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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의 100엔 도시락, 서울의 냉장고 파먹기

by 달빛소년

[돈 벌데 없고 쓸 돈도 없다]


요즘 서울의 번화가를 걷다 보면 문득 낯선 느낌이 든다. 북적이던 상점에는 어느새 빈자리가 늘어나고, 예전 같으면 인파로 가득 찼을 시간에도 길거리는 한적하다. 백화점과 쇼핑몰의 매출은 예전 같지 않고, 사람들은 스마트폰으로 할인 앱과 중고거래 플랫폼을 분주히 들여다보고 있다. 이제 ‘명품 소비’보다 ‘명품 재테크’, ‘플렉스’보다 ‘절약 챌린지’가 SNS에서 더 주목받는 키워드가 됐다. 2014년보다 2024년에 모든 연령에서 돈을 쓰지 않는다. 직장인도 생활비를 한 푼도 쓰지 않는 '무지출 챌린지'가 유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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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도 이와 비슷한 모습이 일상화됐다. 10년도 더 지난 일이다. 도쿄에서는 밀레니얼 세대들이 자동차 대신 중고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커피 전문점 대신 편의점 커피를 선택한다. 화제가 된 일본의 ‘100엔 샵 도시락’은 단지 저렴한 식사라는 의미를 넘어, 일본 젊은이들이 얼마나 극단적으로 소비를 절제하는지 보여주는 상징이 됐다. 심지어 소셜미디어에는 “하루 500엔(약 5천 원) 이하로 생활하기” 같은 도전이 인기를 끌고 있다. 그쪽은 이미 가성비 삶이 유행이다.


한국의 모습도 점점 일본과 닮아가고 있다. 최근 ‘무지출 챌린지’나 ‘냉장고 파먹기’가 유행처럼 번지면서, 젊은 세대는 SNS에 자신들의 소비 절제 경험을 적극적으로 공유한다. 예컨대, 배달 음식 대신 냉장고에 남은 식재료로 일주일 버티기, 한 달간 옷과 화장품을 사지 않기 등의 도전이 새로운 라이프스타일로 자리 잡고 있다. 냉장고 속 오래된 식재료를 최대한 활용하고, 일주일부터 한 달까지 새로운 장보기를 하지 않는다. SNS나 유튜브 등에도 냉장고 비우기 인증 사진과 가성비 요리 레시피를 공유하며 즐긴다.


이런 현상들은 단순히 유행이나 트렌드를 넘어선 깊은 고민에서 비롯된다. 한국의 청년들은 이제 소득 정체와 높아진 생활비, 급등한 주거비 앞에서 생존을 위해 소비를 최소화하는 삶의 방식을 택하고 있다. 유튜브에 ‘짠테크(짠돌이+재테크)’ 콘텐츠가 폭발적인 인기를 끄는 것도 결국 이런 현실을 반영한 결과다.


일본에서 젊은이들이 소비를 극단적으로 절제하는 이유 역시 단지 돈의 문제가 아니다. 경제 불황을 길게 겪으며, 일본 청년들은 소비를 통한 행복이 얼마나 일시적이고 허망한지 깨달았다. 차를 소유하지 않고, 작은 방에서 미니멀하게 살며, 여유로운 삶을 추구하는 일본의 젊은 세대들은 경제적 필요성뿐 아니라 자신들만의 새로운 행복 기준을 만들어가고 있다.


그러나 소비의 극단적 절제가 언제나 정답인 것은 아니다. 일본의 경우 극도로 위축된 소비가 경제적 활력을 떨어뜨리고 사회적 고립을 심화시키는 문제도 낳았다. 동네 상점들이 문을 닫고, 지역사회는 점점 고령화되며 활력을 잃고 있다.


결국 한국 사회가 나아가야 할 길은 일본의 극단적 소비 절제 사례를 참고하면서도, 소비의 의미를 재구성하고 건강한 소비문화를 회복하는 것이다. 소비가 지나친 낭비가 아닌,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경험과 관계 맺음의 한 방식으로 자리 잡도록 유도해야 한다.


최근 한국에서도 지역 상권 살리기 캠페인, 가치 소비 운동 같은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소비가 줄어든 만큼 더 가치 있게 소비하려는 사람들의 새로운 선택이다. 일본의 ‘100엔 도시락’에서 얻은 교훈을 기억하며, 한국 사회는 단지 아끼는 삶이 아니라 현명하게 소비하며 서로를 연결하는 삶을 지향해야 할 때다.


결국, 소비의 숫자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사람들의 마음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지금의 소비 감소 현상이 단순히 위기인지, 아니면 우리가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계기가 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경제가 정말 걱정이다.


P.S. 경제 성장률 전망치 0.8%는 한국도 일본식 극단적 절약 소비가 고착화될 것이라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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