팔에 안겨 첫울음을 터트렸던 아이들, 어쩌면 그 아이들 모두 한 방울의 비처럼 세상에 왔는지 모르겠다. 내리자마자 바로 강으로 떨어지는 비도 있지만, 대부분은 땅속으로 흘러 목마른 대지를 적시며 생명을 밀어 올리고, 나무속으로도 흘러 잎을 틔우고 꽃을 피우며 그렇게 만물에 이롭게 흐르기도 하고, 때론 다른 물과 뭉쳐 홍수가 되어 세상을 휩쓸며 해롭게 흐르기도 한다.
그렇게 각자의 길을 찾아 온갖 곳을 흐르다가 마침내는 개울로 샛강으로 합류해 언젠간 저 폭포에서 떨어지는 순간이 오고, 끝내는 너와 내가 구별이 없는 저 고요한 강으로 평화롭게 잠기는 것이었다. 비는 그렇게 강으로 흐르고 있었다. 그 흐름 속에서 난 한 방울의 비를 받는 산파였고, 이젠 그 비가 강으로 드는 걸 돕는 산파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