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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혜숙 Dec 13. 2021

분청사기를 만나다

분청사기의 역사, 개념, 기법과 의의


 


      몇 년 전부터 궁궐, 능, 박물관 등의 문화유산 속에서 자유를 온 몸과 머리로 만끽하면서 감동에 흠뻑 취해 보는 시간을 보냈다. 공부한다는 자세라기보다는 여러 가지에 흥미와 관심을 가지면서 즐기기 시작했다는 표현이 옳을 것이다. 온 산에 홍염처럼 물들기 시작하는 단풍이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이 가을에 조금씩 다가오기 시작해서 내 마음을 사로잡은 분청사기!   학창시절을 지내면서 이제까지 고려청자와 백자만을 우리 문화 유산 중의 걸작이라고 여기면서 긍지와 자부심을 느껴왔다. 그렇기에 분청사기라는 도자기에는 별 관심이 없이 지내왔다. 그러나 우아하게 기품이 넘치는 백자와 청자에서 볼 수 없었던 자유로운 정신의 틀에서 파격적인 매력이 분청사기에서 느껴지기 시작했고, 우리 선조들의 자유로운 예술에 대한 열정과 숨결이 가슴을 설레게 했다. 이 글에서 이렇게 다양하게 혁신적인 기법으로 영혼을 자유롭게 춤추게 했던 분청사기의 다양한 특성을 명칭과 역사, 표현기법, 의의 등을 살펴보면서 자세하게 알아보고 싶다.



분청사기의 역사:


    고려 말, 망해가는 나라의 운명 속에서 분청사기는 태동되기 시작한다. 국가에서 지원되고 관리되던 청자 가마에 국가의 지원이 끊어지자 도공들은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고, 이들은 소규모 가마에서 청자상감으로 생활 용기를 만들었고, 이후 이것으로부터 분청상감이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고려시대 청자가 빛을 잃어가고 쇠퇴해질 무렵 역성혁명에 성공하여 태조 이성계는 조선을 개국하는 왕이 되었다. 나라의 시작과 함께 분청사기도 그 시대에 맞는 시대 정신으로 고려 시대와는 다른 옷으로 다른 몸짓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14세기 중엽에서 16세기 중엽까지 200여 년을 활발하게 만들어졌다. 초기에는 관공서와 민간 양쪽에서 분청사기를 만들었으나 15세기 후반 경기도 광주 일대에 관요가 설립되고 관요에서 백자를 만들어 사용함으로써 분청사기는 생산량이 점점 줄어들게 되고 백자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쇠퇴의 길로 걷게 되었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 분청사기는 다시금 사랑받게 되고 많은 예술가들의 영감으로 활발히 원래의 자리를 향해 비상하려는 날개짓을 시작하는 중이다.



분청사기의 명칭


     분청사기라는 말은 고유섭 선생님께서 ‘분장회청사기’라는 이름을 붙인데서 시작된다. 백토로 분장하여 회청색이 나는 도자기의 특징에서 나온 이름이다. 고려청자,분청사기, 백자들이 보이는 차이점은 태토의 차이에서 온다. 분청사기의  태토는 청자와 백자에 비하여 훨씬 흑회색을 띠고 있는 흑토를 사용한다. 그 위에 백토를 분장하여 구웠을 때 회청색의 빛깔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분청사기의 명문

     

     도자기 표면에 새기거나 그린 글자나 숫자 등을 명문이라고 한다. 명문의 내용은  사기장의 이름, 그릇을 납품할 관청 이름, 지방이름, 제작시기, 사용처나 등급표시 등이다. 이름을 새기게 된 동기는 관청명은 도난당하는 폐단을 막고자 함이며, 사기장의 이름은 하층민의 이름에서 사용되던 글자나성씨를 굽 밑바닥에 새겨넣은 예들을 볼 때 그릇 실명제를 실시하여 책임감을 물으려 한 것으로 보인다.



분청사기의 기법


     분청사기는 질박함 속에서도 매우 다양한 기법들이 사용되어 똑같지 않음에서 오는 자유로움과 자연스러운 느낌을 준다. 청자의 정형화된 세련된 품격과 세련된  비색에서 한 발 벗어나 보는 이로 하여금 숨통이 트이게 하고 예술가로 하여금 도전정신을 갖게 하고 실험정신을 도모하게 함으로써 한층 승화된 창의성을 느끼게 한다. 분청자기에서 사용된 여러 가지 방법들은 현대의 도자기 기법에서도 많이 쓰이고 있는 매우 현대적인 기법이라고 할 수 있다. 분청사기의 표현 기법들을 살펴보면 먼저 일정한 무늬를 도장과 같이 만들어 그릇 표면에 찍은 뒤 백토로 분장하는 인화 기법, 무늬를 파고 백토를 밀어 넣는 상감 기법, 백토로 분장한 후, 선 등을 그리는 음각(조화)기법, 무늬의 배경만을 긁어내어 무늬만 하얗게 나타내는 박지 기법, 분장한 후, 철사 안료로 그림을 그리는 철화 기법, 귀얄(풀이나옻을 칠할 때 쓰는 풀비)이라는 칠하는 도구를 사용하여 백토 분장하는 귀얄 기법, 백토물에 그릇을 담가 넣어 분장하는 덤벙 기법 등이 있다. 이러한 다양한 기법에 의해서 분청사기는 현대에까지 그 정신이 이어져 많은 예술가들이 가야 할 방향이라고 여겨지게 되었다.


분청사기의 의의


     분청사기는 그 시대에 갖는 전형과 정형에서 벗어나 그들만의 방식으로 다양한 여러 가지 모습으로 발전되었고, 투박함과 질박함 속에서 형태와 문양이 자유롭고 창의적으로 구현되어 현대에 이르러서는 그 정신이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제시해 주게 되었다. 분청사기의 자유로운 정신은 오늘날 가장 한국적인 미의 아름다움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분청사기는 파격 속에서도 미의식을 잃지 않은 채 청자와 백자와 더불어 공존하여 빛나는 우리 문화재로서 영원히 우리 민족과 생명을 함께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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