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림의 "가난한 사랑 노래'를 다시 읽다
부제 "이웃의 한 젊은이를 위하여'
이십여 년 전의 읽은 기억과 느낌을 해마다 되새김 하는 시이다. 가을 감이 익어 빨갛게 되어 까치밥으로 몇 개 허공 중에 흔들릴 쯤에 마음속에서 계속 되뇌이는 시가 “가난한 사랑 노래'이다. 낙엽 뒹구는 황량한 바람과 함께 발걸음 떼다 보면 왠지 이 시 속의 젊은이가 나와 함께 동행하게 된다.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사랑을 모르겠는가,
여러 개의 의문으로 물어오고 있지만 어느 것 하나도 답을 요구하는 것은 없다. 단지 절절하게 두려움과 그리움과 사랑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가난이라는 숙명 앞에서 이별이 감지된 두려움에 몸이 떨려온 시련 앞에선 젊은이 모습이 전율처럼 전달된다. 자신의 인생을 감당하기도 힘든 아직 인생의 주체자가 되기도 어려운 혼돈 속에서 방황하고 있는 젊은이는 사랑조차 누릴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오열을 삼키고 있는 것이다.
이 시가 배경이 되는 시대는 지금보다 몇 십여 년 전으로 경제적 상황이 지금과 비교도 할 수 없는 궁핍한 시절이었다. 부모님께 생활비를 보내드려야 하는 젊은이들이 산업역군으로 활동하는 시대에 사랑은 어차피 사치였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시골집에 열렸던 새빨간 감과 연결된 바람소리가 새빨간 바람소리로 공감각적 심상으로 표현된다. 삭막하고 어려운 경제 상황과는 대조되기에 더 처연한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 언뜻언뜻 내 귀에도 바람소리가 새빨간 바람 소리로 들려올 때가 있다. 아름답기도, 서럽기도 한 그런 처절한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고향 집의 어머니가 그리워 눈물 나는 그런 젊은이로 집안을 버릴 수도 없어 이별을 결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요즘에도 어딘가에도 그런 아픔을 가진 젊은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아마 과거에 비해 훨씬 찾아보기 힘들 수는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시에서 보이는 젊은이의 이별의 아픔에 공감하기 힘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이별을 해보지 않았지만 가슴이 아릴 만큼 슬픈 젊은이의 사랑 앞에 가슴이 절절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시대는 변했어도 사랑이 주는 감동은 영원할 것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너무나 끔찍한 뉴스들을 수시로 접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여러 가지로 소식들은 다르지만 젊은이들의 사랑의 모습에 더욱 충격을 받을 때가 있다. 이별을 통보하는 연인을 향한 복수는 차마 입으로로, 글로도 표현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고, 이 상황이 여과없이 보도되고는 한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범죄 행위가 과연 사랑이라고 할 수는 있는 것일까? 감히 사랑을 논할 자격은 없기도 하고 정확하게 알 수도 없다. 그러나 사랑을 안 받아준다고 해서 적개심으로 변하는 것은 그게 사랑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사랑에는 자격 조건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나 사랑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가을이 지나고 코끝 빨갛게 물든 이 겨울쯤 신경림 시인의 "이웃집 청년을 위하여'라는 시가 마음속에 감바람 소리를 내며 들어온다. 그 청년도 이제는 한 가정의 남편으로, 아버지로서 당당히 사랑을 누리기를 간절하게 바라는 마음이다. 한 번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은 아픔이 승화되어 더큰 사랑의 결실을 이루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