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보낸 시간이 20여 년이다. 아파트 근처의 벌거숭이 야산에 고사목이 쓰러져 누워 있고, 죽은 나뭇가지가 쌓여 있는 채 방치되어 있었다. 저녁 해 질 녘에는 비행 청소년으로 보이는 삼삼오오의 아이들이 모여 담배를 피우기도, 험하게 인상 쓰며 비어가 섞인 욕설도 하며 그들만의 문화를 나누고 있었다. 범죄가 숨어 있는 듯한 그 산의 어둠의 느낌 때문에 그 근처를 갈 때도 먼 길을 돌아서 가곤 하는 피하고 싶은 공간이었다. 그러나 어느 날인가 공사를 시작하고 계단이 만들어지고, 나무와 꽃들이 심어지고, 체육 시설과 쉴 수 있는 벤치가 여기저기 놓이고 변화하기 시작했다. 공원이 조성되었을 때 나는 이 동네 주민임을 감사하게 여길 만큼 이 공간을 좋아했다. 정말 누구라도 걷고 싶을 정도로 아담하고 오붓한 정겨운 공간으로 다시 탄생한 것이다. 이름도 예쁜 달마을 근린공원! 얼마 전에는 물이 흐르는 계곡의 모습을 조성하고 실제로 물이 흐르면서 그 아래에서는 분수가 솟는 모습까지도 갖추게 되니 지인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그런 공원이 되었다. 나만의 비밀 정원 같은 그런 느낌이 들어 오솔길 같은 길에서 혼자 걸으며 부자가 된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누리는 사람이 주인이니까. 이렇게 아름답고 깨끗하게 가꾸어진 정원이 10년이 넘게 이 자리에 있어도 어떤 사람은 몰라서, 어떤 사람은 귀찮아서 한 번도 와보지 못한 사람들이 부지기수일 것이다. 축복이 넘쳐흘러도 자신이 누리지 못하면 축복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이렇게 조경이 잘 된 공원만을 즐기며 행복감에 취해 있어 주변에 눈을 주지 않았었다. 그러다 문득 푸른 하늘을 올려보다 공원에 인접한 한 집이 눈에 들어왔다. 2층 집이었는데 공간을 개조해서 베란다를 넓게 만들어 수십 개의 화분에게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그 공간의 주인공은 꽂과 나무였다. 형형색색의꽃들이 놓인 2층 베란다 화원은 푸른 하늘 아래 당당히 서서 온 몸에 햇빛을 맞으며 공원을 활짝 미소를 지은 채 바라보고 있었다. 그동안 공원 안에 갇혀 주변을 바라보지 않아 그들의 손짓을 보지 못했다. 그 주인 분은 공원 앞에 사시면서 또 다른 자신의 정원에 자신의 꽃을 가꾸기 시작한 것이다. 오르는 계단마다 화분이 놓이고 온 집을 둘러 꽃과 나무가 호위하고 있는 것이다. 생명과 아름다움에 대한 열정과 노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모든 사람들은 이렇게 삶의 염원을 담아 정원을 꾸밀까 하는 생각으로 동네 한 바퀴를 돌기 시작했다. 공원 아래쪽으로 다세대와 연립, 주택 등 쭉 늘어선 곳으로 발길을 옮겨보니 내 눈에 꽃들만이 눈에 들어와 연신 사진을 찍었다. 흔히 정원이라고 생각하면 집이 있고 울타리 안의 공간을 정원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정말 다양한 형태의 골목 정원들이 존재하고 있음에 깜짝 놀랐다. 고추, 파, 상추를 비롯하여 나무, 선인장에 이르기까지 온갖 꽃과 나무와 같은 생명체들은 자신만의 개성을 뽐내며 빛을 발하고 있었다. 땅이 한 뼘도 없어 보일 것 같은 작은 집의 창틀에도 화분은 얹어졌고, 집 주변의 모퉁이 땅, 나무 상자, 스티로폼 박스, 페트병, 옥상위, 대문 위 공간 등 뭔가 심을 수 있는 모든 곳에는 생명이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 땅이 인간만이 존재하는 땅이 아니구나! 하는 실감이 들었다. 뿐만 아니라 인간은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존재라는 생각도 들었다.
"다들 바쁘게 살아가는 현실 속에서도 우리는 이렇게 꽃 하나, 나무 하나를 키우면서 마음속에서 꿈과 희망을 키우고, 다른 사람의 꿈과 희망에도 물을 주고 있구나!'
단순하며 당연한 생각들을 동네 한 바퀴 돌면서 느끼고 깨달았다. 동네 정원에 꽉 찬 아름다움을 만끽하면서 왠지 사람들의 온기도 느껴지고 정감도 느껴져서 우리가 사는 세상이 살아 숨 쉬는 아름다운 정원으로 다가왔다. 꽃과 사람이 함께 물드는 동네 정원은 우리 마음속에 자라고 있는 꿈과 희망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그래서 세상은 살기에 충분히 아름다운 정원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