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의 여름은 유독 뜨겁고 길었다. 그 해의 여름은 군대에서 처음 맞이한 여름으로, 내가 느낀 더위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했다. 하지만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더니 어느새 그 끓어오르는 더위 속에서도 나는 조금씩 적응해갔다. 더운 날씨에 땀은 흘러내렸고 머리카락에선 땀방울이 흐르며 뺨을 타고 떨어졌다. 그런 상황에서도 하루하루를 버티니 시간은 흘러갔고 드디어 기다리던 수료식이 다가왔다.
전역을 하면 마치 이 기분일까? 지금 생각하면 그저 훈련을 끝내는 날 정도인데 그땐 그 날의 의미가 나에게 크게 다가왔다. 수료식이 끝나면 바로 전역하는 거라는 멍청한 착각을 했던 거 같다. 정말 구름 위를 걷는 것처럼 행복한 기분이 이였다. 수료식 전날 밤 5주 동안 함께한 동기들과 한 가지 내기를 했다. 무슨 내기를 걸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내용은 확실히 기억난다. "우는 사람이 지는걸로 하자." 그들의 말에 나는 자신감이 넘쳤다. 입대 당시 가족과 작별을 하면서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던 내가 수료식에서 가족들을 보고 울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않았다. 그런 자신감으로 나는 내기에서 이길 거라 믿었다. 그리고 드디어 대망의 수료식 날 아침이 다가왔다.
드넓은 운동장 한쪽 구석 계단에 앉아 우리는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다.빳빳한 새로운 군복에 빡빡이 머리, 조금은 어색하지만 그 속에서 나름의 자신감을 찾으려 애쓰는 우리의 모습이 이제는 낯설지 않았다. 주변은 소란스럽고 공기는 훈련의 긴장감과 기다림의 불안감이 뒤섞인 채로 팽팽했다. 조금씩 보이는 민간인들의 모습이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들의 얼굴을 구별할 수는 없었지만 나는 그저 그들이 내 가족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다. 숨이 막힐 듯한 긴장감 속에서 내 마음은 반가움으로 미친 듯이 요동쳤다.
그렇게 초록빛 잔디 위로 하나둘, 조금은 늠름해진 빡빡이들이 입장했다. 그 순간은 우리가 훈련에서 쌓아온 시간과 고통을 떠올리며 내딛는 발걸음마다 무겁고도 자랑스러웠던 거 같다. 모든것이 형식적이고 정해져 있는 수료식, 그 순간만큼은 누가 누구인지도, 무엇이 중요한지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직 이 순간 이 자리에서 우리가 얼마나 성장했는지, 우리가 겪은 시간이 누구에게도 흠집 내지 않을 자랑거리가 되었다는 것을 가족들에게 전달하고 싶었다. 전날 연습에서는 얼빵했던 훈련병들도 그 날만큼은 모두가 에이스 훈련병처럼 당당히 서 있었다. 그 순간만큼은 수료식이라는 그 순간을 위해 함께 피땀을 흘렸던 동료들이였다.
수료식이 끝나고, 이제 가족들이 우리를 맞이할 차례였다. "이제 가족들이 여러분의 고유번호는 떼고, 새로운 계급장을 달아줄 것입니다."라는 방송이 울려 퍼졌다. 그 순간, 나는 반사적으로 부동자세를 취하며 눈동자를 빠르게 돌려 가족들을 찾기 시작했다. 세상이 멈춘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내 시선은 그 하나에 집중되었다.
그때 멀리서 걸어오는 가족들의 모습, 그들의 눈빛과 표정 속에서 내가 알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내가 상상하지 못했던 감정들이 밀려왔다. 그 동안 괜찮았던 나였지만, 엄마가 나를 바라보는 그 순간에 내 안의 모든 감정이 폭발해버린 것이다.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내가 그렇게 울 줄은 정말 몰랐다. 그때 나는 눈물의 의미는 슬픔만 있는게 아닌 행복도 있다는 사실을 처음 깨달았다.
군생활을 하면서 여러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었지만 나는 그날을 결코 잊을 수 없다. 그 해, 그 뜨거운 여름. 가족을 만난 그 순간은 내 인생에서 가장 따뜻하고 동시에 가장 가슴 벅찬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