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했다의 기준은 나에게 없다. 무조건 외부에 있다.
연말이다. 평가 시즌이 왔다. 70% 정도의 직장인은 불공정한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대부분의 회사에서 상위 평가 구간은 최대치로 잡아도 30%를 넘길 수 없다. 개인적으로는 20-70-10이 맞다고 생각한다. 왠만한 조직의 인재 비율을 보면 꼭 필요한, 대체 불가능한 20%, 적당하게 본인에게 주어진 일을 잘 해내는 70%, 없는게 차라리 나은 10% 로 구분된다. 문제는 구성원들은 대부분 자기가 20%의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사원/대리 때는 시키는 일을 누가 더 빈틈없이 꼼꼼하게 빠르게 수행 하느냐가 일 잘하는 사람의 조건이다. 과장 쯤 되면 이런 말을 듣게 된다 "이제 시키는 일 말고 스스로 일을 만들어서 해야지?" 일을 만들어서 한다는 것이 무언인가를 고민하면서 좌충우돌 하다 보면 어느 날 알게 된다. 내가 일을 잘하는 사람인지 그냥 열심히 하는 사람인지, 아니면 열심히 하는 척하고 있는 사람인지를.
열심히 하는 사람은 기존의 방식을 바꾸지 않는다. 아무도 관심이 없고 이미 중요하지 않아진 일인데 최선을 다한다. 채용 업무를 한다면 원하는 결과는 '필요한 인재를 적정한 연봉으로 빠르게 입사'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채용 공고문의 문구 수정에 하루는 쓰고, 연봉협상 안을 짜는데 하루는 쓴다. 보다 정교한 내부 프로세스 관리는 좋지만, 거기에 쓰는 시간은 자칫하면 낭비다.
열심히 하는 척하는 사람은 문제를 직면하지 않는다. 리더십 교육을 한다면 '회사가 가고자 하는 방향을 리더들에게 명확히 인지'시키는 것이다. 우리 회사의 상황을 이해하는 것이 급선무이고 회사 내에서 한 교육이니 평가도 회사 내에서 받는 것이다. 그런데 책은 본다. 외부를 본다. 글로벌 기업은 이렇게 했고, 선도 기업은 이렇게 했다면서, 벤치 마킹을 하고 그럴싸한 미사여구로 포장된 무엇인가를 만든다. 그리고는 스스로 뿌듯해한다. 현실적이지 않다는 참가자들의 피드백은 '원래 교육의 적용은 개인의 몫이다'라던가.. '참가자들이 리더십에 대한 기본 소양이 너무 적어서..'라는 식으로 회피한다.
일을 잘하는 채용 담당자라면, 일을 잘하는 교육 담당자라면 어떻게 할까? 내 일의 품질을 판단할 사람을 만난다.
TO를 보유하고 있는 현업 리더를 만나서 전반적인 계획을 함께 잡는다. 현재 채용 프로세스를 간략하게 브리핑하고, 현업 리더가 원하는 구체적인 사안을 들으면서 가능/불가능 여부를 전달한다. 둘 간 합의된 채용 방향에 대해 각자의 상위 리더(일반적으로 팀장, 필요하다면 임원급)에게 빠르게 보고하고 승인받고 진행한다. 이미 전결을 받은 건이기에 진행 과정에서 특이 사항이 생기면 담당자와 현업 리더가 상의해서 조율한다. 어차피 상위 리더가 원하는 건, 좋은 인재가 회사의 연봉 밴드에 적절하게 빠르게 입사하는 것이다. 다른 건 현업에서 알아서 해도 된다.
교육 니즈를 처음 제시한 최상위 리더를 만난다. 직접 만나기에 너무 높으면 가까이에 있는 리더를 통해 의중을 확인한다. 교육 참가자가 될 중간 리더들 중 일부를 만나서 컨셉에 대해 논의해본다. 이러 저러한 니즈가 있어서 교육?워크숍 이런걸 기획하고 있는데 도움이 되겠는지 안되겠는지 물어본다. 러프하게 그린 안을 가지고 본인의 리더를 만난다. 아직 초기 기획임을 강조하면서 참가자, 목적, 방식, 대략의 컨텐츠, 대략의 비용을 이야기해준다. 너무 가득 가득 담아가면 덜어내자고 말하기 어렵다. HR 리더와 현업 최상위 리더의 의견이 들어갈 빈틈을 일부러 두어야 한다. 그 빈틈이 채워진 이후에 마무리하면, 두 사람 모두 자신의 의견이 반영되었고 참가자들의 생각도 담긴 교육 기획안을 받게 된다.
내 업무의 성과는 내가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 회사에서 하는 모든 일은 타인에게 평가받는 것이다. 가장 내부 지향적으로 보이는 인사도 물론 그렇다. 그걸 외면하고 계속 내부(심지어 업무 담당자인 나)의 가치를 앞세우는 것은 결코 일을 잘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일을 열심히 하는 것, 열심히 하는 척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