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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혜숙 Sep 20. 2021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

자선당 유구와 오쿠라  미술관


자선당:  경복궁 내의 건물로  왕세자와 왕세자빈이 머무는 동궁의 처소


불하:  국가, 또는 공공단체의 재산을  개인에게 팔아넘기는 일


유구:   옛날 토목 건축의 구조와 양식을 알 수 있는 실마리가 되는 자취


오쿠라 미술관:  오쿠라 기하치로라는 청일전쟁 때 무기와 군수물자를 팔아 거부가 된 사람이 만든 일본 최초의 사립 박물관에 있는 미술관


자선당 유구:  한국 문화재를 일본으로 반출한 시기는 1915년경의 일제강점기.  시정 5주년 기념으로  조선물산 공진회를 연다는 핑계로 돈 많은 일본인이나 권력층에 문화유산을 팔아넘긴 왕세자의 생활공간 자선당을  일본으로 반출하여 오쿠라 박물관의 조선관으로 쓰여  미술품 전시. 관동대지진  때 불에 탄 채 건청궁 옆 녹산에 전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윤동주 시인의 서시  앞부분이다. 일제강점기 하에서  시인이 추구한 정신 세계와 삶의 자세가 반영된 시일 것이다. 눈이  부시도록  하늘이 곱고 푸를 때에는 더욱더 하늘이 자신의 삶을 비추는 거울처럼 느껴질 수 있다. 성찰의 매개체가 되는 하늘인 것이다. 자선당 유구 앞에서 왜 이 시가 떠올랐을까?


   하늘이 푸르른 날 경복궁 내 건청궁 옆  녹산에 놓인 불에 탄 기단과 돌을 만나게 되었다. 안내판을 안 읽었다면 낡고  무너져가는 건물의 일부 또는 잔해라고 생각할 수  있을 만큼 무엇인지 추측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안내하는 글에  조선왕실 세자의 침전, 또는 생활공간인 "자선당'의 유구라고 쓰여 있었다. 고종과 명성황후의  처소 건청궁은 경복궁의 북쪽 영역에 있고, 명성황후가  일본인에게  처참하게 살해된 곳이다.  떠올리기만 해도 끔찍함에  분노가  치솟아 오르는 공간이다. 그런데 그것만으로 부족했는지 자선당 유구까지 옆에 있는 걸 보니 참담하고 자괴감까지 느껴진다.  나라의 패망 앞에서 백성도 왕도 그 어느 것도 지켜질 수 없었다는 뼈 아픈 깨달음이 생겼다.  아! 나라 잃은 백성이 어떠했는지 알 수 있게 해주는 그 모습으로 버티고 있구나.


  떠오르는 태양의 처소, 자선당은 세자와  세자빈의 생활공간으로 "동궁'이라고도 했다. 세자가 미래를  짊어지고 이끌어갈 존재라는 점에서 떠오르는 태양에 견주어지고, 그리하여 동쪽에 처소를 정하게  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왕자와 공주들이 세상의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며 최상의 권력을 향유했을 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왕이 되기 위한 수련기간은 혹독할 정도로 힘이 든 시간이었다. 그리고 권력의 암투에 버티고 살아남아야  하는  험난한 과정이다. 동궁은 미래의 왕이 되기 위한 준비 공간이기도 했던 곳이고, 그곳에 지낸 세자는 동궁마마로 불렸다.


   경복궁이라는 조선의 상징적인 공간을 없애기 위해 일본은 궁궐 안에서 박람회를 열기도 하고, 전각을 해체해서  다른 궁궐을 보수하는 자재로 쓰기도 했다. 그리고 조선의 문화재에  욕심을 내는 돈 많은 일본인에게 불하하기도 했다. 동궁 자선당은 일본인  오쿠라 기하치로에게 팔려 가서 오쿠라의  박물관의 조선관으로 사용되었다.  그 시절 오쿠라의 호텔에 묵었던 20C 초 세계적인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조선관인 자선당에서 묵었을 때 온돌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온돌과 철제 파이프를 연결하여 지금의 보일러를 개발하였다. 역사적인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겠다. 조선관으로 이용되었던 자선당은 관동대지진 때 불에 타 방치되다가 목원대 김정동 교수가 찾아내어  삼성에서  기부하는 형식으로 경복궁에 기증했다.  동궁을 복원할 때 이용했다면 더욱 의미가 있었겠지만 불에 탄 돌은 단단하지 못하여 사용할 수 없었다고 한다.


   자선당 유구를 보았을 때 중국의 마지막  황제 푸이가 정원사로 일하는  모습이 연상되었다. 한 때 최고의 영화를 기억하는 자선당은 어느 날!  돌아와 발가벗은  모습 그대로 누워 우리에게 무언가 말을 걸고 귀 기울이게 한다. 푸른 하늘 아래 누운 채 우리에게 과연 무슨 말을 하고 있을까? 다시는 겪지 말아야 할 역사적 아픔이고, 자선당 유구 앞에서 인고하며 버티고  서있는  모습에  고개를 숙이고 공감하고 싶다. 숙연해지며 목이 멘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  자선당에 거처하며 아버지 세종을 보필하며 미래의 태양이 되기 위해 동궁 시절을 보냈던  문종이 지금의 자선당의 유구를 본다면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라는 생각으로 마음은 하늘만큼 푸르지 못했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던 삶의 치열함과 순수함을 생각하면서 역사 의식을 지닌  한 사람으로 푸른 하늘 아래 우뚝 서 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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