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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빛소년 May 31. 2024

수치심을 권하는 사회

‘나만큼 너도 수치심을 느껴봐’


어떤 기준에 도달하지 못하면 수치심을 느껴야 하는 사회. 지금 한국의 모습입니다. 지금 우리는 서로에게 수치심을 권하며 서로에게 ‘자격 미달 인간’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5월은 특히 사람들의 감정의 변화가 큽니다. 저마다 서로 다른 가족의 모습이 있기 때문에 우울과 감정기복, 불안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오는 감정의 둑이 무너지는 달이죠. 사람들이 털어놓은 각자의 감정이 있지만 요즘 저에게 많이 전달되는 고민과 감정은 ‘수치심’입니다. 한국 사회에 급격하게 늘고 있는 수치심은 SNS, 유튜브, 방송 등의 매체를 통해 전파됩니다. 그곳에서는 모두 좋은 환경과 모습, 행복해하는 것만 보여주기 때문이죠.


수치심은 개인이 자신의 행동, 외모, 성격, 능력 등과 관련하여 부끄러움을 느끼거나 당혹감을 느끼는 감정을 말합니다. 저 또한 수치심을 느끼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이러한 수치심은 어디에서 올까요?


대부분의 수치심은 사회적 규범이나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고 스스로 느낄 때, 또는 다른 사람에게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을 때 발생할 수 있습니다. 평균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한국에서 평균미달일 때 보통은 느낍니다. 자기 스스로를 지키는 방어기제를 뚫고 들어온 자신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자기비판입니다. 다양한 상황에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일반적인 상황을 몇 가지 예를 통해서 살펴볼게요.


학교나 회사에서 중요한 발표를 하는 중에 말을 더듬거나 자료를 잘못 설명하는 경우, 듣는 사람의 반응을 의식하며 부끄러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사업과 관련된 중요한 자리라고 하면 더욱 수치심을 느낄 수 있죠. 우리가 편하게 만나는 모임이나 파티에서 실수를 하거나 부적절한 발언을 했을 때. 타인에게 웃음거리가 되거나 비난을 받을까 봐 수치심을 느낄 수 있어요. 조금 더 일상으로 가보겠습니다. 학교를 다니는 학생의 성적이 낮거나 중요한 시험에서 좋은 성과를 내지 못했을 때, 가족이나 친구들이 높은 기대를 가지고 있을 때 더 느낄 수 있죠. 어릴 때 콤플렉스나 민감한 정보가 원하지 않게 공개되었을 때, 예를 들면 엄청나게 이쁘고 멋진 사람이 사실은 성형수술을 했다던지 하는 그런 사실이 밝혀질 때 당사자는 부끄러울 수 있습니다. 수치심은 부정적인 감정으로 인식되기 쉽지만,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에요. 


수치심은 다양한 기능이 있습니다. 특히 개인과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죠. 나를 바꿀 기회를 주거나 사회에 규칙이나 도덕적 기준을 지키도록 하는 중요한 감정입니다. 다 큰 어른이 길에다 쓰레기를 버렸을 때, 어린아이가 어른이 버린 쓰레기를 주워서 쓰레기통에 버리는 행위를 목격한다면 정상적인 어른이라면 부끄러움을 느끼겠죠. 요즘 한국에는 수치심의 긍정적인 기능보다 부정적인 기능이 너무 큰 것 같습니다. 수치심을 모르는 어른들도 참 많습니다. 


집단주의와 경쟁이 심한 한국사회에서 어떤 기준에 도달하지 못한 사람은 놀림을 받기 쉽죠. 최근 다시 화제가 된 친구들이 ‘개근거지’라고 놀리는 초등생 아들 눈물에 외벌이 아빠가 한탄을 했다는 기사도 수치심을 느끼게 만드는 것이죠. 체험학습과 해외여행을 자주 가는 가족이 많아지고 학교에서도 자연스럽게 빠지게 되는 일이 많아져서 가지 않는 학생들은 집에 돈이 없어서 개근을 한다는 식으로 놀리는 상황이 됩니다. 이건 분명 교실 내 혐오와 차별적인 용어이기 때문에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그래도 개선이 되지 않는다면 조치를 취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사회는 점점 이상하게 돌아가는데 이것을 바로잡을 사람이 없네요.


제가 성장할 때는 개근상이 정말 뿌듯한 상이 었는데 개근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아이는 스스로 돈을 벌 수 없기 때문에 주어진 환경에 대해 수치심을 느끼게 되는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값비싼 아이폰, 아이패드 그것도 다 부모님이 사주신 것이죠. 거주하는 아파트 그리고 부모님의 외제차 모두 아이의 자랑이 되는 올바르지 못한 현상에 착실하게 일하는 아빠, 아이를 돌보는 엄마 그리고 환경을 선택할 수 없는 아이까지 모두가 수치심을 느낍니다. 어찌 보면 다른 나라보다 한국에서 살기가 더 힘들 수 있습니다. 가족 중심 문화, 교육 열풍, 직장 문화, 사회적 예절, 의식주 그리고 개인보다 집단을 더 먼저 생각하는 사회 이 모든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숨 막히는 감옥입니다. 산 넘어 산이죠. 새로운 계급사회가 만들어진 모양입니다. 누군가는 계속 이걸 자극해 돈을 법니다. 쟤보다는 내가 더 좋아야 하거든요.


출산율이 점점 떨어지는 이유는 선진국에 진입한 새로운 사회에는 결국 다 갖춘 사람만 등장할 수 있고 다 갖추지 못한 사람은 수치심을 느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매일 스스로를 갈아 넣어도 다 갖출 수 없습니다. 스스로를 별 볼일 없는 사람으로 생각하면 금방 우울해지고 자기 스스로 책임을 묻게 됩니다. 우리는 스스로 부족한 점과 한계를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누구나 완벽하지 않을 수 있고 1등은 할 수 없지만 이만하면 괜찮다고 위로할 수 있죠. 자기비판보다 자기 격려를 하고 신뢰할 수 있는 친구나 가족에게 내가 느끼는 수치심을 보여주고 지지를 받는 것은 도움이 됩니다. 바꿀 수 없는 걸로 수치심을 권하는 사람이 있다면 당장 그 입을 다물라고 하세요.


P.S. 수치심은 결국 많은 사회적 기대의 부산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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