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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구단 외우기가 인생에 고민이였다.

by 혀크크

나는 수학을 참 못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구구단을 외우지 못했다. 그날도 그랬다. 초등학교 2학년, 이른 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햇볕은 따뜻했지만 교실 안 공기는 딱딱하게 얼어붙어 있었다. 나는 선생님 책상 앞에 서 있었고, 구구단을 묻는 선생님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구구단 문제에 나는 입을 꾹 다문 채 대답하지 못했다. 나름 열심히 외웠는데 긴장감 때문인지 말끝을 흐리는 사이, 교실은 조용했고 친구들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구구단을 외우지 못하자 선생님은 내 엉덩이를 때렸다.

아팠는지, 안 아팠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쩌면 정말 아팠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건 통증이 아니라 내가 ‘맞은 아이’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다른 아이들은 다 외운 구구단을 나는 외우지 못했다는 그 부끄러움. 어린 나이에 꺾인 자존심. 그게 더 아팠다.


그날 학교에 타고 온 자전거는 운동장 한켠에 덩그러니 남겨졌다. 엉덩이가 너무 아픈 나는 자전거를 두고 집까지 걸어갔다. 15분 정도 걸리는 길을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걸었다. 그리고 울었다.


울면서 생각했다. 왜 나는 구구단을 외우지 못했을까.

내일 또 시험을 보면 또 틀릴까 봐 무서웠다. 오늘처럼 친구들 앞에서 다시 창피를 당할까 봐, 그게 겁났다. 그때 내 인생에서 ‘구구단 암기’는 가슴이 먹먹해질 만큼 큰 고민거리였다. 하지만 누구나 그렇듯 결국 나는 구구단을 다 외웠고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은 문제로 남아 있다.


생각해 보면 내 인생은 그런 일들로 가득했다.

수능을 치를 때, 군대를 갈 때,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을 때.

그때마다 ‘이번 위기만 넘기면 이제 정말 끝’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한 위기는 늘 다시 찾아왔다.

아니, 어쩌면 더한 위기라기보다는 하나의 위기가 지나가고 나면 다른 이름의 위기가 꼭 찾아오는 삶의 리듬 같은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그 모든 순간들을 견뎠고, 버텼고, 또다시 나를 만들어왔다. 어린 시절 구구단 앞에서 울던 아이는 그렇게 단단하게 하나씩 자신의 모양을 갖춰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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