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의 반대쪽 얼굴, 뻔뻔함
대중목욕탕에서 접한 코로나 일상
긴 코로나가 2년 4개월째 진행 중이다. 이 시간 동안 타인을 위해서, 나를 위해서 완전히 멈춘 것 중 하나가 대중 사우나에서 힐링하며 시간 보내기이다. 거의 몇십 년 동안 해오던 일상을 멈추는 것이 습관이 안 된 사람에게는 별일 아닌 것으로 여겨지겠지만 당사자들은 마치 금단 현상이 오듯이 불편함이 느껴진다. 몹시 망설이다 드디어 거리의 일상이 회복되는 것에 맞춰서 나도 중단했던 것들을 시작하기로 했다. 마스크도 충분히 넣고 최대한 조심하겠다고 생각하고 늘 다니던 곳, 오래된 목욕탕에 가기로 했다. 마침 3~4명의 사람들이 끝내고 나오는 중이라서 2년여 만의 안부와 인사를 나누고 탕으로 들어가니 한 노인 분이 물건들을 정리해 밖으로 나가셨다.
주위 곳곳을 둘러보니 그 탕 안 전체에 오로지 나 하나뿐이었다. 무서운 생각도 없이 안전하다는 생각 하나로
""우와!!! 완전 행운!!! 너무 신난다.''
룰루랄라를 흥얼거리며 온탕으로, 냉탕으로, 황토방으로 자리를 옮겨 다녔다. 안 써도 되는 마스크까지 착용하면서 남에게 피해는 1도 안 주겠다는 교양 있는 모습을 연출하며 그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동네의 작은 목욕탕은 정수 시설조차 설치되지 않은 작고 낡은 오래된 곳이다. 그곳에서 성장한 아들들을 다 출가시키고 노부모는 어느새 하늘나라에서 평화를 누리시고 큰 아들 내외분이 맡아서 운영하시는 곳이다. 코로나 2년 동안 문도 닫고 손님 없이 많은 시간을 힘들게 지내셨을 것이다.
엄청 행복함을 만끽하면서 밖을 보니 세신사 한 분이 졸고 계셨다. 좀 있으니 표를 파시던 분이 오셔서 황토방 전기를 꺼도 되겠냐고 물어 오셨다. 그래서 괜찮다고 그렇게 하시라고 말하고 그때서야 상황이 짐작이 되었다. 세신사에게 고객이 없다면 수입이 없는 나날이 있었을 것이고, 고객이 없는 곳의 경비는 매우 부담이 될 것이다. 나의 독탕에서의 자유가 갑자기 불편해져 버렸다. 철없음과 생각 없음의 나, 누구나 그럴 수 있겠지만 자기중심의 사고만이 우선이었음을 부끄러워했다.
행운이라고 좋아했던 거의 모든 일에는 어쩌면 다른 이의 박탈이나 아픔이 이면에 숨어 있을 수도 있겠구나가 선명하게 느껴졌다. 내가 의도하지 않은 행운이었다 해도 그로 인한 다른 이의 불행이나 상실감에 더하기는 있었을 수 있다. 우리가 늘 꿈꾸는 행운에 대한 기대는 어쩌면 뻔뻔함의 얼굴이 감춰진 것일 수도 있다.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고 마음속으로 기다리고 있는 행운이 늘 가치중립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물론 나는 일부러 행운을 만들어낼 재주도, 피해 갈 수 있는 능력도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행운이 주어졌을 때 많이 감사하고 겸손해하는 자세는 지녀야 할 것이다. 나에게 주어졌던 독탕의 기회를 2년여 만의 기다림에 대한 선물이었다고 감사히 즐겼으니 주변의 힘든 상황에 대해서도 눈을 돌리고 배려하면서 나눌 수 있는 그런 사람이고 싶다.
오늘도 하늘은 눈이 부시게 푸르고 아카시아 향내가 코를 찌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