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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받는 걸 특히 좋아하던 아이

by 혀크크

‘관심’이라는 단어는 사람에게 긍정적인 걸까,

부정적인 걸까. 그 질문을 곱씹어본 적이 있다.

그리고 나라는 사람을 그 단어에 대입해 보면 ‘관심’은 나와 꽤 잘 어울리는 단어였다.


나는 어릴 때부터 주목받는 걸 좋아하는 아이였다. 조용히 앉아 혼자 책상에 앉아 공부하는 것보다 수행평가처럼 나를 보여줄 수 있는 자리가 더 설렜고 운동장에서 친구들이 지켜보는 운동회 날이면 평소보다 더 빨리 달렸다. 몸이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었고 사람들의 시선이 나를 밀어주는 것 같았다.


그래서였을까. 초등학교 3학년, 반장이란 개념이 처음 생겼을 때부터 나는 한 번도 그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교실 앞자리에 앉아 선생님 옆에서 친구들 이름을 부르는 것이 왠지 모르게 자랑스러웠고 내가 중요한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결정적으로 6학년이 되었을 땐 전교회장이 되었다.

전교생 앞에 서서 말하고 대표로 단상에 올라서 상장을 받고,학교의 대표학생이라는 사실이 나는 꽤나 마음에 들었다.

그런 행동의 부끄러움보단, 설렘이 컸다.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그 찰나에 나는 더 힘이 났고 더 잘하려고 애썼다. 주목을 받을수록 나는 나다워졌고 그런 내가 좋았다.


하지만 주목받는 걸 좋아하던 그 아이는, 학생이 되고 어른이되어가며 점점 달라지기 시작했다. 아니, 어쩌면 어떤 결정적인 계기를 통해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바뀌어갔다.


나는 끼가 많은 아이였다.

춤을 잘 췄고 그 춤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초등학생이던 나는 몇몇 유명 기획사의 오디션을 통과했고 사람들은 내게 “너, 될 애야”라는 말을 아낌없이 건넸다.

나는 그 말이 좋았다. 무대 위의 박수도, 친구들의 눈빛도, 나를 바라보는 기대도. 그 모든 관심이 춤을 통해 내게 쏟아질 때 나는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 그래서 춤이 점점 더 좋아졌다. 정확히는 춤을 잘 추는 ‘나’를 사람들이 좋아해 주는 게 좋았다.


중학교에 들어가며 나는 조금 더 ‘전문적으로’ 춤을 배우기로 했다. 엄마는 나의 결심을 지지했고 지역에서 유명한 무용학원에 등록시켜 줬다. 나는 사실 현대무용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는 몰랐지만 ‘전문적으로 춤을 출 수 있다’는 이유 하나로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원하던 춤이 아니었다. K-POP 댄스처럼사람들의 박수를 받을 수 있는 멋진 동작이 아니었고, 친구들이 따라 추며 즐기던 리듬도 없었다. 현대무용은 낯설고, 조용하고, 어려웠다. 그 낯선 춤 속에서 나는 점점 말라갔다.

하루가 끝나면 새벽 두세 시였고, 학원에는 ‘예술’이라는 이름의 강압적인 분위기와 무언의 규율이 감돌았다. 춤은 더 이상 신나는 일이 아니었고, 사람들의 관심도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만둘 수 없었다. 엄마의 기대, 아빠의 응원, 학원비에 담긴 노력. 그 모든 것들을 떠올리면 멈출 수 없었다. 그래서 더 열심히 했고 더 무서워졌다. 하지만 결국 나는 처음으로 부모님에게 거짓말을 했다. “이제 공부에 집중하고 싶어.” 그 말은 반은 진심이었고 반은 도피였다. 나는 공부가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춤이 더 이상 좋지 않아서 그만두고 싶었다.


그렇게 춤을 내려놓았다.

내가 사랑했고 나를 빛나게 했던 것.

내가 사람들의 관심을 받을 수 있었던 가장 확실한 방법.

그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나니 마음 한편이 휑해졌다.

관심을 받던 아이가 관심을 스스로 포기한 순간.

나는 그 빈자리에 처음으로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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