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정원 확대에 따른 전공의 파업]
저는 응급실 뺑뺑이 경험자로 이미 과거의 의료시스템을 유지할 수 있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최근 크게 다쳤을 때 당신이 제대로 치료를 못 받을 수 있음을 서약하시면 응급실에서 대기할 수 있도록 해드립니다. 이 말을 듣고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당장 죽을 정도로 위험하지 않으면 한 참 뒤에 수술이 가능하다는 말을 의사가 직접 했습니다. 지금은 상황이 더 나빠져서 이제는 응급실에 갈 수 조차 없습니다. 이 지역에 응급실을 이용할 수 있는 곳은 준종합병원 정도밖에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응급 환자가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지 못해 응급실이 있는 병원을 구급차를 타고 병원을 돌아다니는 것을 ‘응급실 뺑뺑이’라고 합니다. ‘응급실 뺑뺑이’의 원인은 의사가 없어 제때 치료를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실제 통계를 봤을 때 지금의 전공의 파업에 응급실에 의사가 100%라고 한다면 지금은 평소의 70%에서 80% 밖에 인원이 없습니다. 전공의가 집단으로 사직했기 때문입니다. 2,000명 중 전공의 500명이 빠졌어요. 정부가 2025년부터 매년 2,000명씩 증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자 반대해서 집단 사직과 파업에 나섰습니다. 사직을 했기에 파업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여기에 필수의료 분야의 열악한 환경과 응급실을 이용하지 못해 사망했다는 뉴스를 볼 때마다 마음이 불편합니다.
단순 이렇게 숫자로 계산하기보다는 응급실의 기능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응급실은 상태가 더 이상 나빠지지 않게 생명을 유지시키면서 해당 질환의 전문의에게 정확한 진료나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대기해야 하는 장소입니다. 전공의가 사라지면서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진료 인력이 부족해서 중증질병을 치료할 의사가 없어서 환자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 생기고 있습니다. 배후진료도 망가지고 있는 것이죠.
여기에 더해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집단 사망 사건으로 업무상 과실치사라는 명분으로 의사를 처벌하려고 했기 때문에 의료행위를 하다가 살인자로 길고 긴 법정 싸움을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상태가 좋지 않은 환자를 사명감으로 치료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워졌습니다. 자기 일을 하는데 결과가 좋지 않으면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불안감이면 대부분의 사람은 누구나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습니다. 환자나 가족이 의사를 상대로 고소를 하면 심리적 스트레스가 큽니다. 이런 상황을 모르고 손가락질을 할 수는 없어요.
만약, 여러분이 인사팀에 있는데 사람을 잘못 뽑아서 뽑은 사람이 회사에 손해를 끼치면 당신이 감옥에 가야 한다. 재무나 회계팀에 있는데 계산서 처리를 잘못하거나 금액에 대해서 실수를 하면 감옥에 가야 한다. 구매팀에 있는데 시중가보다 비싸게 사면 감옥에 가야 한다 등 일에 대해서 형사처벌을 받아야 한다면 쉽게 그 일을 하겠다고 하지 못할 겁니다. 이와 같은 일이 병원에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치료의 결과가 좋지 못하면 변호사를 선임해서 고소를 하고 재판 결과를 종종 뉴스로 접할 수 있어요.
정부는 공보의, 군의관을 파견하고 대체 전문의와 PA간호사(수술 보조, 검사시술 보조, 검체 의료, 응급상황 보조 등 의사가 할 수 있는 의료행위를 하는 간호사)를 적극 활용해 의사의 인력을 대체한다고 하지만 이 또한 많이 어렵습니다. 의료는 정보가 제한적이고 숙련도에 따라 영향을 많이 받고 진단이나 치료도 환자 상태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많은 환자를 경험해야 합니다. 누구도 경험이 부족한 공보의, 군의관, PA간호사에게 생명을 맡기고 싶지 않을 겁니다. 비상 상황이니까 목숨을 구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것이죠.
환자는 의사가 아니기에 본인이 아플 때 경증인지 중증인지 판단하기 어렵고 한국처럼 병원 이용이 손쉬운 환경에서 환자는 응급실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평일 진료보다 비싸기는 하지만 실비보험으로 환급을 받기에 적은 돈으로 대기 없이 이용할 수 있기에 경증의 환자가 응급실에 그렇게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멀쩡히 걸어서 들어가는 응급환자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가장 빠르고 간편한 방법은 응급실을 이용했는데 응급이 아니면 환자가 비용 하는 부담을 10배쯤 올리고 보험사에서 보험 지급을 거부하는 겁니다.
저는 의료 시스템은 이미 붕괴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며 시스템을 회복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왜 갑자기 의대 정원을 늘려서 이런 일을 만드냐 정부의 탓이 아니냐, 의사들이 너무 이기적인 것이 아니냐 등의 책임 소지를 따지려는 것이 아니라 의료시스템이 제 기능을 이미 다했기 때문입니다. 의료 인프라와 처우 문제, 기피 과목 문제, 전공의들이 수련할 수 있는 환경의 개선 모두 당장 해결이 불가능합니다. 그걸 할 엄청난 돈도 부족하고 시간도 없습니다.
필수의료 분야(소아청소년과, 외과, 산부인과 등)의 낮은 수가와 과중한 업무로 인해 의사들이 그냥 이 분야를 떠났습니다. 낮은 수가와 과중한 업무 모두 돈으로 해결할 수 있지만 2023년 의사 평균 연봉 3억 수준으로 모두 다 맞춰줄 수 없습니다. 과중한 업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의사를 또 데려와야 하죠. 기피 과목 문제도 그렇습니다. 고령 산모가 증가하여 미숙아 출산이 늘어나고 출산 자체가 위험한데 분만 의료사고에 10억 배상판결과 같은 소리를 들으면서 누가 소아과와 산부인과에 갈지 의문입니다. 외과도 그렇습니다. 이미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을 정도로 상태가 안 좋은데 사람을 살리겠다는 사명감으로 법적리스크를 안고 환자 치료를 할 수 있을까요? 저라면 못합니다. 제가 잘못되면 가족들을 돌볼 수 없습니다.
자, 그럼 열악한 수련 환경 이건 의사를 늘려도 진짜 답이 없습니다. 주 80시간이 넘는 과중한 근무와 법적 책임 부담에서 단순 신규 의사 수만 늘려도 사람을 살리는 병원이 아닌 회사나 다른 분야에서 활동할 수밖에 없습니다.
보험료를 늘려서 숫가를 일시적으로 늘리고, 인구가 많이 늘어나서 보험료를 내는 사람이 늘어난다면 의료시스템의 수명을 늘릴 수 있었습니다. 2025년 65세 이상 고령인구 20.6%, 출산율 0.72 그냥 인구학적으로도 불가능합니다.
우리나라는 특히 경쟁이 심한 사회로 수능을 보고 공부를 잘하면 모두 의대로 갑니다. 의사가 다른 직종보다 압도적으로 높은 돈을 벌고 70살이 넘어도 매우 많은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에 자녀가 공부를 잘한다면 의대에 보내는 것이 한국에서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확실한 방법입니다.
매년 의사수를 추가로 늘려서 평균 연봉을 감소시켜 의대 대신 과학계도 진출해서 여러 가지 분야의 발전으로 자리 잡고 회사들이 성장해서 많은 세금을 내고 국가가 다시 그 세금을 의료에 활용하는 방향도 좋았겠죠. 하지만, 지금 우리나라의 엘리트주의는 의대, 법대, 소수의 전문직 그리고 그들이 정치인이 되는 과정이 아직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전화 한 통이면 응급실을 포함한 의료를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의사가 되는 것은 너무나 힘들지만, 의사가 되고 나서 그들의 권력은 정말 일반인이 알 수 없을 정도로 큽니다. 사람 목숨을 쥐고 협박을 하는데 정부, 정치인 누구도 이길 수 없습니다.
증원을 일방 취소할 테니 병원으로 돌아와 달라 빌고 빌어 다시 병원에 데려다 두고 그들의 권력을 계속 유지시켜 준다고 하더라도 지방의료 붕괴, 기피과 인력 충원 등은 해결되지 않습니다. 지방의료, 기피과 인력을 늘리기 위해 돈을 더 준다는 것도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그 돈은 누구한테 걷어서 줍니까? 건강보험료를 올린다고 하면 국민적인 저항이 더 크겠죠.
내 가족과 지인이 응급 상황으로 병원에 가서 응급실을 이용할 수 없으니 그냥 정부가 졌다고 생각하고 굴복하라고 하는 상황도 웃깁니다. 주 100시간이 넘는 근무를 하면서 환자를 위해 자기 몸이 부서져라 일하는 의사들을 보면서 사명감이란 이런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병원을 떠나버린 의사는 기본적으로 직업의식이 결여되어 있는 겁니다. 나중에 돈을 못 벌 것 같으니 지금 환자들을 포기하겠다는 것이죠. 의대 증원을 늘린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의사들은 평균보다 훨씬 높은 돈을 벌어갈 것인데 말이죠.
결국, 지지부진하게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채 의료 시스템은 고갈되고 의료 민영화가 빠르게 진행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지금은 누구도 의료보험료를 더 내고 싶지 않고, 병원은 빠르고 손쉽게 이용하고 싶어 하며, 의사들은 부족합니다. 국가는 만능이 아닙니다. 많은 국가에서 의료가 점점 상업화되고 있는 것처럼 민간 의료가 되어 병원이 이윤을 추구화하는 기업화된 구조로 운영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영국의 공공병원처럼 한참을 기다려도 내가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차례가 언제 올지 모르는 채로 말이죠. 지금은 아프지 않으려는 노력이 제일 중요합니다.
P.S. 추석 때 정말 아프면 안 됩니다. 저라면 가시 있는 생선 같은 것도 먹지 않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