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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식물감각 Mar 10. 2024

당신은 지금, 행복한가

부르고뉴 피노누아를 마시는 오후-코르통 앙 샤를마뉴 2009



영화 <파리로 가는 길>(paris can wait)은 원칙주의자인 미국인 여자 주인공 앤(다이안 레인)이 여유와  낭만으로 인생을 느긋하게 즐기는 자크(아르노 비야르)를 통해 새로운 시각과 경험을 얻게 된다는 프렌치 로드 트립(장거리 자동차 여행) 로맨스  영화입니다.


친구와의 약속 때문에 파리로 가야 하는 앤은 사업에 바쁜 남편 대신 남편의 사업 파트너 자크의 빈티지 고물 차를 타고 파리까지 동행하게 됩니다. 자크는 남편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프랑스 남자입니다. 대책 없이 여유롭고 바람둥이이고 경제적인 여유도 없이 낭만적인 그 남자를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매력에 빠져듭니다.


깐느-프로방스-론-부르고뉴-파리로 이어지는 여정은 프랑스 자연풍광의 아름다움을 유감없이 보여줍니다. 프랑스 풍경이 지닌 은밀한 우아함이  매력적입니다. 또 그들이 식사 때마다 마주하는 호화로운 프랑스 퀴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영화는 흥미롭습니다. 그리고 그들 대화에 양념처럼 언급되는 예술품과 예술가들 이를테면 에릭 샤티, 마네의 풀밭 위의 식사, 폴 세잔의 생 빅투아르 산, 르누아르의 부지발의 무도회, 샤토네프 드 파프 와인, 도멘 다그노의 퀴베 실렉스 부르고뉴 와인 등이 영화에서 언급됩니다. 자크는 예술에 정통하고 음식과 와인도 잘 압니다. 관객들은 자크를 통해 삶을 문화적으로 품위 있게 누리는 방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여정이 끝나갈 무렵 앤은 말합니다.


-이번 여행이 얼마나 의미 있었는지 모를 거예요. 자크


앤은 자크를 통해 새로운 시각으로 인생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자크는 그동안 앤의 내면에 닫혀있던 감각의 밸브를 열어주었습니다. 그래서 앤으로 하여금 보다 열정적인 삶으로 되돌아가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영화의 핵심은 자크가 앤에게 던진 질문에 있습니다.


-당신은 행복한가요?


이 말은, 자신이 성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믿고 있었던 상대 여인에게 던진 질문이지만, 사실은 우리 모두에게 던진 질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영화는 우리에게 성공한 삶이란, 즐거움과 쾌락의 실현이자 향유라는 것을 깨우쳐 줍니다.  결국 이 영화는 우리에게 인생에서 성공의 여부보다는 자기를 실현한 삶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문제 투성이의 삶에서 즐거움과 쾌락의 실현은 어렵습니다. 우리의 삶이 문제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은 우리의 삶이 형식에 걸맞지 않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삶을 바꿔야 합니다. 우리 자신의 삶의 형식을 찾아 거기에 맞추면 문제가 사라질 수 있습니다.


자신의 삶을 바꾸려면, 어떠한 향락이나 호기심도 포기하지 않는 삶의 자세를 견지하고 좋아하는 일, 할 수 있는 일을 최대한 밀고 나가야 합니다. 때로는 실패를 예견하는 씁쓸한 절망을 마주하더라도 끝까지 열정과 갈망을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쾌락에 대한 감각을 노년에 이르도록 지켜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더불어 욕망만이 영혼과 마음을 젊게 한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 삶의 본질은 비극적이다. 그러나 그런 인생이 수정될 수 있는 가능성을 찾아가는 것이 사람의 길이다.


조너선 프랜즌의 소설 <인생수정>은 이런 의미를 이야기해 줍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얼마든지 바꿀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행복해야 합니다.

사진 출처 구글



나는 그동안 나의 행복을 발견하기 위하여 나 자신의 취향을 견고히 다지는 노력을 해왔습니다. 나의 와인 취향도 그런 노력의 일환으로 보아도 될 것입니다. 와인 취향은 사회적ㆍ경제적 요인으로 결정된다는 부르디외의 말이 아니더라도 와인은 실존적으로 동등하지 않습니다. 와인의 높이와 깊이는 테루아와 체계에서 나옵니다. 그래서 와인은 복합성이라는 개념에 이르게 됩니다.

 풍만한 와인잔에 담겨 있는 붉은 액체, 그 자체가 관능적입니다. 와인은 그냥 단순하고 붉은색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영혼을 흔드는 깊이감이 존재합니다. 그런 와인을 마시면 누구나 행복해질 것입니다.


나는 행복해지기 위하여 와인 한 병을 땁니다.

콩트 세나르가 만든 코르통 앙 샤를마뉴(CORTON EN CHARLEMAGNE) 그랑크뤼 2009입니다. 앙 샤를마뉴는 코르통  클리마의 리외디 이름입니다.

이 와인을 만든 도멘 세나르는 오래된 부르고뉴 와인 명가입니다. 필립 세나르는 로마네꽁띠가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늘 조언을 구했을 만큼 부르고뉴 캡틴 와인 메이커로 일흔두 번의 빈티지를 수확하고 2021년에 작고했습니다. 지금의 도멘 세나르는 필립의 딸 로레인의 지휘하에 와인을 만들고 있습니다.  로레인은 2002년부터 아버지와 함께 그러나 각자의 뀌베 와인을 만들어 왔습니다.

왼쪽은 딸 로레인이 만든 와인

오른쪽은 아버지 필립이 만든 와인


코르통은 알록스 코르통에서 유명한 클리마입니다. 지질학적으로 강한 미네랄리티가 와인의 무게감은 부여하고 있습니다. 화이트, 레드 와인 모두에서 단단한 근육질을 느낄 수 있습니다. 부르고뉴 와인을 대표하는 코트 드 뉘에 비해 이곳의 와인은 무거운 보디감과 풍부한 풍미를 보여줍니다. 이는 이 지역의 토양이 석회암보다 이회토(석회석을 함유한 진흙질  토양)로 구성된 두터운 테루아에 기인합니다. 코르통은 화이트가 시그니처 와인이지만 레드와인 또한 멋진 특성으로 시음자를 유혹합니다.


와인 병의 코르크가 열리자 매혹의 아로마가 엄습해 왔습니다. 테이블에는 갑자기 욕망의 바람이 일었습니다. 그녀의 향기를 맡는 순간, 모두는 그녀와의 거리감 때문에  동요했습니다. 어떤 저항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나는 깨달았습니다. 15년 숙성된 이 와인의 미덕은 반짝이는 아름다운 가넷빛으로 변모해 가는 붉음과 치명적인 달콤함과 매력적인 쓴맛을 보여주면서 우아한 닌으로 단단한 골격을 느끼게 하는 균형감입니다. 무엇보다 풍부한 아로마가 뿜어내는 향기는 단숨에 마실 수 없도록 시음자를 주춤거리게 만듭니다. 블루베리, 체리 등의 과일향과 더불어 바이올렛 꽃향이 주는 미감은 무척 이국적입니다. 단단한 닌 너머 감초와 민트 같은 향신료 향이 피니쉬를 길게 이끌고 갑니다.


피노누아라는 품종은 근본적으로  부드러움을 지녔습니다. 코르통의  테루아가 보디감을 던져준다 하더라도 그 산뜻함은 피노누아의 품성입니다.  나비가 날듯 덧없는 몰아적(沒我的)인 부드러움에는 아름다움이 녹아 있습니다.

이처럼 즐거움과 매혹을 지닌 특성으로 와인은 미감을 창출해 냅니다.

 이런 아름다움은 분명 삶에 유용합니다. 좋은 삶에는 아름다움이 깃들여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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