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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대하지 않는 삶을 관대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by 혀크크

나는 종종 회의실 구석에 앉는다.

말없이, 조용히, 존재를 줄이며.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대표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발표했고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역할을 받아들였다. 내 차례가 왔을 때 나는 마지못해 손을 들었다. “네, 해보겠습니다.” 그렇게 말해놓고도 마음속에선 수백 번, “왜?”를 되뇌었다.


회의가 끝나고 의자에 등을 기대려다 멈칫했다.

불쑥 떠오른 생각 때문이다.


‘이건 내가 원하던 삶이었나?’


어릴 적 나는 대통령이 되고 싶었다. 어린이날 장래희망을 적는 카드에 커다랗게 ‘대통령’이라 적었던 기억이 난다. 사인펜이 눌려 종이가 조금 찢어질 정도로 또박또박 썼다. 그때의

나는 이 나라를 멋지게 이끌 사람이 꼭 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책임감이 강한 아이였다. 모든 걸 더 잘하고 싶어 했고 나중에 돌이켜봤을 때 “후회 없는 삶이었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저 눈이 부시도록 아픈 모니터와 그 안에 적힌 숫자에서 하루하루를 겨우 버틴다.

마음속엔 끝없는 후회가 들끓고 자책은 습관이 되었다.


남들은 자신에게 관대하지 않다는 사실을 25살을 넘어서야 알았다. 그걸 너무 늦게 깨달은 나는 한때 관대했던 나를 원망하며 스스로를 죄인처럼 몰아세운다.


“왜 그랬을까.”


그런데, 문득 든 생각이다.


‘그냥 이 삶을 인정하면 안 될까?’


완벽하지 않고, 원하던 모습은 아니지만, 내가 살아온 시간을단죄하지 않고 그저 살아낸 시간으로 받아들인다면. 지금의 나에게 조금은 관대해질 수 있지 않을까.


그날 저녁, 집에 돌아와 거울 앞에 섰다.

거울 속의 나는 대통령이 아니었다.

하지만 나를 닮은 누군가가,

하루를 견딘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작은 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괜찮아.”


그리고 처음으로, 내 삶에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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