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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 아파트

장바구니 목록: 서울 집 (5년 전 담음)_09

by Posy 포지

나에게 상경을 결심하게 만든 트리거는 2021년의 부동산 폭등장이었다. 그해는 수도권뿐 아니라 전국이 들썩였고, 내가 살던 지방 소도시도 예외가 아니었다. 뉴스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무주택자를 ‘벼락거지’라 부르며 자극적인 제목을 내걸었다.


서울에 청약을 넣겠다는 단순한 이유로 상경했지만, 사실 구체적인 계획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직 집을 사지 않으면 영영 기회를 잃는다는 막연한 공포심뿐이었다.



집값이 오를수록, 서울의 아파트는 점점 더 멀어져 갔다. 나는 그 불안함을 견디지 못하고 자주 가족들에게 연락해 징징거렸다. 지금 집 못 사면 평생 못 살 것 같은데, 뭐 어떡해야 하겠느냐고.



그때마다 아빠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부동산은 언제나 사이클이라는 것이 있어. 그러니 지금 같은 장이 영원할 리가 없고, 역사가 보여주듯 가격은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할 테니 너무 초조해하지 마. 시드를 모으면서 기다리면, 언젠가 너의 때가 찾아올 거야.”


아빠는 나를 달래려 할 때 진부한 얘기를 늘어놓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이 말은 진리였다.



그리고 다음 해인 2022년, 거짓말처럼 폭락장이 찾아왔다. 벼락거지를 들먹이던 뉴스는 이제 연이어 ‘영끌족의 몰락’을 다루기 시작했다.






우리가 그동안 임장 데이트라 부르던 건, 사실 그저 동네 구경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부동산의 폭등기와 폭락기를 모두 지켜본 뒤부터는 이야기가 달라졌다. 집값의 변동성이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삶을 뒤흔드는 현실임을 몸으로 느끼게 된 것이다.



폭락장이 시작된 이후, 2023년 초 집값은 최저점을 찍더니 또 금세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우리는 적극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었다. 주말뿐 아니라 평일 퇴근 후에도 부동산에 예약을 잡아두고 집을 보러 다녔다.



내 마음속 1순위는 단연 마포였다. 정확히는 내가 살고 있던 공덕이었다.



오피스텔에서 자취를 하며 공덕의 인프라를 누리며 살았다. 살수록 더 살고 싶어지는 그런 동네였다. 이직 후에는 출근길마저 좋았다. 마포대로에서 마포대교를 건너 한강을 끼고 여의도로 향하는 그 기분이란.


마포에 살고 있으니, 다행히 평소에도 주변 아파트를 쉽게 보러 다닐 수 있었다. 동에서 서쪽으로, 5호선 마포-공덕-애오개역 라인부터 6호선 광흥창역 근처까지, 부근에 있는 아파트는 거의 다 돌아봤던 것 같다.



물론 대부분의 아파트들은 비쌌고, 내 예산에 맞는 곳은 몇 개 없었다. 그중 유독 눈에 들어온 건 공덕역 바로 앞에 있는 한 구축 아파트였다. 그 당시 24평 실거래가는 10억을 향해가고 있었다.



입지는 충분히 알고 있으니 이제 부동산에 연락해서 실제 매물을 볼 차례였다. 부동산에서 보여 준 매물은 10.5억. 부동산 소장님은 걸으며 설명했다.



“지은 지 오래돼서 엘리베이터랑 지하주차장이 연결 안 돼요. 그래도 엘리베이터는 최근에 수리해서 깨끗하죠?”


하지만 수리했다는 엘리베이터도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았다. 집으로 들어가는 복도는 바깥이 훤히 뚫려 있었고, 거기를 지나며 여기서 살면 무섭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집 내부도 예상대로였다. 구축인데도 인테리어를 하지 않아서 불을 켤 때 보니 스위치는 누렇게 바래있었고, 쇠로 된 베란다 문은 잘 열리지도 않았다.



"집주인이 젊어요. 30대 남자 분인데, 곧 결혼을 한다네. 근데 여자 쪽도 이미 집이 있어서 하나를 처분하는 거랍니다."



"와 결혼하기 전부터 각자 집 한 채씩 가지고 있는 거예요? 대단한 커플이네요."



"그러게, 남자 쪽 걸 파는 걸 보면 여자가 들고 있는 집이 더 좋은 건가 봐요."



듣자 하니 집주인은 우리 또래일 것 같은 데, 아파트 상태는 그렇다 치더라도 10억 언저리 씩이나 하는 집을 들고 있다니.



그렇다 해도 이렇게 낡고 냉기가 도는 집을 거금 10억 5천만 원이나 주고 산다는 게 맞는 건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때는 몰랐다. 우리가 그 집을 이렇게 오랫동안 그리워하게 될 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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