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향수를 좋아한다.

일상 에세이 : 세밀한 행복

by 박매력

나는 향수를 좋아한다. 유튜브를 보면 스스로를 향수 덕후라 일컫는 사람들의 리뷰가 넘쳐나는데 그들의 리뷰를 보면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향수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많은 양의 향수가 테이블 가득한 걸 볼 수 있다. 물론 나는 그들처럼 스스로를 덕후라고 말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그저 저는 향수를 조금 좋아해요,라고 말할 수 있는 정도랄까?


내가 향수를 좋아하게 된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지금의 직장을 다니면서부터이니 햇수로 4년이 채 되지 않았다. 예전부터 우리 집은 강아지를 길렀는데 후각이 예민한 강아지에게 사람에게도 강한 자극을 주는 향수가 얼마나 독하게 느껴질까, 하는 막연한 생각에 향수를 쓰지 않았다. 사실 향수 자체에 그다지 관심이 없기도 했다.


그런 내가 향수를 좋아하게 된 이유는 좋은 향기를 맡으면 즉시 기분이 전환된다는 점 때문이었다.

여러 회사를 방황하다 정착하게 된 지금의 회사는 나에게 명확한 장단점을 안겨주었는데 대표적인 장점은 파견직으로 일함으로써 현업들과의 근무 공간이 분리되어 있어 사람들과 적당한 거리를 둘 수 있다는 점이었다. 이 점이 몹시도 장점으로 다가온 이유는 이전 회사에서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을 겪으며 크고 작은 이유들로 인류애를 잃어버리는 경험을 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정신적으로 많이 지친 시점에 이 회사를 가게 되었기 때문이다.

단점으로는 그런 만큼 가까이 지낼 사람도 소소한 일상을 나눌 동료도 없다는 것이었다. 동전의 양면 같은 이유로 나는 업무시간에 때때로 외로움을 느끼곤 했다. 하필 자리까지도 구석진 곳, 양옆이 파티션으로 막혀있는 곳에 홀로 위치하고 있어 고개를 빼 곰 하고 내밀지 않으면 모니터에 머리가 가려 내가 자리에 있는지 조차 잘 모를 정도였으니 어찌 보면 직장인에게는 최적의 자리였지만 한편으론 나 홀로 섬처럼 외로운 곳이기도 했다.


매일 아침 모닝커피를 마시며 그날의 옷차림과 새로 바뀐 머리스타일, 어젯밤 있었던 소소한 에피소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없었다. 또 의견이 다른 상사와 한바탕 말씨름을 하고 나서 그 사건에 대해 신속성 있게 공유할 사람이 없었다.

그럴 때마다 일층 로비로 내려가 회사건물 주변을 돌며 산책을 했다. 그렇게 잠시나마 머릿속을 정리하고 마음을 추슬렀다. 그것으로도 해소가 되지 않으면 지하 매점에 가서 달달한 초콜릿이나 아이스크림을 사 먹곤 했는데 그 마저도 약발이 떨어져 갈 즈음 마침 향수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다.


내가 느낀 향수의 매력은 겨우 몇 방울의 액체로 공간을 새롭게 해 준다는 점이었다.

같은 배너의 사이즈를 매번 묻는 동료에게 친절함을 잃지 않은 채 여러 번의 같은 대답을 하며 칙, 수정 요구사항을 인쇄된 종이에 빨간펜으로 구구절절 써온 동료에게 웃으며 바로 수정하겠다고 대답하며 칙, 다급하게 요청하며 오늘 안에 해야 한다는 말을 하고 퇴근해버린 담당자에게 완료되었다는 문자를 보내며 칙. 그렇게 향수는 좋은 일보다는 다소 답답하고 화가 나는 상황에서 대화를 나눌 사람도, 현재의 공간적인 환경도 바꿀 수 없는 상황에서 주변을 환기시킬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이자 즉각적인 효과를 볼 수 있는 방법이었다.


그러면서 알게 된 나의 향수 취향은 소나무처럼 올곧은 파우더리 마니아라는 것.

우디향, 꽃향, 달달한 향, 시트러스 등등. 참 많은 종파가 존재하지만 나는 봄, 여름, 가을, 겨울 할 것 없이 늘 무겁고 포근한 파우더리 계열의 향을 선호한다.


공간이 주는 힘, 나는 그것의 대단함을 잘 알고 있다. 아마도 우리가 일상에서 그토록 지질 때마다 여행을 찾는 것도 비슷한 이유일 것이다.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일상에서 벗어나 시각적으로 새로운 것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간의 고민이 옅어지고 어쩐지 힘이 막 솟아나는 느낌을 받으니 말이다.

힘들 때마다 짐을 싸서 훌쩍 어디론가 떠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냐만은 그럴 수 있는 K-직장인이 얼마나 될까.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따뜻한 차 한잔 혹은 맛있는 커피 한 잔으로 기분을 전환하며 다시금 책상에 앉아 현재 눈앞에 쌓인 일을 처리하는 것이 우리의 삶이니 말이다.

혹은 나처럼 향수를 뿌려 좋아하는 향기로 현재의 공간을 새롭게 한다던가, 휴대폰에 저장된 귀여운 강아지 사진을 본다던가. 그렇게 각자의 방법을 찾아 고단한 하루의 중간즈음에서 힘을 낼 수 있는 자기만의 오아시스는 꼭 필요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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