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의 첫사랑.
내 첫사랑은 뽀뽀.
유난히 예쁜 얼굴을 가진,
왼쪽 얼굴은 흰털, 오른쪽 얼굴은 갈색털로 양쪽이 비대칭의 무늬를 가지고 있는 사랑스러웠던 강아지, 시츄.
고등학교 때 부터 키워 서른살에 무지개 다리를 건너 천국으로 간 나의 천사.
뽀뽀가 떠난 뒤, 2년 정도는 상실감과 슬픔에 굉장히 우울한 시기를 보냈다.
퇴근 후,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서 혼자 창밖을 보며 눈물을 훔치기도 하고, 침대에 누워 잠들기 전 떠오른 생각에 베개가 흠뻑 젖을 만큼, 눈물로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영원한 슬픔이란 없는 것인지 서서히 슬픔이라는 것에 익숙해지고 조금씩 무뎌갈 때 즈음 새로운 강아지 코카스파니엘 '망고'를 유기견 보호소에서 데려왔다.
다시는 강아지를 키우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한지 삼년 만이었다.
뽀뽀를 생각하면 나는 늘 마음 한 켠이 아리고, 눈가에 눈물이 핑 돈다.
십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늘 그렇듯 처음이란, 너무나 애틋하고 너무도 서투르며, 그래서 더욱 강렬하다.
십 삼년을 살다 간 뽀뽀는 몸 이곳 저곳에 크고 작은 종양이 자라났고, 시츄에겐 흔하디 흔한 백내장으로 말년엔 두 눈의 시력 까지 잃었다.
시츄가 강아지 중 난이도 '0'이라는 걸 알게 된 건 뽀뽀를 보내고도 한참이 지난 뒤였다.
우연히 인스타그램에서 <강아지 종류별 키우는 난이도>에 대한 랭킹을 보고 난 후이다.
워낙 묵묵하고 성격이 무딘 탓에 아파도 티 한번 내지 않고 늘 얌전했던 뽀뽀.
종양은 서서히, 점점 커졌고 뽀뽀의 나이도 점점 들어갔다.
더이상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병원을 찾았을 때는, 이미 한참 늦은 때였다.
그때도 나는 몰랐다.
나이가 많이 든 개에게 큰 수술을 하면 안 된다는 걸.
무리한 수술을 감행했던 건 병원의 자신만만한 태도와 부축임도 있었지만 주인으로써 무지했던 탓도 있었다.
수술은 잘 끝났지만, 결국 퇴원하던 날 새벽을 버티지 못하고 무지개 다리를 건너고 만 뽀뽀.
죄책감 때문일까, 무지했던 주인으로서의 자괴감 때문일까.
뽀뽀에 대한 짙은 그리움은 늘 내 마음 한 켠에 여전히 묵직한 무게감으로 자리하고 있다.
오랜만에 외장하드에 업무 관련 자료를 정리하다 '뽀뽀'라고 씌여진 폴더를 열어보았다.
귀여운 모습의 사진들을 보며 웃음이 나다가, 종양이 꽤 큰 사진을 보고 가슴이 철렁하고 내려 앉았다.
'이렇게 컸다고?' 지금 키우고 있는 망고라면, 작은 뾰루지 하나에도 병원에 당장 달려 갔을텐데..
뽀뽀에게 주먹 반 정도 크기 만한 종양이 배에 있는데도 몇달을, 몇년을.. 나는 방치했었구나.
서서히 커가는 종양에 내 눈도 그렇게 익숙해지며 시간을 보냈구나.
얼마나 아팠을까. 그 착한 시츄가.
무지했던 주인, 20대에 넉넉하지 않은 주머니 사정에 더 자주 병원을 가보지 못했던 나에 대한 자책이 밀려왔다.
나는 에니메이션 영화 '코코'를 정말 좋아하는데, 스토리도 무척 흥미롭지만 마지막 부분에는 가족애를 통한 진한 감동까지 주는 나에겐 인생 영화 중 하나인 영화이다.
가족 간의 사랑을 주제로 한 영화지만 영화를 통해 멕시코의 장례 문화에 대해 알게 되었고, 한국인인 내가 보기에 우리의 정서와 비슷한 점이 꽤 많다고 느낀 영화로, 시간이 지나도 이따금씩 떠오를 만큼 내게는 꽤나 인상 깊었던 영화이다.
사후세계에 대한 기발하고 유쾌한 발상과 가족의 따뜻함을 그린 영화, 코코.
좋아하는 영화지만 두 번은 보지 못하는 영화, 코코.
보는 내내 너무 슬퍼, 꺼이꺼이 눈물을 흘리며 본 코코는 보고 나면 너무 큰 마음의 에너지를 소모하는 탓에 지쳐서 감히 다시 볼 엄두가 나질 않는다.
영화에서 죽은 사람들은 영혼들만 모여 있는 세상으로 간다.
그 세상에서의 힘은 이승에서 그들을 그리워하는 이들의 마음과 비례한다는 설정인데 그 설정 덕분에 나는 큰 위안과 안도를 느꼈다.
뽀뽀에 대한 죄책감과 미안함이 혹여라도 영화 속 설정처럼 뽀뽀에게 긍정적인 힘을 줄 수 있다면 나는 그걸로 되었다는 생각에.
내가 늘 마음 한 켠에 뽀뽀를 기억하고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품고 있다면 무지개 다리 건너 천국에서 부디 우리 뽀뽀는 친구들과 즐겁고 행복하게 지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조금은 내 마음을 편하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내 그리움의 무게가 뽀뽀의 행복으로 치환하는 상상을 하며.
'나는 여전히 널 그리워해. 늘 너를 생각해. 내 사랑의 크기는 여전히 변하지 않았어.'
늘 마음으로 기도하고 되 내이는 이런 나의 마음이 그곳에 닿기를 바라고 또 바라며.
오늘 아침 출근길에 도로에서 로드킬을 당한 고양이 한마리를 보았다.
웅크리고 있는 모습을 보니 몸집이 제법 큰 아이 같았다.
가을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아침, 꽤 차가워진 공기.
조금은 상쾌하다고 느꼈던 오늘 아침의 공기가, 웅크린 고양이의 등을 보며 그곳을 지나치는 순간 '깜깜한 새벽녁 그곳에서 홀로 얼마나 추웠을까, 얼마나 외로웠을까'를 생각하니 원망스럽게 느껴졌다.
길 위에서 죽어간 작고 연약한 목숨들.
다음 생에는 부디 인간으로 태어나
마음껏 세상을 누비고,
추위에 떨거나 굶주리지 말고,
마음껏 꿈꾸고 뛰놀며 행복하게 살다 가기를
나의 온 마음을 담아,
이 순간 나의 온 진심을 담아 기도해주었다.
그들도 무지개 다리 건너 또 다른 세상에 도착했을 때, 나의 기도를 받아 부디 조금이라도 편안하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