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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혜숙 Jun 12. 2022

백석의 시 '여우난 곬족"

백석의 시 "여우 난 곬족'에서 느껴지는 풍요로움과  따스함

여우 난 곬족:  여우가 난  골짜기 부근에 사는 일가친척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빠르게 변화하는 속도에 맞춰 생활방식과 가치관 등 많은 것들을 바꾸며 살아가고 있다.  가치관이라는 것도 절대불변의 것은 아니다.  상대적인 것이기에 시대에 따라서 바뀐 가치관에 의해 제도나 윤리의식까지도 변화된 관점에 따라서 판단하고 변화를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위의 시 백석의 '여우 난 곬족'에서 보이는 가족제도나 끈끈한 유대감 같은 것도 지금부터 100여 년 전에는 당연하게 어디서나 볼 수 있었던 모습일 수 있지만 2022년을 지내는 우리들에게서는 찾기 어려운 모습이다. 친밀한 혈족 간의 정서를 지금도 아주 소수의 가정에서는 볼 수 있겠지만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일반적인 사람들에게서는 찾기 어려운 모습일 것이다.


   일제강점기 하의  백석이라는 시인에게서  느껴지는 시의 정서는 서러움과 외로움 등이 대부분이라고 생각했는데  "여우 난 곬족'이라는 시에서는 가마솥의 끓는 물에서 피어나는 수증기와 같은 따뜻함이  집안을  휘감아 돈다.


   시에서 고모들이 열거되는데 짧은 시구에서 그들의 모습,  하는 일, 사는 곳, 자식의 수까지 자세하게 알 수 있다. 짧은 시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마치 서사를 지닌 소설의 등장인물처럼 구체적으로  다가왔다. 고모 한 사람, 한 사람은 어떤 인생을 살고 있는지가 시에 드러난다. 그리고 음식물이 나열되는데 인절미, 송구떡, 콩가 루차 떡, 콩나물과  볶은 잔디와 고사리 등에서 그 지방과 그 시대의 음식을 엿볼 수 있었다. 저녁밥을  먹은  아이들의 방이 어둡도록 북적이며 쥐잡이, 승구 막질, 꼬리 잡이, 가마 타고 시집가는 놀음, 말 타고 장가가는  놀음 등에서는  아이들의  그 시대 문화를 반영하며 놀고 있는 모습이 열거된다. 아이들은 윗간  한 방에서, 엄마들은 아르간에서 웃고 이야기하고, 아질, 쌈방이 바리깨 돌림, 호박 떼기 하고, 제비손이 구손이  등을 하면서 홍게 닭이 몇 번이나 울 때쯤 잠이 든다. 아침에 시누이, 동서들이 흥성거리는 부엌에서 무이징게 국을 끓이는 모습으로 시는 끝을 맺는다.


   시 한 편에서 명절 때 모여서 아이들, 어른들의 훈훈함과 따스함으로 서로 간의 정을 소통하는 모습을 모두 볼 수 있다. 시를 읽는 것 만으로 그 온도가 전달되어 마음속에 따뜻한 그리움의 물결이  출렁인다. 이 시는 그시대 모습이 반영된 것으로 현대인의 삭막해진 인간관계, 가족관계, 미풍양속, 관습 등을 돌아보게 하는 시이다.


   물론 이 변화 속에서 나는 어떤 입장으로,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생각해보면   당당할 수만은 없다. 대가족제도를 찬성하고 있지도 않고, 많은 가족들의 화합을 위해서 대단히 노력을 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친척들의 유대감과 친밀감을 위해서 음식을 장만하고, 온 가족을 배려하는 행동을 통해서 이런 가족관계를 유지하고 싶은가라는 물음이 있다 해도 대답이 "네'가 될지  자신도 없다.  시대가 변했고, 가족 구성원 각자의 자아는 가족의 유대감을 넘어설 정도로 강해져서 집단의식보다는 개인의 사적 영역을 더 중요하게 여기게 됐기 때문이다. 요즘 자녀를 결혼시킬 정도의 나이가 든 사람들의 대화에서 제사도 자기까지만 지내고 자식에게는 물려주지 않겠다는  말들이 오고 가는 것을 들은 적이 여러 번이다. 그런 세상이 된 것이다. 합리적으로 진행되지 못한 가족 간의 행사들은 좀 더 서로에게 부담을 주지 않을 때 후손에게 전승될 수 있을 것이다.


   변화된 세상에 적응하고 살다 보니 이 시의 풍경은 매우 정겹게 그리움으로 다가온 것은 사실이다. 가족 간의 사랑은 억지와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서로가 서로에게 정이 흐를 때 가능해진다. 그래서 누구에게도 한 공간 안에서 누리는 기쁨이 공유될 때  이런 훈훈함의 정서는 꽃 필 것이다. 세상의 어떤 사람도 혼자서 세상을 맞서서 살 수는 없다. 서로에게 의지도 하면서 위로도 받을 수 있을 때 그때 비로소 세상이 맞설만한 대상이 되는 것이다.  꼭 대가족 제도가 아니라 하더라도 인간의 온기가 느껴지는 따뜻한 세상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온기로 감싸 안아주는 그런 세상에 살고 싶다. 그리고 나도 세상에 따뜻한 사람으로 살고 싶다. 손끝으로, 눈빛으로 조금의 물기라도 전해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으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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