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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장 데이트

장바구니 목록: 서울 집 (5년 전 담음)_06

by Posy 포지


남자친구와 나는 경제관이 꽤 잘 맞는 것 같았다. 남자친구는 내가 주식이나 부동산 이야기를 해도 늘 흥미롭게 들어줬고, 나도 그의 이야기가 재미있었다.



내가 단지 서울 부동산에 청약을 넣고 싶다는 이유로 회사에 본사 이전을 요청한다고 했을 때도, 누구보다 먼저 응원해 준 사람도 그였다.



사실 그는 어떤 일이든 늘 나를 지지했다. 내가 하는 말은 다 맞고, 내가 내린 결정은 다 멋진 선택 같다고 말해줬다.



남자친구는 나를 만나기 전 박사 과정을 밟고 있었다. 그러다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하던 스타트업 대표의 제안을 받아, 휴학을 하고 회사의 기술 책임자로 합류했다.


얼마 뒤 회사가 상장하면서 스톡옵션을 받았는데, 그 금액은 내 기준에서 꽤 컸다. 경기도에 번듯한 아파트한 채는 살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나는 모은 돈이 많지는 않았지만, 결혼하게 되면 부모님이 어느 정도 도와주시겠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만약 상대 집에서도 조금이라도 보태주신다면, 서울에 집을 마련하는 게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 같았다. 혼자서는 어렵겠지만, 남자친구와 함께라면 가능하겠다고 생각했다.


근무지도 서울로 옮겼겠다, 우리가 어떻게 될지는 몰라도 그냥 재미 삼아 아파트 구경이나 다녀보자고 했다. 그렇게 처음으로 임장 데이트라는 것이 시작되었다.




IMG%EF%BC%BF8095.JPG?type=w773 2021년 폭등장이었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강 건너 불구경 하는 느낌이었다.




공부는 커녕 부동산에 크게 관심조차 없던 우리가 처음 임장을 준비하려니,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어리둥절했다.



그래서 먼저 ‘손품’부터 배웠다. 손품은 발품의 반대말처럼, 발로 뛰기 전에 손으로(인터넷으로) 조사해 보는 걸 뜻한다.



우리가 정한 기준은 단순했다. 서울·경기 지역의 24평 기준, 매매가 10억 이하. 호기롭게 10억으로 잡은 이유는, 둘이 가진 돈을 합하면 충분히 가능한 숫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처음엔 세세한 기준도 없어서 그저 네이버 부동산에 10억 이하 아파트를 검색해 리스트를 만들었다. 그렇게 리스트에 오른 아파트들은 대중이 없었다. 지역도 영등포구, 동작구, 관악구, 구로구, 서대문구, 마포구 등으로 다양했다.



대충 아파트 리스트는 뽑았으니, 이제 직접 눈으로 보러 가야 했다. 그런데 막상 현장에 가서 뭘 봐야 할지 몰랐다. 뭐 듣기로는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표정도 보고, 편의점에 들러서 분위기도 보고 그래야 한다던데... 나에게는 너무 막연한 얘기같이 들렸다.



조금 더 찾아보니 "브역대신평공초"라는 공식 아닌 공식이 존재하고 있었다. 브랜드, 역세권, 대단지, 신축, 평지, 공원, 초품아를 줄인 말이라고 한다. 이 방향이 맞는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일단 브역대신평공초를 되새기며 단지들을 둘러보기로 했다.



실제로 가보니 조사할 때 좋아 보였던 단지가 전혀 살고 싶지 않다는 느낌을 주기도 했고, 반대로 기대 없이 간 곳이 의외로 마음에 들기도 했다.



"여긴 진짜 역 바로 앞이네."



"언덕이라더니, 이 정도면 산이라고 표현해야 하는 거 아냐?"



"사진으로 볼 때는 깨끗해 보였는데, 되게 낡았다."



확실히 임장을 가면 인터넷으로 봤던 정보들이 실제로도 같은 지, 혹은 얼마나 다를 수 있는지 몸소 느낄 수 있다. 붙어 있는 단지들을 하루에 몰아서 보면, 비슷한 위치인데도 분위기가 달라서 그 가격대가 형성된 이유를 잘 알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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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친구와 나는 다행히 아파트 취향도 비슷했다. 남자친구가 좋아 보인다고 말하는 곳은 나도 대체로 좋아 보였다.



둘이 시간도 함께 보내고, 그러면서 재테크 공부를 한다는 기분이 드는 게 뿌듯했다. 이래서 사람들이 임장 데이트를 하는 거구나 싶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곧 집을 살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남자친구가 코인 투자 실패로 모든 재산을 잃기 전 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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