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곳간
비로소 이름이 없다.
여기서 태운 불
저기서 태운 불
이모저모 각양각색
이름 짓기 바빠
타들어가는 줄도 모르고
한 줌도 안 되는 재가 되어
그저 새하얗게 새하얗게
타들어가는 줄도 모르고
그렇게
내가 타들어가는 줄도 모르고
비로소 이름이 없다.
덧없는 전쟁
그저 조용히
산소를 추수한다.
그저 조용히
한 걸음 물러난다.
나의 곳간에
캐캐묵은 침묵을 쟁여둔다.
악을 먹은 나무는
조용히 숨을 거둔다.
내가 새하얗게 타는 줄도 모르고.
비로소
이름이 없다.
은애 하는 나의 님아,
부디 악을 키우지 마소.
스스로를 새하얗게 태우는 그 악의 싹을 자르소.
차라리 침묵을 택하소.
한 줌도 안 되는 재가 될지언정.
은애 하는 나의 님아,
부디 그 강을 건너지 마소.
그 너머엔 차디찬 재뿐이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