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그렇게까지 효율적으로
살려고 했을까?

by 달빛소년

나의 아침은 늘 같은 방식으로 시작된다. 알람이 울리고,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기 전 오늘의 일정이 머릿속에서 먼저 펼쳐진다. 해야 할 일의 목록은 이미 정리돼 있다. 출근 시간, 업무 단위, 이동 시간, 휴식 시간까지 모두 나뉘어 있다. 나는 성실했고, 계획적이었고, 낭비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짧은 시간을 쪼개 글을 쓰고, SNS를 운영하고, 아마추어 뮤지컬 무대까지 준비한다. 하루를 허투루 쓰지 않는 것이 곧 잘 사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하루가 끝날수록 몸보다 마음이 먼저 지쳤다.


효율적으로 살기 시작한 이유는 명확했다. 돈이 없었고, 불안했다. 멈추면 뒤처질 것 같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은 곧 실패로 이어질 것 같았다. 쉬는 시간에도 의미를 부여해야 했다. 휴식이 허락되려면 회복이라는 명분이 필요했다. 아무 목적 없이 흘려보낸 시간은 나를 무가치하게 만드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더 촘촘하게 하루를 관리했다. 효율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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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이 다 원한다는 회사에 왔다. 어렵게 들어왔고, 운이 따랐다고들 했다. 그런데 회사는 구조조정 중이었다. 매일같이 인원 감축 이야기가 오갔고, 성과와 생존은 같은 말이 되어버렸다. 누구도 오래 남을 것을 전제로 말하지 않았다. 그곳에서 나는 다시 효율적인 사람이 됐다. 더 바쁘게 움직였고, 더 많이 증명하려 했다. 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까지 열심히 살아서, 과연 무엇을 지켜낼 수 있는 걸까.


비교는 더 노골적으로 다가왔다. 타인의 성취는 언제든 확인할 수 있었고, 노력의 결과는 숫자로 환산돼 눈앞에 놓였다. 누군가는 이미 앞서 있었고, 누군가는 멈추지 않고 달리고 있었다. 가만히 있으면 나만 정지된 화면 속에 남겨질 것 같았다. 그래서 더 빨리 움직였고, 더 많이 채웠다. 나의 하루는 점점 빽빽해졌다.


내 하루는 프로젝트처럼 운영됐다. 시간은 단위로 나뉘었고, 각 시간에는 역할이 주어졌다. 산책은 운동이었고, 대화는 정보 교환이었으며, 독서는 생산을 위한 준비 단계였다. 아무 쓸모도 없는 시간은 허용되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하루를 꽉 채워 살았다. 겉으로 보기엔 잘 굴러가는 삶이었다.


얼마 전, 같은 동아리에서 활동하던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 자식과 아내를 두고 떠났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몇 주 전까지 함께 활동하던 그의 이름을 들었고, 그보다 먼저 그의 가족이 떠올랐다. 특별히 친했던 사이는 아니었지만, 함께 연습하고 웃던 얼굴은 분명히 기억났다. 그 소식은 갑작스러웠고, 설명이 없었다. 예정된 일정처럼 준비할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그날도 나는 평소처럼 하루를 보냈다. 해야 할 일을 하고, 정해진 시간을 채웠다. 그런데 일정 사이사이에 자꾸 그 얼굴이 끼어들었다. 그는 지금 이 하루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같은 질문이 반복됐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회사, 안정적이라고 여겼던 자리, 철저하게 관리된 하루가 그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균열은 그때부터였다. 어느 날 아무 목적 없이 길을 걸었다. 이어폰도 끼지 않았고, 생각을 정리하지도 않았다. 그냥 걸었다. 그 시간은 어떤 기록으로도 남지 않았고, 결과도 없었다. 그런데 그 순간 이상하게 숨이 쉬어졌다. 설명할 수 없는 안도감이 찾아왔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감각을 오랜만에 느꼈다.


나는 그 감각이 낯설었다. 왜 이렇게 비효율적인 시간이 더 살 같았을까. 효율적으로 채운 하루보다 아무 의미 없는 순간이 더 생생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제야 깨달았다. 나는 삶을 살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관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삶은 대상이 아니라 과정인데, 나는 나 자신을 관리 항목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렇다고 효율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았다. 효율은 나를 지켜줬다. 무너질 때 버티게 해줬고, 방향을 잃지 않게 도와줬다. 효율 덕분에 나는 많은 것을 해냈고, 많은 시간을 통과했다. 문제는 효율 그 자체가 아니라, 효율이 목적이 된 순간이었다. 도구가 중심이 되자 삶은 점점 납작해졌다.


효율적인 삶은 많은 것을 앗아갔다. 목적 없는 대화, 쓸모없는 웃음,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 시간. 설명할 수 없는 기쁨과 아무 이유 없는 감정들은 하나둘 밀려났다. 모든 것은 명확해야 했고, 증명돼야 했다. 그 과정에서 삶의 결은 단순해졌고, 감정의 층위는 얇아졌다.


나는 비효율을 다시 받아들이기로 했다. 비효율은 실패가 아니고, 게으름의 다른 이름도 아니다. 비효율은 삶이 숨을 쉬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모든 시간이 의미를 가져야 할 필요는 없고, 모든 순간이 결과로 이어질 필요도 없다. 삶에는 측정되지 않는 가치가 분명히 존재한다.


지금도 나는 여전히 계획을 세운다. 여전히 일을 하고, 시간을 관리한다. 다만 모든 시간을 증명하려 들지는 않는다. 일부러 남겨두는 여백이 생겼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허락하게 됐다. 그 시간은 여전히 불안하지만, 이전처럼 견디기 힘들지는 않다.


효율의 반대편에서 나는 삶의 다른 얼굴을 본다. 비효율은 낭비가 아니라 숨 쉴 틈이다. 잘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더 정교한 관리가 아니라, 때로는 관리하지 않는 용기다. 열심히 사는 것만으로는 지켜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는 사실을 이제는 안다. 나는 여전히 효율적인 사람일지도 모른다. 다만 이제는, 효율만으로 나를 설명하지는 않는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묻고 싶다. 당신은, 지금 숨 쉴 틈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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