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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곰이 되어버리다.

by 혀크크

수료식이 끝난 뒤 나는 여느 훈련병들처럼 가족들과 오랜만의 자유를 누렸다. 먹고 싶었던 음식들을 잔뜩 먹고 못 봤던 웹툰과 영상도 실컷 봤다. 그렇게 시간이 훌쩍 지나 어느덧 오후가 되었을 때 마음속에 뭔가 묵직한 감정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이제 진짜 군생활이 시작되는구나.’ 그리고 그 시작을 알리는 부대 배정 문자가 올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분명 14시에 문자로 온다고 했던 것 같은데 시계를 보니 이미 14시를 훌쩍 넘었다. 아무 소식이 없었다. 겉으론 아무렇지 않은 척 했지만 속은 점점 조여들었다. 내가 간절히 바라던 건 단 하나, 집과 가까운 부대. 경상도나 멀어도 수도권이면 괜찮다고 스스로 위로했었다. 그게 얼마나 순진한 바람이었는지는 얼마 안가서 금방 깨달았다.


시간이 30분쯤 더 흘렀을까? 초조함을 참지 못한 아빠가 휴대폰을 들고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예, ***훈련병 부대 배정이 궁금해서 연락드렸습니다.” 아빠의 목소리가 진지했다. 나는 조용히 그 옆에 서서 들을 준비를 하고 있었고 마침내 통화가 스피커로 전환되며 또렷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훈련병은… 22사단에 배정되었습니다.”


“…22사단?”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고개를 갸웃하며 스마트폰을 켜들고 ‘22사단’을 검색했는데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부대 위치나 부대 소개가 아니라 ‘제22보병사단 사건·사고’라는 나무위키 항목이었다. 손가락이 얼어붙었다. 그래, 그 사단은 뉴스에서 크게 보도 되었던 총기 난사 사건이 일어난 부대였다. 그때 내가 어디로 가는 건지 불안한 감정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였다. “거기 강원도 고성이네. 우리나라에서 제일 위에 있는 데야.” 아빠의 말에 나는 귀를 의심했다. 고성? 강원도? 내가 생각했던 최악의 시나리오는 수도권이었는데, 이건 그 상상을 뛰어넘는 결과였다. 엄마는 이미 눈물샘이 터지기 직전의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얼굴을 보는 순간 나도 체념한채 망연자실한 상태로 훈련소로 복귀할 준비를 했다.


복귀하자마자 내 부대 배치 소식은 동기들 사이에서 단번에 농담거리로 전락했다. “야, 고성? 거기 그냥 북한 아니냐?” “와, 너 완전 북극곰이네.” 북금곡이라니.. 그 말이 정말 어이없었지만 웃겨서 아직도 기억에 남는 말이였다. 웃으며 놀리는 소리 동기 속에서, 나는 떠나기 전 엄마의 표정을 떠올렸다. 아빠는 걱정 티를 내지 않으려 했지만, 엄마는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사람이었다. 엄마가 걱정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마음이 무거웠다. 결국 조교에게 양해를 구하고 조용히 전화를 걸었다. 최대한 밝은 목소리로, 거짓말을 섞어가며 엄마를 안심시켰다. “걱정 마. 생각보다 괜찮대.” 하지만 그 말은 결국, 나를 위한 위로이기도 했다.


훈련소의 마지막 밤. 모포를 덮었지만 눈은 감기지 않았다. 고성이라는 단어가, 22사단이라는 이름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사건과 사고의 무게, 지리적 거리보다 더 멀게만 느껴지는 두려움이 내 가슴을 짓눌렀다. ‘오히려 그런 곳이 더 조심해서 안전할지도 몰라.’ 그런 자기위로도 잠깐, 이내 “강원도 고성”, “우리나라 최북단”이라는 말들이 메아리처럼 가슴속을 울렸다. 두려움이 소용돌이처럼 나를 휘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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