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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혜숙 Jan 01. 2022

새해에 떠오르는 해

박재삼 시인의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을 떠올리며



   오늘은 2022년 1월 1일,

새해가 밝았다.  물론 새해라는 것은 없다.  사람들의 인식 체계에서 분류되고, 구분된  그런 명칭일 것이다.  12월 31일  돋는 해와 1월 1일 돋는 해가 어찌  다를 수 있을 것인가?  동쪽에 돋는 해와 서쪽에 지는 해가 어떻게 다를 수 있을  것인가? 그러함에도  우리는  다르게 인식하고 받아들인다.


   1월 1일 새벽녘에  새빨갛게 피어나는 꽃 같은 해로부터 감탄과 탄성을 빚어내며 희망을 꿈꾸지만 저녁 무렵 지는 노을 속에 장관을  그려내는 일몰 광경에서는 아름다움을 고요한 서러움과 함께 숙연함으로 느끼곤 한다.  내가 있는 지구의  반대쪽에서  느끼는 것은 상반되고 대조될 수 있는 감정일  수 있지만 우리는 그냥 내가 있는 쪽에서 그것을 중심으로 받아들인다. 이성이나 논리는 관여할 수 없는 주관적인 분야가 되는 것이다.

동해 바다에서 본 2022년1월 1일의 일출(박현숙님이 보내준 사진)


서해 석모도에서  바라본 일몰(2022.1.2)



   박재삼 시인의 "울음이 가을 강'에서는 해 질 녘 가을쯤에 강에 비친  지는 해의 붉은 빛을  울음이 탄다고 표현했다.  피 흘리는 눈물도 아닌 울음이 타는 가을 강!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와 죽은 사람을 위한  제사를 지내러  가는 여정에서 느끼는 감정이  일몰에 이입되어 울음이 탄다는 것으로 표현되었다.  만약에 이른 봄의 새벽녘에 보이는 떠오른 태양을 보면서  울음이   타는 이라는 표현을 썼다면  많은 사람들은 공감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는 해를  보면서 소리를 지르며 기쁨을 노래한다고 해도 할 말은 없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의 정서 속에 해지는 모습은 죽음과 연관되는 그런 느낌으로 다가온다.   우리가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을 때  애끊는  이라는 표현이나, 애가  탄다라는 표현을 쓴다. 속이 타는 듯하다는 표현도 익숙하지만 울음이 탄다는 표현은 정말 참신해서 충격적이었던 기억이 있다.


   오늘 1월 1일,  바다에 비친 강렬한 태양빛  보면서 이제까지 내 의지로 끊을 수  없었던  많은 것들과 작별을 고하는 마음으로 어제의 태양과  마음으로부터 분리해서 오늘의 태양과 구분했다. 오늘의  태양이 새 해인 것처럼 어제까지의 내가 익숙해졌던 나쁜  생각과 습관들을  다 버리고 새로운  나로의  탄생을 염원하는  마음으로 임인년  2022년 새해를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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