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바구니 목록: 서울 집 (5년 전 담음)_08
우리는 결혼을 하기로 했다. 집은 못 샀고, 경기도의 한 아파트에 월세로 들어갔다.
전세 대신 월세를 택한 건, 보증금에 자금을 묶어두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집을 살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저버리지 않고, 기회만 오면 바로 계약금을 쏠 수 있도록, 언제든 움직일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하고 싶었다.
집주인은 우리보다 겨우 두 살 많은 젊은 부부다. 아이도 네댓 살쯤 되어 보였다. 이 아파트에 분양받아 살다가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서울로 이사 가는 거라고 했다.
신혼집은 집주인이 원래 전세로 내놓은 물건이었다. 하지만 서울로 이사할 시점이 다가오면서 조급해진 상태였다.
2024년 초, 잠깐의 부동산 정체기가 있었다. 매매는 물론 전세 물건도 잘 거래되지 않았다. 우리는 집주인에게 월세로 바꿔주면 바로 계약하겠다고 제안했고, 상황이 잘 맞아떨어진 덕분에 금세 계약이 성사됐다.
신혼집은 1군 브랜드의 대단지 아파트이다. 입주한 지 채 5년이 되지 않아 깨끗하고, 여느 신축 아파트가 그렇듯 공간이 워낙 좋아서 딱히 손댈 게 없다.
집 안에서 보내는 시간은 매우 쾌적하다. 집에 있는 게 답답하면 꼭대기 층 스카이라운지에 노트북을 들고 가서 커피를 마시면 된다. 책을 읽고 싶으면 아파트 내에 있는 작은 도서관에 가도 되고.
골프 연습하거나 스크린 골프를 칠 때에도, 밖에서 몇 만원 주고 하는 것보다 훨씬 좋은 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나는 평일 저녁에 커뮤니티 센터 내에서 기구 필라테스를 배우는 데, 선생님이 웬만한 헬스장보다 시설이 좋다고 했었다.
현재 집에 살면서 너무나 편한 삶을 살고 있다. 우리의 삶의 질이 좋은 건 확실하다.
그런데 누가 이 집을 매수하라고 한다면?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NO라고 할 것이다.
이른바 '브역대신평공초' - 신혼집은 이 조건에 90%쯤은 맞는다. 하지만 이 공식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작은 그림에는 맞지만, 큰 그림에서는 아니다. 결국 집의 가치는 입지가 전부인데, 저 공식은 입지의 일부분만 설명할 뿐이다.
신혼부부가 신축 아파트에 전세로 사는 게 '망하는 지름길'이라던데, 글쎄 결국 그건 마인드의 문제다.
나 같은 사람은 아마 몸테크를 하면 더 비생산적인 생활을 했을 것이다. 지금의 좋은 환경이 오히려 나의 에너지를 채워준다. 충분히 쉬고, 나를 돌볼 수 있는 공간이 다음 계획을 세우고 앞으로 나아갈 에너지를 준다.
아직 서울 집은 못 샀지만 꽤 잘 살고 있다. 지금 이 좋은 집에 항상 감사하며, 조금 느리더라도 목표한 바를 향해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