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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빛소년 Jan 20. 2023

기다려지지 않는 설날

집안의 기둥은 엄마, 설날은 엄마들의 노동

별 시답지 않은 이야기


아저씨들의 대화는 즐겁다. 나이는 다르지만 각자 지킬 것들을 위해 일터에 나온 평균 나이 40살, 유부남, 애 둘 딸린 유부남 셋은 오늘도 빨리 나온다. 누구보다 회사에 먼저 나와 아침에 계란과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떨고 있다. 계란 흰자 경기도에서 출근하는 사람 2명, 계란 노른자에서 출근하는 사람 1명, 출근 시간도 한 시간이나 먼저 와서 수다를 떠는 것이 보통의 일상이자 낙이라 생각하는 우리네 가장들의 삶이며 나의 이야기이다.


주말을 가족들과 보내고 출근한 어느 날 아침 늘 그렇듯 막역하게 친하지도 그렇지도 않은 직장 동료 관계 그 어딘가 속마음을 터 놓고 이야기할 리 만무하겠지만 설날을 앞두고 가족에 대해서 이야기하게 되었다. 그날의 주제는 설날이 기다려지지 않는다는 것과 엄마는 집안의 기둥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이제 더는 본가든 처가든 가는 것이 기다려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결혼하여 가족을 꾸리고 아이를 키우면 안다. 휴일이 휴일 같지 않다. 아이는 알아서 크냐고 바쁘다는 핑계로 방치하던 시절을 지나 바쁘고 엄마와 아빠의 경계가 모호해졌다. 주말에도 일하는 기분으로 아이를 돌보고 쉬지 못한 채 일 년을 정신없이 보낸다. 명절도 그중 하나다. 


출처 : https://pixabay.com/images/id-4111201/


설날을 기다리지 않는 어른들

 

까치까치설날은 어저께고요. 내 알바 아니고요.




유감스럽게도 나도 설날을 기다리지 않는 어른이 되었다. 언제부터 일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설날은 그냥 평소보다 더 피곤한 날이 되었다. 결혼하여 내 가족이 생기고 내 집은 아니지만 거주할 집을 구하고 용돈을 챙겨 본가와 처가를 다녀와야 하고 애들까지 챙기고 달라질 때로 달라진 생활환경이 원래 우리 집이었던 공간을 불편하게 생각하는 것인지 모른다. 그냥 잠이나 자고 싶은 날이다.

내가 설날이 기다려지지 않은 이유는 1) 경제적 이유 2) 소통의 단절 3) 평소 보다 더 바쁜 일정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나의 생각에 유부남들은 동의하며 가족과 친척들에게 용돈을 받지 않는 순간부터 명절은 기다려지지 않았다고 이야기한다. 용돈을 받지 않은지 오래되었지만 효도를 중요시하고 형제와 잘 지내야 한다고 명절 때면 함께 모여 한 집에서 제사를 지내고 몇 날 며칠을 같이 심심하게 보내며 덕담 아닌 덕담과 스트레스를 주는 안부를 물어서 일지도 모른다. 때론 누군가 에게 명절은 가족과 친척이라는 이유로 서로에 대한 걱정인 척 스트레스를 주는 질문을 하기에 만나기 불편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비싼 물가, 챙겨야 하는 주의 어른들, 왔다 갔다 해야 하는 사람들, 생각보다 설날을 기다리지 않는 사람이 많을지도 모르겠다.

돈은 잘 버니, 승진은 언제 하니, 재산은 얼마나 모았니, 결혼은 언제 하니, 만나는 사람은 있니, 아이는 언제 낳니, 집은 언제 살거니 등 듣기 싫은 말인 줄 모르고 쉴 새 없이 간섭하는 듣기 싫은 말들은 조금 삼갔으면 좋겠다. 할 말이 그렇게 없는지 잔소리할 거면 돈으로 줬으면 좋겠지만 이건 뭐 돈 쓰고 잔소리를 들으러 가야 하는 처지라 마치 해병대 캠프의 돈을 내고 생 고생 하러 갔던  고등학생 시절의 내 모습 같았다. 돈을 쓰고 불편한 경험을 하러 가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편안한 대화 상대가 되려면 '하고 싶은 말'은 무조건 다 해야 한다는 태도는 버려야 하며, 성인이라면 최소 대화의 결과를 예상할 줄 알아야 한다. 불편한 주제가 나오면 참는 것도 좋지만 예의를 갖춰 이야기해 자신의 참을 수 있는 한계를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


단절의 시대, 세대 차이의 시대, 사회가 이끄는 대로 방향성을 제시하지 못했던 어른과 아이, 열심히 살고 열심히 공부해야 했던 6070 부모님과 3040 자식 간의 소통은 정말 어렵다.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 가서 좋은 회사에 취업하면 모든 게 다 해결된다고 믿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우리는 코로나로 인해 너무 큰 단절을 겪었고 먹고살기 바쁘다고 일만 하고 자식을 돌보지 않던 아버지 시대의 모습과 일도 육아도 잘해야 하는 지금의 모습은 서로 이해하기 어려운 모습일 뿐이다. 

평가나 질책, 판단이 들어가지 않은 감정을 표현하거나 공격성이 없는 말을 한다면 가까운 가족들과도 공감할 수 있는 그런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조금 더 명절이 편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예를 들면 50이 넘어 회사에서 겨우 버티고 있는 가족이 있다면, 취업을 못하는 자식이 있다면, 스트레스가 있다면 솔직하게 터 놓고 이야기해보자. 술 한잔을 곁 들여도 좋을 것이며 시원한 바람이 부는 날 같이 산책을 해도 좋을 것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우린 가까운 사람일수록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줘야 한다. 그럼 세대 차이도 서로가 고민하고 있는 걱정도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어쨌든 아직  2주나 남은 설날 소중한 사람들에게 선을 넘지 않거나 선을 넘게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다.


엄마는 가정의 기둥


설날을 고민하다 어머니 이야기까지 하게 된 늙다리들은 다 늙어서 눈물을 머금었다. 나의 해방 일지에 보면 엄마가 갑자기 돌아가시자 가정이 무너져 서로 흩어진 구 씨네 가족들이 생각난다. 뜬금없이 40대 후반에 접어든 직장 동료는 설날에 자기 집에 방문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했다. 아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이유였는데 오래전 갑자기 어머니가 돌아가셨던 그는 그날 이후 아버지와 가족들이 알게 모르게 지탱해 왔던 가족이 해체되는 것을 보고는 아내에게 잘해야겠다며 애처가가 되었고 아내의 말을 잘 따르게 되었다고 한다. 배울 점이 많은 양반이다.

지금도 수많은 엄마들이 각자의 이유로 가정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열심히 해도 돌아오지 않는 가사와 육아에 힘들어 지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고생을 알아주지 않는 것만큼 서러운 것은 없는데 최소한 예전에는 아빠가 가정의 기둥이라고 했다면, 요즘은 엄마가 가정의 기둥이라고 표현하고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예전에 비해 맞벌이하면서 가사와 육아를 병행해야 하는 경우도 많아졌고 그렇다고 남편이 아버지 세대와 다르게 개선되었다고 하지만 내가 보기엔 그렇게 많은 부분을 가정에서 역할 분담을 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회사에서 아들 둘 키우는 노하우를 묻거나 지금 임신 중에 육아 팁 좀 알려 달라는 일부 직원에게 나는 일단 결국 엄마가 육아든 집안일이든 더 많이 하니까 남편에게 다 시키고 습관 들여놓으라고 간단명료하게 말한다. 문득, 나도 멀리 출근하는 나를 위해 두 아이를 도맡아 등원시키고 출근하는 아내, 집안일을 하는 부지런한 아내를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끄덕 흔들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가 이번 설날에 아무 곳도 가지 않으며 아버지 보고 명절 보내게 올라오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 격하게 공감한다. 결혼했으면 아들이든 딸이든 자기 가정의 평화가 우선인 것 같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이 편안하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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