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현대 미술계 최전선의 현황을 알고 싶다면 아마도 아트리뷰가 발행하는 <POWER 100>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매년 발표되는 '아트월드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들'의 랭킹 리스트입니다. 여기에 이름을 올린다는 것은 이 분야에서 가장 힘이 있는 그야말로 초특급 구성원으로서 세계의 현대미술 작품의 가치와 방향을 좌지우지하는 사람들이라는 하나의 증표입니다.
아트리뷰는 1949년 런던에서 창간된 잡지로 세계 미술시장을 선도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이 잡지가 발행하는 <POWER 100>을 주목하는 이유는 아티스트, 아트페어 디렉터, 갤러리스트, 큐레이터, 콜렉터 등을 그 영향력 순으로 랭킹을 부여하기 때문입니다.
-올해의 1위는 누구일까?
-새롭게 등장한 카테고리 그룹은 무엇일까?
-새로 이름을 올린 아티스트는 누구인가?
-한국인은 몇 사람이 선정되었을까?
이런 기대감으로 이문건을 분석해 보면 재미있습니다. 그 명단의 대부분이 아티스트와 아트페어 디렉터, 갤러리스트 그리고 콜렉터, 큐레이터들이 차지하고 있지만 때로는 철학자ㆍ건축가ㆍ자선가 같은 의외의 카테고리의 인물들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아트 전문가가 아닌 이런 부류의 인물들이 왜 선정되었을까? 또는 미술 전문가가 아닌 철학자는 랭킹에 있지만 정작 미술 비평가나 미술전문 저널리스트는 왜 한 명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을까? 그리고 2023년에 선정된 33명의 아티스트들은 어떤 작업을 하는 예술가들인가를 분석해 보면 아트 월드의 흐름을 읽을 수 있습니다.
우선 2023 <파워 100>에서 국적으로 분류했을 때 한국인은 두 사람입니다. 그중 한 분은 국제갤러리 이현숙 회장(92위)입니다. 그는 2017년부터 선정되었는데 이번에는 순위가 좀 떨어졌습니다. 국제갤러리를 아시아의 허브로 기반을 다진 그녀는 양혜규ㆍ하종현ㆍ문성식ㆍ루이즈 부르주아를 포함한 예술가들을 대중들에게 소개했으며 단색화의 명성을 확립하는데 도움을 주었다는 것 등이 선정 이유입니다. 또 한 사람은 아티스트 양혜규(71위)씨입니다. 2022년에는 이현숙 회장이 유일하게 선정되었는데 이번에는 아티스트로 양 씨가 추가되었습니다. 일상적인 오브제로 세계를 여행하는 아티스트로 소개되었습니다.
한국인이 한 사람 또 있습니다. 국적이 독일이지만 분명 한국인입니다. 나는 그의 책을 몇 권 읽은 독자입니다. 철학자인 한병철 씨가 이번에도 24위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그는 한국계 독일인으로 베를린예술대학 교수를 지냈습니다. <피로사회> <에로스의 종말> <고통 없는 사회> 등의 많은 책을 냈고 우리나라에서도 거의 다 번역되어 출판되고 있습니다.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해악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성찰하고 있는 그는 오늘날의 위기는 우리가 지속적으로 감시되고 지시되고 통제되고 있지만 우리가 자유롭다는 환상에 지배되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는 예리한 사고와 간결함으로 예술가와 큐레이터들의 단골 레퍼런스가 되었다"라고 선정 이유를 밝히고 있습니다.
이번부터 카테고리를 철학자에서 생각하는 사람 (Thinker)으로 확장되어 선정된 사람은 모두 7명인데 아트월드에서 돈의 위력이 막강해지는 작금에서 선정된 콜렉터가 6명인 것에 비하면 그 비중이 크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로써 이제 현대미술은 개념화가 정착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아트월드에 최신의 사상적 흐름이 어떻게 수용되는가를 살펴보는 것도 하나의 의미가 될 것입니다. 이와 더불어 의미심장한 것은 미술이론가나 미술전문 비평가의 이름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미술전문 저널리스트의 이름도 사라지고 있습니다. 비평의 영향력이 극단적으로 상실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돈의 힘이 강대해진 아트 마켓에서 평론가는 철저히 무시당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특이한 카테고리로 건축가 그룹입니다. 2022년에는 한 명이 선정되어 이번에도 기대했지만 한 명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건축가가 더 많이 진입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건축가는 미술관 설계로 아트계와의 관계가 돈독해지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사안이 있습니다.
-아트월드는 앞으로 어떤 흐름의 작품을 보여줄 것인가?
-큐레이터와 콜렉터는 어떤 작품을 원하는 것일까?
이름을 올린 33명의 아티스트(예술가)들의 면모를 분석해 보면 그 흐름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아티스트라고 하지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순수 Painter(화가)는 거의 없습니다. 이름을 올린 아티스트 대다수가 철학적 개념을 장착하고 설치, 조각, 영화, 디지털 문화, 생태예술, 멀티미디어, 패션 및 대중문화 공연으로 확장된 작업을 펼치는 아티스트들입니다. 때로는 정치적 발언과 형식적 실험을 보여주는 아티스트, 공연예술가 등 그들은 한결같이 입체적이고 설치적인 작업방식을 보여줍니다.
현대미술은 마르셀 뒤상으로부터 시작되었고 이 시대의 아티스트에게는 뒤샹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뒤샹은 미술을 더할 나위 없이 자유롭고 재미있게 만들었습니다. 현대미술은 이제, 그로테스크한, 성적인, 변태적인, 심지어 폭력적인 작품도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레디메이드를 이용한 오브제를 선택하고 이름 붙이고 새로운 견해를 제시하면 작품이 되는 시대입니다. 이 오브제에 대한 새로운 사고방식을 창조해 낸다면 훌륭한 예술이 됩니다. 오늘날의 예술가는 생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 아니며 선택하는 것이 중요한 일입니다. 이러한 흐름으로 순수예술은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재료, 소리, 활동을 예술로 전환시켜 작품 안으로 수용되도록 했습니다. 이러한 도전은 개념적인 측면에서 작품 제작의 흐름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보입니다.
이제 현대미술은 개념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면 안 되는, 철학적ㆍ인문학적으로 사고하지 않으면 그 설 자리가 없어 보입니다. 그런 이유로 현대미술은 설치미술의 시대로 이행되었고 입체가 아닌 평면만으로는 감상자의 시선을 끌 수 없는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겠습니다.
아티스트의 작품들은 와인에도 초대됩니다. 특히 샤토 무통은 해마다 바뀌는 예술적인 라벨 디자인으로 유명합니다.
19세기에 로쉴드 일가는 홀연히 등장해 유럽 금융계의 정점에 올랐습니다. 그들은 뛰어난 재능과 가족의 단결력을 바탕으로 자본시장의 지배자가 되었습니다. 그들이 1853년에 사들인 샤토 무통과 1868년에 사들인 샤토 라피트 포도원은 전설로 각인되어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습니다. 로쉴드 일가는 경제, 정치, 음악, 자선, 학문, 예술 등 다양한 영역에서 위업을 달성했지만 이제 그들은 와인으로 가문의 위대함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이 두 개의 포도원으로 비범한 일을 해낸 로쉴드 일가는 제2의 성공으로 불릴 만큼 와인은 대단한 사업이었습니다.
보르도 메독 지구 포이악의 작은 마을에 위치한 이 두 개의 포도원은 고급 와인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샤토 무통과 샤토 라피트의 성공은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위기, 도약, 희망, 꿈과 실망 등이 점철된 스토리텔링으로 사람들에게 각인시키고 있습니다.
샤토 무통과 샤토 라피트는 둘 다 로쉴드가(家) 소유의 와이너리지만 서로 치열한 경쟁을 벌였습니다. 그들은 서로 마주 보며 성장했고 같은 목표를 추구했고 결국 같은 명예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메독 지방의 1855년 등급 분류에서 무통은 2등급으로 분류되고 말았습니다. 이는 무통의 자존심에 깊은 상처를 남긴 결과였습니다.
샤토 무통이 오늘과 같은 명성을 얻은 것은 바론 필립 드 로쉴드 등장의 덕분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소유한 무통뿐만이 아니니라 보르도 와인 전체에 끼친 영향력은 대단했습니다. 필립은 온갖 시련과 저항에도 불구하고 끝없는 열정으로 그 길을 개척해 왔습니다.실로 그는 독보적인 존재였습니다.
1922년 필립이 갓 스무 살 청년으로 포이악에 도착했을 때 이 포도원의 운명을 손에 쥐고 최고의 수준으로 격상시키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당시 엉망진창이었던 무통 포도원의 질서를 단숨에 정비하고 최고를 향한 목표에 도전했습니다. 그의 대담한 업적 중에서 샤토에서 직접 병입 하는 방법은 용감하고 획기적인 아이디어였습니다. 또한 흉작의 해에는 돌파구를 찾기 위해 세컨드 라벨로 상품을 출시하는 위험한 도박도 감행했습니다. 지금은 이러한 방식이 모두 관행이 되었지만 그때는 엄청난 모험이었습니다.
이러한 노력으로 무통은 1973년에 프리미어 크뤼의 새 지위를 얻는 데 성공했습니다. 118년의 세월이 흘러 마침내 무통이 1등급으로 승격한 쾌거였습니다. 1855년에 등급 분류된 이후 한 번도 없었던 등급 변경이 이렇게 결정되었습니다. 이후에도 이런 변경 사례를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로 필립은 대단한 성과를 거둔 것입니다. 이로서 필립의 필생의 꿈이 실현된 것입니다.
명품 와인으로서 무통의 특징 중의 하나가 레이블에 그려진 유명한 아티스트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즐거움입니다. 필립은 최고의 아티스트를 초대해 라벨에 그림을 그리게 했습니다. 살바도르 달리(1958년 빈티지), 헨리 무어(1964년 빈티지), 후안 미로(1969년 빈티지), 마르크 샤갈(1970년 빈티지), 바실리 칸딘스키(1971년 빈티지), 엔디 워홀(1975년 빈티지), 파블로 피카소(1973년 빈티지) 등 기라성 같은 아티스트들이 총망라되어 있습니다. 이로써 와인은 그냥 술이 아니라 예술이라는 점을 부각하기 위한 무통의 비전이었습니다.
지금도 매년 최고의 아티스트의 작품으로 라벨을 장식합니다. 2013년은 이우환 화백의 작품으로 디자인되어 한국인 최초의 영예를 얻었습니다. 이처럼 무통의 라벨 디자인 전략은 명품와인은 이제 예술의 경지에 도달했다는 것을 세상에 표방하는 하나의 방식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