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은 수평적 의사결정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어느샌가 수평적 조직문화 = 우수한 조직 문화라는 인상이 생겼다. 조금 더 나아가면 이제 명목상으로 스스로 수평적 조직문화가 아니라고 하는 회사는 없는 수준이다. 그런데 정말로 수평적 조직문화가 무엇인지, 수평적 조직문화가 우리 회사에 어떤 이익을 가져다 주는지를 설명하는 회사는 별로 없다. "님 호칭을 사용해요, 자유롭게 의견은 나눌 수 있어요, 직급과 관계없이 의사결정할 수 있어요." 라는 것들이 회사의 경쟁력과 어떤 상관이 있는건지 궁금하다.
수평 조직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수직 조직은 대부분 잘 알고 있다. 군대, 병원, 공직사회, 학교.. 군대는 전형적인 상명하복이다. (오죽하면 복명복창을 시킬까) 판단은 위에서 하고 실행은 아래에서 한다. 판단 근거를 묻지 않고 실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왜?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가정한 조직이기 때문이다. 몇 차례 대학병원에서 수술을 받아봤다. 나에게는 한없이 친절했던 주치의 선생님과 담당 간호사가..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는 얼마나 큰 권위를 가진 존재인지 관찰할 수 있었다. 왜? 한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일이니 그럴 것이다. 요즘은 좀 다르지만 학교에서 선생님의 권위는 상상을 초월했다. 거칠게 말하면 한 사람의 모든 것을 좌우할 수 있었다. 옳았는지는 모르겠다. 초등학생 학부모가 되어보니, 요즘 선생님들은 권위적이지 않더라. 그래서인지 책임도 많이 희석된 것 같다. 공직사회는 경험해보지 않았으니 패쓰.
이런 조직들을 우리는 "관료제"라고 부른다. 결정은 위에서 하고 실행은 아래에서 하는 구조, 그만큼 책임도 위에서 더 많이 가져간다고 서로 믿고 있는 구조. 그래서 관료제는 결정권자가 책임을 회피할 때 의심받는다. 결정권자가 우리 조직의 존재가치를 훼손시킨다고 생각하면 존재 가치를 잃는다. 군인이 국민을 공격하고, 의사가 환자를 돈벌이 수단으로 보고, 선생님이 학생에게 분풀이를 하면 권위가 상실된다.
수평 조직이라고 하면 친구, 가족, 동호회, 동아리 같은 집단이 떠오른다. 가족은 약간의 위계 관계가 있으니 빼고 친구, 동아리, 동호회의 특징이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이 집단들은 공동의 목표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회사내 야구 동호회라면 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이 명시적 목표이긴 하지만 그걸 위해서 부상을 불사하고 뛰진 않는다. 결이 맞는 사람들과 야구를 하는 행위 자체가 목적이고 목표는 부차적이기 마련이다. 대학시절 동아리는 더 그랬다. 공연을 하는 것이 목표이긴 하지마 그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서로 좋아하는 것을 함께 하는 경험 그 자체가 더 가치있었다. 친구 관계는 말할 것도 없다. 수평 조직은 일반적으로 무엇을 함께 경험했는지가 어떤 객관적인 성과 달성보다 중요한 것 같다.
그럼 회사가 수평적 조직일 수 있을까? 나는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유는 명확하다. 회사는 한정된 자원으로 경쟁을 이겨내고 이익을 만들어내야 하는 조직이다. 할 일을 정하고 투입할 자원을 결정하고 결과에 따라 이익은 나누어야 한다. 이 모든 결정은 결국 "누가 책임을 질 것인지?"로 연결된다.
직급에 관계없이 아이디어를 내는 것은 좋다. 아무래도 관리자들은 현장에서 멀어지니까, 고객과 접점에 있는 사람들이 아이디어를 활발하게 내줘야 시장의 흐름에서 멀어지지 않는다. 맞다. 그런데 그런 아이디어들 중에 해야 하는 것을 결정하고 업무를 할당하는 것도 수평적으로 할 수 있을까? 팀 차원의 중요한 일은 경험과 인사이트와 그동안 성과가 있었던 팀원에게 맡겨야 한다. (한국시리즈 1차전 선발은 에이스가 나온다) 의지가 있다고 본인이 아이디어를 냈다고 그 일을 리딩할 수는 없다. 일은 효율과 효과를 높이는 방향으로 결정되어야 한다.
일 뿐만 아니라 관계적인 측면에서도 수평적 조직문화로 인해 발생하는 비효율들이 많다. 본인이 리더가 되지 못했다고 시니컬한 태도로 일관하는 시니어, 서로 트러블이 있었다고 함께 일하지 못하겠다고 말하는 팀원, 나는 지금 하고 있는 일보다 옆 팀에서 하는 일을 더 잘할 수 있으니 이동시켜가 달라는 팀원 등등..개인이 판단할 수 없는 부분까지 개인의 몫으로 오해하는 구성원들이 많다. 모든 사람이 동등한 영향력을 가져야 한다는 잘못된 생각 때문에 그렇다.
인간 그 자체로는 모두 동등한 크기의 영향력을 가진다. 사람이라는 존재는 우열이 없다. 하지만 우리는 회사에 있다. 회사에서는 맡은 역할에 따라 영향력이 다르다. 특히 직책자라면 회사라는 세계에서 인정해준 영향력이 있고 그 영향력을 회사의 목표(지속가능한 성장)를 위해 발휘해야 한다. 역할에 따른 영향력의 차이를 존재마다 동일한 영향력과 혼돈하는 경우가 많다. CEO의 한 시간과 직원의 한 시간은 다르다. 임원이 할 일과 팀장이 해야 하는 일도 다르다. 그 다름에서 오는 "수직적"으로 보이는 영향력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으면, 그건 수평적이긴 한데, 조직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