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에게 보상 해주는 사회를 꿈꾼다.

뒤틀린 보상심리가 악습과 문화를 만든다.

by 달빛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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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s://unsplash.com/photos/kn-UmDZQDjM


살림의 달인 아내는 남자아이가 둘인, 나까지 셋인 집안을 항상 깨끗하게 만든다. 그것은 아내의 이삭줍기 신공과 치워도 금세 어지러워져 있는 것을 보면 아내가 속상해 하는 것을 보고 눈치껏 치워주는 나의 합작품이다. 집에서도 상당히 바쁘게 일에 치여 사는 나는 슬슬 눈치를 보다 이쯤 되면 내가 해야 하겠는데.. 하는 생각에 정리를 하기 시작한다.


사실, 나보다는 아내가 더 많은 집안일을 하므로 청소와 정리는 대부분 아내가 도맡아 했고 항상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바닥에 먼지가 있으면 마음이 불안하다는 아내의 말에 깨끗하게 치워진 상태를 유지하려고 노력하지만, 청소가 나에게는 높은 우선순위가 아니라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 여섯 살, 세 살 에너지 넘치는 남자아이 둘에 급격한 체력 저하를 경험하고 있는 우리 부부이다.


애들의 에너지는 차고 넘쳐, 주의를 시켜도 집에서 온종일 뛰어다니고 장난감을 가지고 어지럽힌다. 치우는 것은 오래 걸려도 어지럽히는 것은 순식간이다. 두 아이가 뛰어다니는 자리에는 장난감 자동차, 바다 동물 피겨, 블록들이 깔려 있어 가끔은 발에 밟히거나 발가락이 덤프트럭 장난감에 치여 다치곤 한다. 계속 치워주는 것도 한계라고 생각하고 아이들 자립심 형성에도 문제가 될 것으로 생각되어 근엄한 아빠로 변신해서 잔소리하기로 결심한다.


"어허, 이놈들 엄마가 너희 장난감 치워주는 사람이야 ? 너희가 가지고 놀았던 장난감은 스스로 치워" 처음엔 말을 안 듣지만 반복하니 이제 자기가 놀았던 장난감은 치우려고 하는 흔적이 보인다. 이제 대화가 통화는 첫째는 착해서 정리하려고 하는데 둘째는 형이 정리하는데 옆에서 실실거리고 웃고 정리해 놓은 장난감을 다시 꺼내 어지럽히길 반복한다. 그럼, 첫째는 둘째에 "너 자꾸 그러면 하나도 안 멋져. 너 안 멋져"라고 말한다. 너무 웃기지만 정리를 잘하는 아이에게 우리 부부는 멋있는 이라는 칭호를 선물하기로 했다. 그래서, 정리를 잘하는 모습을 보이며 칭찬을 기다리는 모습이 너무 사랑스럽다. 굿 보이다.


정리를 하지 않아 화도 내고 맴매를 하기도 하고 장난감을 전부 쓰레기 봉투에 버리는 척 치우고 다시 가져다 놓기도 했지만 습관은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갈수록 영리해지는 아이들은 부모가 자신들을 사랑하는 줄 알아서 자신들에게 해가 되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믿음이 강해서 나쁜 말은 잘 믿지 않게 되었다. 이러한 시행 착오를 거쳐서 보상 심리를 자극하는 것이 그나마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신의 노력이 긍정적인 보상으로 돌아오지 않으면 사람들은 부정적인 보상을 강조한다. 사례를 들어서 설명하자면 정리 정돈을 하지 않는 두 아이의 모습에 긍정적인 보상과 피드백을 주지 않았다면 첫째 아이도 둘째 아이를 보며 "너도 정리하지 않았으니, 나도 정리하지 않을 거야." 라며 정리하지 않음을 당연하게 여길 것이다. 어떠한 행동을 하면 그 행동의 결과에 따르는 대가를 받고 싶어하는 보상심리, 상으로 작용하면 원하는 긍정적인 행동이 반복될 것이고 받지 못하면 아무 행동을 하지 않거나 더 나쁜 행동으로 행동이 달라질 것이다.


매슬로의 욕구계층 이론을 보면 가장 강력한 자아실현의 욕구와 연관된 것이 보상심리에 따른 인정 욕구라, 긍정적인 측면에서는 쉽게 해소가 되지만, 부정적인 측면에서는 끊임없이 성장한다. 이것도 정말 재미있는 부분인데 긍정적인 피드백은 보상해주면 효과가 오래가지 못하며 부정적인 피드백은 조치하지 않으면 눈덩이처럼 커진다. 자신이 당한 만큼 타인도 당하길 바라며 잃은 만큼 남들도 잃어야 한다는 뒤틀린 심리의 작동이다. 이러한, 부정적인 반응에 대해서 사회는 내버려둬서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냥 둘수록 남을 깎아내리는 사회 풍조가 지속할 테니까.


바쁜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이런 부정적인 보상에 대해 여러 가지로 대처한다. 그냥 나만 참으면 된다고 생각하여 넘기거나, 적극 항의하거나 개선하려는 노력, 너도 당해보라 하는 못된 생각으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거나, 그 상황 자체를 피하거나 회피하는 경우가 있다. 비록 나의 설명은 작은 사회인 가정이지만 부정적인 보상에 둘러싸이게 되면 결국 아내도 정리 정돈과 청소를 하지 않고 집안에 매우 더럽고 어지러운 상태를 유지하게 되어 각 구성원의 정서에 영향을 미치게 되어 예민하고 다툼도 잦을 것이다. 사회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언제부터 사회는 긍정적인 보상이 줄어들고 사소한 칭찬마저 없어졌다. 아무래도 칭찬에 진정성이 없는 것인지 물질적인 보상만 추구해서 인지, 사회가 각박해서 인지 모르겠지만 나만 당하는 건 너무 억울하고 나도 강자에게 당했으니 나보다 약한 사람들을 똑같이 괴롭혀 주겠다. 화나면 너도 약한 사람에게 복수해라는 심리가 작용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말한다. 나도 겪었으니 모두가 다 겪어야 해.


긍정적인 보상이 사라진 사회는 문화를 지체하게 한다. 보상해줄 수 있는 자원은 한정되어 있으며 보상 중심의 문화는 더 큰 보상과 자원을 요구하므로 도파민을 자극하는 수단밖에 되지 않는다. 결국, 금전적인 보상은 한계가 존재하며 노력하는 주체의 성장에 한계가 존재한다. 일이라는 것은 돈이라는 보상이 주어지기 때문에 이미 보상을 받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흔히들 그러라고 돈 주라는 것 아니냐, 너의 월급은 네가 받는 스트레스와 비례한다 등의 우스갯소리들이 그걸 의미한다. 우리가 받는 보상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겠지만, 그것이 모든 노력을 설명해주지 않는다. 사회의 기여도가 빠져 있기 때문인데 119 구급 대원의 월급과 카지노에서 일하는 직원의 월급의 숫자가 같더라도 기여도 측면에서는 같다고 생각할 수 없겠다. 숫자는 모든 것을 생략한 결과의 기술이기 때문에 사회에서 얼마나 이로운 행위를 했는지 측정이 불가하다.


그리고 지금 사회에서 주요 관리나 직책을 맡은 세대는 억울하고 답답한 것도 참고 이겨낸 세대라 부당한 상황에 대해서 부당하다고 생각하지 못하고 구성원들에게 쉽게 상처를 줄 수 있다. 당장 낯간지럽고 어렵겠지만, 칭찬이라는 긍정적인 보상을 먼저 제공한다면 조금 더 분위기가 좋아질 것으로 생각한다. 보상하면 금전적인 것부터 떠오르지만, 금전적인 보상보다는 공감과 위로를 해주거나 칭찬을 해줄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해보면 어떨까? "잘했어, 정말 멋지다, 대단해요, 최고입니다, 당신이 아니라면 성공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 등의 사소한 칭찬이 사회를 잠시 긍정적으로 만들어 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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