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위대한 와인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그런 위대한 와인이 생산되는 지역이 있습니다. 바로 프랑스의 보르도가 그중 하나입니다. 보르도는 지구상에서 고급 와인이 가장 많이 생산되는 곳입니다. 아울러 이 지역은 특유의 지적인 매력으로 사람들을 유혹하는 와인의 땅입니다. 그러니까 ‘보르도’라는 말은 최상급 와인에 대한 기대감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여지없이 흔들어놓습니다.
-박 교수님. 보르도에서 공부하셨지요. 시간 좀 내주세요. 와인 한잔합시다.
저의 요구에 흔쾌히 응해주신 박철화 교수를 논현동 와인북 카페에서 만나는 날은 장마가 시작되는 시점이어서 흐리고 비가 오다 말다 하는 다소 무더운 날씨였습니다. 문학 평론가 박 교수와 함께 와인을 나누면서 삶의 좌표를 찾기 어려운 혼란한 이 시대에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이야기했습니다.
샤토 팔머(Chateau Palmer)는 공식적으로 메독 그랑 크뤼 3등급 와인이지만 자주 1등급을 능가하는 품질을 자랑합니다. 샤토 마고와 더불어 마고 마을을 대표하는 양대 산맥으로 슈퍼 세컨드 와인으로 불립니다. 또한 5대 샤토 다음에 위치하는 메독의 8대 와인으로 당당히 그 위상을 자랑합니다. 양조장의 역사도 깊고 전통적 방식으로 양조하는 팔머는 메를로를 매우 높은 비율로 블렌딩 합니다. 다른 양조장에 비해서 침출 기간을 길게 두어(20-28일) 풍부한 색과 풍부한 타닌을 드러내주는 와인을 만듭니다. 팔머의 특징은 부드러움과 우아함에 있고 특히 매혹적 향으로 마고 마을 와인의 아이덴티티를 보여줍니다. 연간 13만 병 전후로 생산하는 마고 마을의 탐스러운 와인 중 하나로 그레이트 빈티지일 때에는 매혹적인 아로마와 미감을 갖추어 1등급 못 지 않는 품질로 와인 마니아들을 열광시킵니다.
-보르도 대학과는 어떻게 인연을 맺으셨나요?
- 프랑스 회화를 위한 초급 과정이 있어서 그곳으로 갔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학위 과정을 위한 독해와 글쓰기가 아니라, 최소한의 말하기 능력이었기 때문입니다. 미식과 와인의 도시 보르도에서 보낸 한 철은, 천국이었습니다. 그 대학 기숙사에서 요리를 익혔고, 와인을 배웠으며, 학생들과 어울려 저 멀리 피레네와 지중해로, 대서양의 스페인으로 며칠씩 여행을 떠나곤 했습니다. 행복이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아니 바슐라르의 말처럼 우리는 행복하게 살 권리를 갖고 태어났다는 걸 거기서 온몸으로 깨달았습니다. 더 일찍 그런 삶이 있다는 걸 알지 못해 원통한 나머지 눈물이 날 지경이었습니다. 내가 감각적 쾌락주의자라는 막연한 느낌 역시 거기서 더 또렷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 박 교수께서 존경하는 스승인 김현 선생이 떠오르는군요. ‘나를 괴롭히는 것은 나는 왜 행복을 노래해서는 안 되는 것일까라는 고통에 찬 회의였다. 우리는 왜 계속 고통의 제스처만을 보여주어야 하는가?’라고 토로하신 적이 있지요. 스승의 회한을 제자께서 풀어내셨습니다. 결코 행복은 불가능한 꿈이 아닐 것입니다. <감각의 실존>이라는 책도 쓰셨는데 감각적 삶의 중요성을 기회 있을 때마다 언급하시는 이유를 이제 알 듯합니다.
- 나날이 충만하게 사는 것이 중요할 뿐, 죽음은 언제든 찾아올 운명입니다. 내가 두 발로 딛는 대지의 약동과 이마를 스치는 바람을 더 소중하게 느끼는 것은 이지적, 논리적 삶을 선택하지 않겠다는 선언이기도 합니다. 나는 감각의 명징함을 방해하는 과도한 취기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좋은 술은 즐겁게 마시고, 집에 들어가 잘 씻은 다음, 음악을 듣거나 신문을 뒤적이다 자리에 눕는 순간의 기쁨이 있습니다. 맨 정신으로 잠자리에 드는 일을 사랑합니다. 도박이나 섹스가 그러하듯 알코올의 광포함 또한 내 존재를 지배하지 않도록 노력해 왔습니다. 나는 내 존재를 따뜻하게 덥힐 정도 이상의 술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와인은 취하려고 마시는 술이 아니라 함께 있음을 느끼려고 마시는 술입니다. 와인의 진정한 가치는 따뜻한 마음으로 교감할 수 있다는 데 있습니다. 취하는 순간 쓸쓸한 혼자가 됩니다.
- 무척 공감되는 말씀입니다. 와인은 고이 모셔두기 위해 존재하는 사물이 아니지요. 셀러에 최고의 와인들로 가득 채워놓고 마시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충분히 숙성된 와인이라면 진정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불러 모아 오늘 당장 열어야 합니다. 와인을 나누면 서로가 더 가까워져 우정이 돈독해지고 관능적인 분위기를 만들 수 있으며 인생이 풍부해집니다. 와인을 나눈다는 의미는 상대방을 배려하고 즐거움과 기쁨을 더불어 느끼겠다는 따뜻한 마음의 표현입니다. 이 따뜻함이 모이면 긍정적이고 창조적인 에너지가 되겠지요.
샤토 팔머의 셀라 (사진=Chateau Palmer)
-인간은 자신이 불완전하다는 것을 알 때까지 성숙해야 한다’는 문장을 사랑한다고 책에 쓰셨는데 예술가도 여기에 해당될까요?
-파블로 피카소는 아버지가 미술 학교의 교사였으며, 본인은 바르셀로나 미술학교에서 공부했다는 이력을 한사코 감췄습니다. 자신을 하늘에서 떨어진 천재로 포장하고 싶어서였습니다. 실제로 그는 자신을 그리스 신화의 제왕 제우스로 존재 이입한 작품을 적지 않게 남겼습니다. 피카소의 경우, 재능은 분명 천재였으나, 인간은 개차반이었지요. 나는 파리의 피카소 미술관부터 시작해서 유럽 전역의 피카소 작품을 거의 보았습니다. 그는 천재입니다. 하지만 작품의 성숙과 인간적 미성숙이 모순을 이루고 있다는 것 역시 받아들이기 쉽지 않지만 사실입니다. 천재의 작품은 감탄스럽지만 감동이 일지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피카소의 친구 조각가 자코메티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피카소가 예술가인 줄 알았는데, 그냥 천재일 뿐이더군! 우리의 문학예술계에도 그 모순의 예는 많습니다.
- 정치철학자 뤽 페리도 나는 피카소가 싫어요. 좋았던 적이 없어요.라고 말했고, 시인이며 소설가인 미셸 우엘벡은 피카소가 색채감이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들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이제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좋아하는 화가는 누구입니까?
- 앙리 마티스를 좋아합니다. 삶의 행복과 쾌락이 그림의 주제였지요. 햇살이 없는 북프랑스에서 태어나 살다가 지중해에서 여름을 보내면서 아라비아 모티프에 매혹되고 빛과 색을 발견했습니다. 그가 탐색한 빛과 색의 핵심은 바로 행복이었습니다.
-저도 유럽의 미술관에서 마티스의 그림을 본 적이 있었는데요. <사치, 고요, 그리고 쾌락>이라는 제목의 그림이 떠오릅니다. 육체적인 감각에 대한 기억을 그토록 단순한 수단에 의해 표현한 화가는 아마도 없을 듯합니다.
프랑스 문학사에서는 누구를 꼽고 싶으신지요?
- 프랑스 문학사의 가장 위대한 인물을 꼽으라면 빅토르 위고가 아닐까요. 그런데 가장 매력적인 인물이라면 아르튀르 랭보와 알베르 카뮈일 것입니다. 무엇보다 그들은 오래 살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카뮈는 몇 권의 걸작을 낼 지나치지 않은 나이까지만 살다가 갔습니다. 그의 미완성 유작 제목은 <최초의 인간>입니다. 나는 그의 수줍음과 말 없음이 좋습니다. 다른 말로 그것은 고결함이지요. 카뮈는 가난으로부터 그 고결함을 배웠습니다. 일자리를 찾아 식민지로 온 프랑스인 아버지는 일찍 전쟁터에서 죽었고 스페인계 어머니는 입으로는 의사소통을 할 수 없는 장애인이었습니다. 하늘과 바다 말고는 아무것도 갖지 못했습니다. 카뮈 문장의 군더더기 없는 간결함은 어쩌면 거기서 출발했을지 모릅니다. 가난하게 살았다고 다 비천한 짓을 하지는 않습니다. 부자라고 모두 고결하지 않듯이. 카뮈가 사랑했던 지중해의 햇살을 떠올리며 따뜻한 커피로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은 행복합니다.
- 문학언어는 랑그입니까 파롤입니까?
- 문학언어는 시인 작가의 것이 아닙니다. 문학은 개인어(parole)를 집단어(langue)로부터 빌어서 쓰는 것입니다. 물론 어느 순간 파롤은 랑그에 균열을 내며 새로운 말을 선보이기도 하지만 그래봐야 언어일반 랑그의 한 표현일 뿐입니다. 아무리 색다르고 예쁜 꽃이라도 씨앗의 한 발현 형태인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말은 자신의 것이 아니라 빌어 쓰는 것이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써야 하며 한없이 신중하고 겸손해야 합니다. 알베르 카뮈가 말했습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대상에 대해 말할 때, 가장 좋은 방법은 가볍게 말하는 것이다. 그때의 그 가볍게는 경박하게가 아니라 겸손하며 조심스럽다는 뜻이지요. 따라서 시건방 떨며 목소리 큰 잘난 척의 언어는 말의 진정한 의미에서 문학어일 수 없습니다. 문학예술의 언어가 정치나 법률의 언어와 갈라지는 지점이 바로 여기입니다.
- 일찍이 김현 선생은 문학은 써먹는 것이 아니다. 문학은 유용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인간을 억압하지 않는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문학이 삶에 대해 어떤 해답을 줄 수 있을까요?
- 문학은 개별적이고 실존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문학은 작은 언어에 귀를 기울여 줍니다. 곧 자신과 대면하는 언어 그것이 문학이지요. 그리고 삶이란 의미 없음과의 싸움이며, 문학은 그 의미를 복합적으로 묻는 ‘열린 형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문학은 돈과 권력을 지향하지 않습니다. 문학이 가진 것이라고는 그 소소함으로 존재와 삶의 의미를 묻고 또 묻는 품격입니다. 결국 문학의 화두는 존재의 행복을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문학은 그 지난한 과정을 통해 고통을 극복하는 내밀한 언어로 존재를 설명하는 형식입니다.
- 제가 대학을 다니던 70년대에는 실로 문학의 시대였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그때와 같은 열기는 사라지고 자본주의의 거대한 힘에 묻혀가고 있습니다. 지금도 문학의 효용성을 주장할 수 있을까요?
- 문학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사회는 꿈을 꿀 수가 있습니다. 문학이 다만 실천의 도구일 때 사회는 꿈을 꿀 자리를 잃어버립니다. 꿈이 없을 때 사회개조는 있을 수가 없습니다. 문학은 고대의 제식에 쓰인 노래의 가사에서부터 시작해 시와 희곡 그리고 소설로 스스로의 울타리를 열며 인류의 영혼과 물질의 역사를 기록하고 또 제시해 왔습니다. 그것의 가장 커다란 힘은 그 모든 것을 담아 온 총체성이자 개별적인 구체성이며, 또한 모든 것을 담기 위해 변신해 온 유연함입니다. 그러니 이 어지러운 속도의 신세계 또한 그 자신의 문학을 갖고 있을 것입니다.
-오늘 와인은 질감이 매끄럽고 유연하며 그윽한 과일 맛이 느껴지는군요. 이는 팔머가 지닌 전형적인 모습으로 만족스럽습니다. 마고 마을을 대표하는 와인이지만 메를로 품종에서 비롯된 특유의 유연함과 두툼한 성격은 포므롤적인 스타일로 한껏 개성을 드러내줍니다. 마치 중년 여성이 자신을 지키면서도 아름다움과 기품을 우아하게 과시하는 이웃집 여인 같은 와인입니다.
- 저에게 오퍼스원 와인이 있습니다. 언제 선배와 함께 마시고 싶습니다.
- 보르도에서 나파밸리로 날아가는 거군요. 좋습니다. 우리는 또 만나야겠군요.
보르도의 위대한 와인을 프랑스 사람들은 ‘테루아’ 와인이라고 합니다. 이 지역은 테루아가 핵심이고 이 개념은 보르도 와인을 세계의 다른 와인들과 구별 짓게 하는 키워드입니다. 곧 테루아를 이해하지 못하면 보르도 와인 나아가 프랑스 와인에 대한 이해는 불가능할 지경에 이르고 맙니다. 그만큼 테루아 개념은 중요합니다. 저는 오래전부터 테루아 개념에 조금 불만스러움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제 나름대로 재 정의해 보았습니다. 교수님, 길지만 한번 들어 보세요.
테루아(Terroir)는 기후, 지형, 지질, 일조량, 경사도 등 한 포도밭의 특징을 이루는 자연환경의 일체를 포괄하는 말입니다. 최근에는 그 자연적 요소에 더하여 사람(포도 경작자, 와인 양조자)이라는 인간적 요소가 첨가되었습니다. 테루아의 특성을 드러내고 좋은 와인을 양조하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는 사람입니다. 포도 재배와 수확, 파쇄, 발효, 숙성, 병입, 코르크 밀봉, 판매 등 모든 과정마다 최고의 전문가가 필요합니다. 이런 전문가들 없이는 아무리 자연적 테루아가 좋은 곳이라 하더라도 로마네 콩티나 페트뤼스 혹은 샤토 라피트와 같은 위대한 와인을 만들지는 못합니다. 물론 뛰어난 자연적 테루아 없이 인간의 힘만으로 뛰어난 와인을 만들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테루아의 가치는 인간의 노동에 의해 드러납니다. 한 술 더 떠서 나파밸리 와인의 전설 미엔코 그르기치는 위대한 와인을 만들기 위해서는 와인 메이커의 예술적 감각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와인을 만드는 것은 예술품을 창조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포도 재배와 양조에는 기후조건과 산지의 환경 그리고 전문가뿐만 아니라 위기, 도약 그리고 오랜 역사와 함께해 온 꿈과 실패 등이 점철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를 포괄하는 테루아 개념이 다시 정리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곧 테루아의 기본 개념에 인간적 요소와 더불어 와인의 역사와 문화적 배경도 포함되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인간의 경험을 이해하는 가장 풍부한 자료는 역사와 문화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와인의 역사와 와인의 문화는 포도밭을 가꾸고 와인의 양조를 완벽하게 수행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여기에 힘입어 와인 양조는 눈부신 기술적 발전을 거듭해 왔습니다. 과거 100년 전의 와인과 오늘날의 와인은 현격하게 다릅니다. 이러한 결과를 놓고 보더라도 테루아에는 자연적 요소와 인간적 요소와는 또 다른 층위로 역사와 문화가 작동합니다. 그리고 이 역사와 문화의 작용은 와인의 미래에 대처할 수 있도록 이끌어 줍니다. 이러한 요소는 인간의 경험으로 체화됩니다. 그래서 오늘날의 와인은 인간 경험의 산물인 것입니다. 이때 역사는 목적론적으로 작용하여 어떤 정점이나 목표를 향해서 나아갑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문화가 탄생하는 것입니다. 결국 테루아라는 말은 와인의 생산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소를 총괄해서 정의를 내려야 합니다. 나는 감히 테루아의 정의를 이렇게 개념화하고 싶습니다.
테루아는
일정 지역의 유니크한 장소로서
포도 재배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자연적 요소와
인간적 요소가 만나는 곳이다.
그리고 와인의 역사와
문화가 결합되는
인간적 경험의 장소이기도 하다.
‘테루아’는 프랑스 사람들이 창안한 개념으로 프랑스 와인을 세계의 다른 와인들과 구별 짓게 하려는 의도를 내포하는 말이었습니다. 크베브리라는 항아리에서 와인을 숙성시키는 이탈리아의 와인 명인 요스코 그라브너는 말합니다.
그 당시에는 아직 프랑스인들이
테루아 타령을 하는 것이
테루아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을 몰랐어.
그래서 와인에 토스팅 향과 타닌을 집어넣으려니
바리크를 쓸 수밖에 없었지.
그라브너의 이 말에는 프랑스인들의 자연과 땅에 대한 자부심이 결국 마케팅의 결과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모든 가치를 시로 만들 줄 아는 프랑스인들의 지혜를 배워야 하면서도 테루아 개념은 이처럼 많은 반격을 받아 왔습니다. 이것은 곧 테루아를 자연적 조건에만 한정한 협소한 정의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제 테루아라는 말은 프랑스를 넘어 세계화된 용어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자연적 요소와 인간적 요소를 가미한 기존의 정의에서 역사와 문화적 요소가 더해진 ‘테루아’의 새로운 개념은 그런 논란을 희석시켜 주리라 기대합니다.
- 기존의 테루아 개념을 보완한 새로운 정의는 좋은 시도입니다. 그런 노력으로 세상은 변화됩니다.
- 대한민국이 경제적으로도 선진국이 되었지만 특히 문화적으로 눈부신 성취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 제가 프랑스에서 유학하던 1990년대만 하더라도 서양인들에게 한국은 아시아의 작은 나라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한국의 위상이 달라졌습니다. 세계사에서 식민지배를 당했던 나라가 식민통치를 한 제국주의 국가를 앞선 사례는 딱 세 번 뿐입니다. 미국이 영국을, 아일랜드가 영국을, 그리고 대한민국이 일본을 앞선 일이 그것입니다. 그들이 우리를 높이 평가하는 것은 경제보다도 우리가 개성적인 문화를 선보이기 때문입니다. 부커상 수상을 비롯해 읽히기 시작한 한국 문학, 아카데미와 칸 영화제 등에서 거듭 트로피를 움켜쥐는 한국 영화, 빌보드 차트 1위를 찍는 BTS를 비롯한 한국 대중음악, 조성진과 임윤찬처럼 클래식 음악계를 놀라게 하는 한국 연주자들 등등 작은 나라 한국은 서양인들에게 새로운 문화의 보고가 되고 있습니다. 나는 무엇보다 개방에서 그 힘을 찾고 싶습니다. IMF 구제금융 시대에는 암울했지만 우리는 주저앉지 않고 타의에 의해 강요된 문호 개방을 적극적으로 활용했습니다. 더 강한 외부 세계와 경쟁하면서 인류 보편의 기준을 배우며 우리 자신을 성숙하게 만드는 데에 성공한 것입니다. 준전시 분단국가란 한계를 자유와 민주주의의 근본 가치를 내면화하며 세계시민이 되는 계기를 만들었습니다. 개방과 경쟁을 통해 우리는 세계와 연결되고,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인류 보편의 가치를 증명하며, 뛰어난 인적자원에 힘입어 지금의 성취를 거두었습니다. 그러니 나와 같음에 매달리지 않고, 오히려 다름에 문을 열어 새로운 에너지를 얻는 일, 그것이야말로 작은 나라 대한민국이 경제강국, 문화 선진국이 되는 지혜일 것입니다.
이제 와인병이 비었고, 밤은 깊어갑니다. 박 교수가 오히려 저보고 갈 시간이 되지 않았느냐고 다그칩니다. 정말 이젠 일어나야 할 시간입니다.
와인은 소통의 도구로 최고의 매체입니다. 소설가 옥타비오 파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와인과 관련된 모델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플라톤의 향연이고
다른 하나는 최후의 만찬이다.
와인은 가장 고양된 형태의 대화,
즉 철학적 대화와 연결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리스도의 피를 비유하는 동시에
초월적인 것과의 소통을 상징하는 것으로서의 영성체를 의미한다.
이처럼 와인 한 잔을 사이에 두고 나누는 대화는 일상적인 수다를 넘어서 철학적 소통을 가능케 합니다. 울분을 토로하거나 무엇인가를 잊고 싶은 심정에서 들이키는 소주나 맥주와는 다른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오늘 박철화 교수와 함께한 시간은 행복했고 그런 의미에서 샤토 팔머 와인에게도 깊은 감사를 표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