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파친코'를 읽는 동안 느껴지는 삶의 무게는 너무 무거웠고, 고통은 참담하고 가혹하게 다가왔다. 이런 삶을 살아낸 사람들의 모습은 내게 엄청나게 크게 다가왔고 그들의 삶에 존경을 표현하고 싶었다.
120여 년 전의 한국인들의 삶은 역사적 배경을 빼고 설명할 수 없다. 일제강점기라는 시간 속에서 우리 민족이 감당해 왔던 시간들을 여러 가지 매체들을 통해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일본에서 살 수밖에 없었던 재일동포라는 분들의 삶을 깊숙이 알 수는 없었다. 지금도 물론 소설 속의 인물들을 통해서 접해 보았을 뿐이기는 하다. 그동안 일본의 신여성, 유학생, 독립운동가 등의 활동들을 알기는 했으나, 영화나 교과서를 통해 일본에서의 한국인의 삶을 알고 있는 것과는 정말 비교가 안 되는 삶의 모습이었다.
그들은 일본인들은 거의 살지 않는 지역에서 돼지우리와 같은 집에서 이방인의 낙인을 간직하고 조센징이라는 신분으로 살아야 했다. 선자를 포함한 가족들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냄새 때문에 일본인들이 피하는 김치 장사를 거리에서 리어카를 끌며 해야 했고 아이들은 학교에서 조선인이라는 편견과 차별을 견뎌내야 했다. 직장을 구하기도 어려웠을 뿐 아니라 남들보다 몇 배 노력해야 하는 차별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했다.
조선인 중에서도 고한수와 같은 인물은 일본인 밑에서 일본인과 결혼도 하고 야쿠자로 성공하여 재산도, 출세도 모두 높은 지위에 오르게 된다. 임신을 하게 된 선자라는 여성을 조선에 현지처로 두려고 했으나 선자의 거절로 뒤에서 자신의 아들 노아를 물심양면으로 도와 그 시대 최고의 명문 와세다대학에 보내기도 한다. 그 덕분에 미래를 보장받은 젊은이로 안주하나 싶던 노아는 야쿠자라는 아버지, 고한수의 존재를 알게 되고, 더러운 혈통이라는 것과 어머니의 부정한 행동에 가출을 하고 그 뒤에 자결까지 하게 되는 불행한 삶으로 끝맺는다.
주인공 선자가 혼자서 평생토록 손발이 닳고, 허리가 휘도록 밤잠도 안 자고 땀 흘린 끝에 와세다대학에 큰아들 노아를 보내고 인생은 찬란하게 꽃 필 거라고 생각했는데 노아의 이런 충격적인 선택은 인생은 정말 어떤 것이 정답인가? 하는 의문도 생기게 했다. 공부를 싫어했던 둘째 아들 모자수, 가출한 와세다 대학중퇴의 큰아들 노아, 미국에 유학시킨 모자수의 아들 솔로몬 이 세 사람은 삶의 방식, 성장 과정 등 서로 달랐는데도 결국 일본인들이 무시하고 천시하는 파친코 사업을 선택하게 된다. 이런 이들의 인생 역정을 보면서 1980년대까지 아직도 극복하지 못한 일본에서 한국인의 위상이 느껴져 가슴 한 편이 무거워졌다.
파친코 속의 선자라는 인물의 부모, 자식, 손자에 이르는 4대의 삶을 통해 일본에서 살고 있는 우리 민족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감히 어떤 이의 함부로 말할 수 없는 인생의 준엄함이 느껴졌다. 겉으로 판단할 수 없는 인생의 심오함을 온몸과 마음으로 읽은 소설.
"파친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