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엄마의 컬러링

by 혀크크

나의 훈련병 시간은 생각보다 잘 가고 있었다.

누구보다도 외로움을 잘 느끼는 성격이라 걱정이 많았지만 예상과는 달리 24시간 함께 사람들과 지내는 생활은 나에게 더욱 활기를 주었다. 그렇기에 하루하루가 지나면서 나는 점점 그 생활에 적응해 갔다. 어느덧 10분 샤워는 익숙해졌고 복무신조도 이제는 막힘없이 소리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어색했던 모든 것들이 어느새 나의 일상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소소한 행복도 있었다. 내가 훈련병이던 시절 우리는 인터넷편지를 받을 수 있었다. 처음에는 편지 한 통이 그렇게 큰 의미가 있을 줄 몰랐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한 줄 한 줄의 글자가 내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었다.


매일 가족과 친구들이 보내준 인터넷 편지들이 내 하루의 낙이 되었다. 그리고 그 외에도 예상치 못했던 사람들까지 나에게 편지를 보내 주었다. 그 편지들을 읽는 시간은 정말 소중했다. 그때 내 주변 동기들의 여자친구들은 대부분 손편지와 생활용품들을 보내주었다. 그때 나는 그것에 대한 부러움 마음을 못 느꼈는데 여자친구처럼 날 챙겨주던 어머니와 몇 명의 친구들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그들의 손 편지는 때로는 강한 응원이 되었고 그들의 작은 선물들은 내게 큰 힘이 되었다. 어느 순간 나는 알게 되었다. 여자친구의 손편지나 생활용품보다도 그 사람들의 진심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그런 진심들이 나에게 큰 힘이 되어 주었다.

그렇게 나의 군생활은 나름 행복한 시간으로 흘러갔다.


그렇게 나름 행복했던 훈련병 1-2주 차가 지나고 3주 차 일요일 저녁 나는 병원으로 입원하게 된다. 모든 것이 그리 평화롭고 순탄하게 흐르는 줄 알았는데 내게 또 다른 변화가 찾아왔다.


사건은 종교 활동을 마친 후 점호 시간이 되면서 시작되었다. 나 때만 해도 훈련병들은 어디로 이동하든지 반드시 3인 1조로 전우조를 만들어 함께 가야 했다. 말하자면 화장실에 가고 싶으면 두 명과 함께 가야 했고 내가 큰 일을 보고 올 때까지 그들은 화장실 밖에서 기다리고 있어야 했다. 그게 바로 군대의 규칙이었다. 하지만 나의 예민한 대장은 그런 상황을 절대 허락하지 않았다. 원래부터 변비가 좀 있었던 나는 그런 제약 속에서 엄청난 복통을 느꼈다. 점점 배는 아프고 참을 수 없을 정도였다. 결국 도저히 견딜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조교에게 가서 말문을 열었다. "배가 진짜 죽을 것 같이 아픈데, 의무실을 데려가주세요." 앞뒤 설명은 다 빼고 그냥 직설적으로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정말 재수 없게 느껴졌던 조교도 내 얼굴을 보고 심각성을 느꼈는지 바로 의무실로 데려다주었다.


의무실에 도착한 나는 상태를 설명할 때 정확히 뭘 말해야 할지 몰랐다. 그저 "배가 너무 아프고, 화장실을 자주 못 갔어요"라고만 말했다. 그러더니 의무실에서 엑스레이를 찍었고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이미 엠블런스에 타고 있었다. ‘이게 뭐지? 이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든 동시에 ‘나 진짜 큰일 난 거 아냐?’라는 불안감이 몰려왔다. 그렇게 대전의 국군 병원으로 향하는 엠블런스 안에서 나는 혼란스러웠다. 새벽, 여러 검사를 받고 난 뒤 결과는 단순 장염 판정이었다. 화장실을 자주 가야 한다며 나는 1인실로 배정되었다. 빈 수레가 정말 요란했다.


모든 상황이 끝나고 아침이 되었을 때 군의관은 내게 말했다. "내일 훈련소로 복귀할 예정이니 오늘 하루는 편히 쉬세요." 그리고 그때 나는 처음으로 1인실에서 텔레비전과 전화기를 발견했다. 그동안 훈련소에서는 TV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고 전화도 할 기회가 없었다. 그렇게 바로 수화기를 들고 전화를 하려 했지만 너무 갑작스럽게 병원으로 오게 된 탓에 나는 친구들의 전화번호가 적힌 수첩도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부모님에게 전화를 걸고 싶지 않았다. 부모님은 내 목소리만 들어도 눈물을 흘리실 거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아침부터 눈물로 하루를 시작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TV 리모컨을 찾기 시작했지만 아무리 찾아도 리모컨이 보이지 않았다. 1시간 정도 멍하니 시간을 보내다가 결국 10시쯤에 어머니에게 처음으로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전화가 연결되자 어머니의 컬러링이 바뀌어 있었다. "우리 딱 약속해 난 친구는 못해 깨끗하게 아예 아예 아예 “ 그 노래가 흐르는 순간 나는 잠깐 멈칫했다. '엄마가 이런 노래를 좋아하나?' 싶었지만 그때 직감적으로 알았다. 그 노래는 내가 군에 입대하고 난 후 나온 그룹 "WINNER"의 신곡이었다.


그 순간 그 노래를 들으며 나는 군 입소 후 처음으로 억누르고 있던 눈물을 터뜨렸다. 그동안 참아왔던 감정들이 한순간에 쏟아졌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눈물 대신 한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