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는 퇴근길에 세탁소에 들러 세탁물을 찾아온다고 했다. 나는 근처 마트에서 계란과 두부를 좀 사 와 달라고 부탁했다.
엄마와 집에서 저녁을 먹고 있는데 밥을 다 먹어갈 때 즈음 언니가 집에 도착했다. 한 손에는 장바구니, 다른 한 손에는 딸기가 올라간 생크림 케이크가 들려 있었다.
"오! 내가 좋아하는 생크림 케이크네!"
"그래서 사 왔지."
나는 어렸을 때부터 생크림 케이크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나중에 내가 회사를 다니는 어른이 되면, 특별한 날이 아니더라도 언제든 먹고 싶을 때 생크림 케이크를 사 먹을 수 있겠지?'
내가 어렸을 때 우리 엄마는 정말 알뜰했다. 그 시절 다른 집들이 어땠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집에서 외식은 정말 드문 일이었다. 당시 가장 흔하게 시켜 먹는 배달음식이었던 중국음식도 일 년에 한두 번, 정말 특별한 날에만 먹을 수 있었다.
그런 나에게 케이크는 가족 구성원들 중 누군가의 생일이 되어야만 먹을 수 있는 특식 중에서도 가장 특별한 음식이었다. 그래서 나는 아빠, 엄마, 언니, 나의 생일을 늘 손꼽아 기다렸다. 오로지 케이크를 먹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날은 초등학교 5학년의 5월 15일, 스승의 날이었다.
반 친구들이 인당 몇 천 원씩 낸 돈으로 담임 선생님께 드릴 카네이션 꽃바구니와 케이크를 샀다. 칠판에는 "선생님, 사랑해요."란 문구를 크게 써놓고, 각자 감사의 말을 짧게 썼던 것 같다.
교탁 위엔 평소 우리 가족의 생일 때에는 볼 수 없던 제과점 쇼 케이스 맨 밑에 위치하는 가장 큰 사이즈의 케이크가 올라와 있었다. 지금은 볼 수 없는 장미꽃 모양의 핑크색 설탕 장식이 올라간 생크림 케이크에 초가 꽂힌 채였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선생님이 저 케이크를 우리에게 나눠 주실까?'
제발, 제발 그러기를 바랐다.
선생님이 들어오시고 스승의 은혜를 다 같이 부르고 나자, 선생님은 우리를 보며 '케이크는 다 같이 나눠 먹는 게 좋겠다.'라고 말했다. 나는 속으로 만세를 외쳤다. 정말 기뻤다.
선생님은 케이크를 세로로 일곱 여덟 번, 가로로 여서 일곱 번, 정확히 보진 못했지만 거의 그 정도로 꽤나 여러 번 자르며 깍둑썰기를 하셨던 것 같다. 당시 우리 반 인원이 45명 이상이었으니 정말 자잘하게 잘랐어야 했을 것이다.
그 많은 아이들에게 일일이 나눠줄 수도 없으니 일 번부터 끝 번까지 교탁 앞으로 길게 한 줄로 서서, 차례대로 교탁 앞으로 다가가 입을 벌렸다.
선생님은 케이크를 자른 칼로 깍둑썰기 된 케이크를 집어 아이들의 입에 넣어주셨다.
내가 기대한 것보다는 너무 적은 양이었지만 케이크를 가져가지 않고 아이들과 다 같이 나눠 먹어준 선생님이 너무 고마웠다.그리고 그 한 입의 케이크는 정말이지, 너무 달콤하고 맛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나중에 어른이 되면 특별하지 않은 날, 아무것도 축하할 것이 없는 그런 날에 케이크를 통째로 사서 먹을 거야.'
그때 내가 생각하는 어른은 그랬던 것 같다. 온전히 나만을 위해 홀케이크를 살 수 있는 경제력을 갖춘 사람. 이제는 막상 그럴 나이가 되고도 한참이나 지났지만 아직까지도 아무것도 아닌 날 홀케이크를 사 먹어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요즈음은 집 밖으로 몇 발자국만 나가면 카페가 수도 없이 많고, 그런 카페에서 조각케이크를 사는 것이 너무나 손쉬우니 굳이 케이크 하나를 통째로 살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빵집에서 계산대 앞에 줄을 서서 기다리다 보면 살 생각이 없음에도 반짝거리는 쇼케이크에 담긴 케이크들에 눈길을 빼앗기곤 한다. 케이크를 바라보며 내 마음은 여전히 들뜨고 설렌다.
언젠가 언니와 티브이를 보며 이야기를 하다 어렸을 적 결핍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나는 내 결핍과 로망에 대한 이야기로 케이크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마트에서 케이크를 보고 그 이야기가 생각 나 내게 케이크를 사다 준 것이다. 저녁을 다 먹고 난 후라 배가 많이 불렀는데도 한 조각을 야무지게 다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