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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지금 들고 있는 게 얼마인 지 정확히 한 번 계산해 보자."
파워 J인 나는 매달 자산을 정리하고, 포트폴리오를 수정한다. 이렇게 한 지 벌써 몇 년째다. 주식이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숫자는 늘 바뀌지만, 자주 들여다보는 탓에 내가 얼마를 들고 있는지 비교적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
반면 남자친구는 디테일에 약한 편이다. 이제 현실적으로 부동산 매수를 준비하려면 정확한 분석이 필요했기 때문에, 나는 수중에 있는 자산을 항목 별로 정리해서 알려달라고 했다.
그런데 남자친구가 조심스레 사실은 할 말이 있다고 했다. 보통은 그런 말을 잘 하지 않아서, 좋은 방향은 아닐 거라 생각했다. 그 대답은 내 예상보다 훨씬 더 충격적이었다.
"내가 예전에 스톡옵션으로 받았던 거 있잖아. 좀 급등하는 코인이 있어서 잠깐 넣었다가 단타로 빠지려고 했거든. 그런데... 거기 물려버렸어."
당시 코인 열풍이 불며 알트 코인들이 날뛰던 시절이 있었는데, 남자친구가 투자했던 코인이 급락했던 것이다. 아마 상폐 직전까지 갔던 게 아닐까. 루나 사태가 있던 그 즈음이었다.
그런데 남자친구의 다음 말이 더 충격이었다.
"사실 거기에 원래 가지고 있던 돈도 다 넣었어. 진짜 미안해."
그 순간, 서울에 집을 살 수 있을 거라는 꿈이 와르르 무너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음에 드는 신혼집에 살게 될 줄 알았는데, 이럴 거면 10억짜리 집들을 왜 그렇게 보러 다녔을까 싶었다.
처음엔 좌절했지만, 곧 정신을 차렸다. 우리에게는 대출이라는 카드가 있었다. 이제 남은 건 내가 모은 돈과 대출이었다.
은행 대출을 이용하면 다시 10억 서울 집을 볼 수 있다. 방법을 찾았으니, 심기일전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몇 년 간의 투자를 거듭하면서 나는 내 투자 스타일을 알아갔다. 결론은 아주 공격적이라는 거였다.
나는 예금(원화) 비중이 거의 0에 가까웠다. 현금 대용으로 들고 있다고 한다면 그건 단기채였다. 대부분은 주식이나 ETF였고, 포트는 미국, 한국, 신흥국, 금, 은, 원자재로 다양했다. 그 외에도 채권, 코인이 있었다.
집을 아직 사본적은 없지만, 부동산을 바라보는 데 있어서도 나의 성향이 그대로 반영되었다.
애초에 대출을 끼지 않고 집을 사겠다는 자체가 잘못된 전제였다. 집을 살 때 레버리지를 최대로 사용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고, 무조건 풀 대출을 받으리라 계획했다. 생애 최초 구입이니까 LTV는 80%로 넉넉하고 (투기과열지구 제외), DSR이 허용하는 최대한도까지 사용할 것이다.
더불어 실거주와 투자를 분리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이제 정말 현실적인 계획이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