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하디 흔한 내 이름, 세 글자

일상 에세이 : 세밀한 행복

by 박매력

내 이름은 박혜진이다.

드라마 속에서 김삼순이 촌스럽고 우스운 이름의 대명사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면 박혜진은 90년대, 대한민국에서 가장은 아니어도 꽤나 흔한 이름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싶다.


일단 박이라는 성부터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많은 성씨라고 하니 반박의 여지가 없고, 혜진이라는 이름은 내가 태어날 당시 지금의 서연, 지민 정도의 흔한 이름 중 하나로 꽤나 유행하던 이름이었다.

수능만점자 박혜진이라는 분이 티브이쇼에 나와 인터뷰를 할 때 그리 생각했고, 아나운서 박혜진 씨를 매일 저녁 뉴스에서 보며 그리 느꼈다.

박이라는 성을 떼고 보더라도 유명인 중엔 모델 한혜진과 배우 한혜진이 있고, 혜진이라는 본명을 가진 가수 화사도 있다,


어렸을 적 나는 이름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었다. 내향적이고 부끄러움이 많던 나는 끼라고는 티끌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가수를 꿈꿨다.

그 시절 내겐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어린아이다운 고민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이렇게 흔한 이름으로 어떻게 가수가 되어 유명해질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개명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이름을 바꾸고 싶다고 부모님께 말씀드리자 아버지께서 굉장히 서운해하셨던 기억이 있다. 이유인 즉, 아빠가 며칠밤을 심사숙고 끝에 지은 이름이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아버지는 언니와 나의 이름에 대한 자부심이 상당하다.


아무튼 어렸을 때의 나는 소심하고 내성적이었던 만큼 한편으로는 눈에 띄고 화려한 삶에 대한 동경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박혜진이라는 평범하고 흔한 이름보다는 누구라도 한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강렬하고 튀는 이름을 갖고 싶었다. 그래서 어른이 되면 꼭 개명을 해야지,하고 마음 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 후로 한번 더 개명 의지가 불타올랐던 때가 있었는데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그때는 무려 한 반에 나 박혜진과 최혜진, 박해진이 있었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일은 키가 작았던 나는 두 번째 줄에 앉았고 반 여자애들 중 키가 가장 컸던 최혜진이라는 친구는 나와 같은 라인의 맨 뒤에 앉았었다.


국어시간, 선생님이 책을 읽고 싶은 사람은 손을 들으라고 말했는데 나는 손을 살며시 들었다. 내 입장에선 분명 선생님이 나와 눈 맞춤을 한 뒤 혜진이 읽어봐,라고 말했다고 생각했다. 나는 자연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며 책을 읽었는데 소심했던 탓인지 작은 목소리로 조곤조곤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뒤에서 또박또박 큰 목소리로 같은 부분을 읽는 목소리가 들려 뒤를 돌아보니 키가 큰 최혜진이 일어나 책을 읽고 있었다. 순간 너무 부끄러워진 나는 아무도 우스운 내 모습을 보지 못했겠지,라고 생각하며 서둘러 자리에 앉아 아무렇지 않은 척 나름의 표정 연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

속으로 '아 왜 선생님은 이름에 성을 붙이지 않으신 걸까 그리고 분명 나와 눈이 마주친 줄 알았는데…'라고 생각하며 민망해했던 기억이 있다.




이름에 대한 생각이 바뀌게 된 건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이다.

최대한 조용히, 결코 눈에 띄지 않게. 그렇게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지내는 것이 직장생활을 편하게 하는 최고의 방법이라는 것을 깨우친 뒤로는 내 이름이 꽤나 괜찮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당시 회사에서 친하게 지냈던 동료인 강규련 주임이나 남아령 연구원보다는 박혜진이라는 밋밋한 이름이 어떤 상황에서도 튀지 않고 남들에게 묻어갈 수 있는 이름이라는 걸 몸소 깨달으며 흔한 내 이름에 감사하게 되었다.


가끔 외모는 너무 세련되고 멋진데 이름이 조금 순박하거나 이름에는 잘 넣지 않는 독특한 발음이 들어가는 이름을 보면 엇, 하고 그 사람을 다시 보게 된다. 외모나 행동, 말투에서 느껴지던 그 사람의 세련됨이 조금 반감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또 소개팅을 하기 전, 주선자에게서 전달받은 상대의 이름만 듣고 그 사람의 이미지를 혼자 그려보기도 한다.

이름은 참 중요한 것 같다. 단 세 글자로 그 사람에 대한 이미지가 만들어지기도 하니 말이다.

그런데 때론 오랫동안 알고 지내면서 지켜본 그 사람의 됨됨이나 태도에 반해 그 사람의 이름이 멋있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리하여 다른 곳에서 그 사람과 같은 이름을 가진, 전혀 다른 이미지의 사람을 보게 되면 이 이름이 그 이름과 같은 이름이라는 걸 망각할 만큼 같은 글자가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때도 있다.


시대에 맞지 않게 이름이 촌스럽다는 이유로, 혹은 발음하는 게 부자연스럽거나 어려워 난감한 일을 종종 경험한다는 이유로, 또 나처럼 너무 흔해서 어딜 가나 비슷한 이름이 즐비해 개성이 없게 느껴진다는 이유 등 각기 다른 다양한 이유로 자신의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요즈음에는 예전에 비해 개명 절차가 간소화되어 주변에서도 성인이 된 후에 이름을 바꾸는 사람을 종종 볼 수 있다.

하지만 나처럼 어떤 계기로 생각이 바뀌어서, 이름을 지어준 소중한 사람이 서운해해서, 마음에 들지 않았던 이름이었는데 막상 바꾸려니 어쩐지 영 서운해서 개명을 포기한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왕이면 같은 박혜진이라도 나를 잘 아는 사람들에게만큼은 어딘가 그 사람만의 분위기가 있는, 말을 걸면 늘 밝게 웃어줄 것 같은 다정하고 따뜻한 사람이라고 느끼게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

물론 꽤 많은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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