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바구니 목록: 서울 집 (5년 전 담음)_10
남자친구와 나는 함께 있을 때면 임장을 다녔고, 평소에는 각자 방식으로 부동산을 공부했다.
나는 책도 조금 읽어 보았지만, 평소에 주로 유튜브를 본다. 그중에서도 나만의 일타 강사는 단연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를 쓰신 송희구 작가님이시다. 지금도 내가 가장 신뢰하는 부동산 구루라고 할까.
특히 김 부장 시리즈 3권을 주말에 몰아서 단숨에 읽고 난 이후에는, 작가님을 꼭 한 번은 직접 뵙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친구와 함께 강의를 듣고 싶었지만, 그는 당시 송희구 작가님을 전혀 몰랐다. 논리적인 남자친구는 근거가 부족하면 뭐든 쉽게 혹하지 않는 타입이라, 우선은 빌드업이 필요했다.
“이 책 한번 읽어볼래? 소설인데, 주제가 부동산이라 현실 반영이 장난 아니야.”
다행히 남자친구는 책을 다 읽고 나서 꽤 재밌네라는 반응을 보였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남자친구에게 제안을 했다.
“이 책 작가가 실제로 직장인이면서 부동산으로 200억을 벌었대. 문화센터에서 강의하는 게 있는 데, 주말에 한번 가볼래?”
남자친구는 흔쾌히 수락했고, 우리는 처음으로 현대백화점 미아점을 찾았다.
어딜 가든 얼리버드를 자처하는 우리는 그날도 어김없이 백화점이 오픈하기도 전부터 주차를 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아직 아무도 오지 않은 강의실에 들어가, 맨 앞 왼쪽 자리를 선점했다.
"강의는 여기까지이고, Q&A가 있겠습니다. 질문 있으신 분들은 하세요."
50~60명은 족히 되어 보이는 넓은 강의실에 순간 정적이 흘렀다. 원래 적막을 잘 못 참는 나는 그냥 아무 질문이나 던졌다.
“앞에 슬라이드에 나온 아파트 단지들은 이미 좋은 건가요? 아니면 지금 사면 앞으로 좋아질 건가요?”
뭐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사실 별로 궁금한 질문도 아니었는데, 단지 그 정적이 불편해서 던진 것뿐이었다.
작가님은 짧게 답을 하시고는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그 이후로는 손이 쉴 새 없이 올라갔다. 아무리 여러 번 손을 들어도 내 차례는 돌아오지 않았다. 모든 사람에게 기회를 주려는 작가님은 아직 질문하지 않은 사람들을 지목했다.
몇 번의 강의를 더 다녀본 후에야 깨달았다. 송 작가님 강의의 진수는 수업이 끝난 다음의 질문 타임이라는 것을.
하지만 나는 그런 걸 전혀 모른 채 첫날에 아무 생각 없이 질문을 던지는 바람에, 정작 내가 궁금한 걸 물을 기회는 사라져버렸다.
내 옆에는 아직 질문을 하지 않은 남자친구가 앉아있었다. 나는 그에게 나 대신 질문을 해달라는 의미로 메모를 빠르게 적어 건넸다.
NOTE
마포 10억
→ 공덕 R 아파트 1(신), 2, 3? 한강 S 아파트? 도화 H 아파트? 추천 etc.?
남자친구는 나의 지령을 받아들고 번쩍 손을 들었다. 작가님은 그에게 다음 발언권을 내주었다.
“마포에서 10억 언저리 집을 사려고 합니다. 신? (신이 뭐야?) 공덕 R 아파트 1차, 2차, 3차, 한강 S 아파트, 도화 H 아파트 중에 뭐가 좋을까요? 혹시 별로라면 부근에 다른 아파트도 추천해 주실 수 있을까요?”
내가 메모를 너무 대충 적어준 탓에 남자친구는 해석에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문제는 질문 자체가 틀렸던 것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지식이 부족했던 탓에 질문의 내용도, 방향도 잘못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작가님은 프로답게 특유의 노련함으로 우문에도 현답을 내주셨다.
"공덕 부근 너무 좋죠. 공덕 S 아파트 1차는 가능할 것 같은데, 나머지는 가격이 되나요? 도화동보다는 공덕이랑 신공덕이 더 좋습니다. 한강 S 아파트는 역에서 좀 멀죠, 이 단지를 고를 때는 한강뷰가 나오는 동이어야 해요."
그리고 덧붙여 이렇게 말씀하셨다.
“마포 T 아파트도 한 번 봐보세요.”
우리는 퇴근 후에 같이 저녁을 먹고, 이 날은 대흥동과 용강동 임장에 나섰다. 그중에서도 송 작가님이 언급하신 마포 T 아파트는 꼭 봐야겠다 싶어 근처 중개사무소로 들어갔다.
하지만 10억 대는커녕, 가장 저렴한 매물조차 11억 7천만 원인 게 아닌가. 로열층에 인테리어까지 되어 있다지만, 우리가 생각했던 가격과 너무 차이가 많이 났다. 놀라는 우리를 본 중개사무소 소장님이 웃으며 말했다.
“지금 이 가격 내가 봐도 좀 아니야. 집주인이 급할 게 없어서 그냥 높은 가격으로 내놓은 거거든요.
비싸게 팔면 나도 좋지. 그런데 솔직히 말해줄 건 해줘야 하잖아요. 쪼끔 기다리면 부동산 시장이 안정화되고 내려올 거예요. 그때 잡아요”
이렇게 인간적인 소장님이 다 있다니. 매물이 비싸게 팔릴수록 중개사는 더 많은 수수료를 받을 수 있지만, 본인의 소신대로 손님에게 고평가된 매물에 대해 솔직하게 말씀해 주신 것이다.
우리는 연신 감사 인사를 하며, 상황이 되면 꼭 여기서 계약하겠다고 말하며 사무실을 나왔다.
물론 그분도 몰랐을 것이다. 그 가격이 낮은 거였다는 걸. 다시는 오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모든 시장을 다 예측할 수 있었으면 그건 신이겠지.
이후 시장은 잠시 조정을 받았지만, 마포는 끄떡없었다. 보통 많이 오른 곳이 내릴 때 더 크게 빠지는 법인데 이번엔 그렇지 않았다.
시장이 움직일 때에도 상급지는 여전히 굳건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