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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반짝 빛나는 뉴타운

장바구니 목록: 서울 집 (5년 전 담음)_11

by Posy 포지


마포 T 아파트의 부동산 소장님은 지금 마포 집값이 비싼 것 같으니 타이밍이 올 때까지 조금만 기다려보라고 했다. 하지만 우리는 마냥 기다릴 수는 없었기에, 다른 지역들도 둘러보기로 했다.



네이버 부동산에 가격 필터를 걸자 마포구와 맞닿은 서대문구 아파트들이 주르륵 뜨기 시작했다. 이름 앞에는 주로 DMC가 붙어있었고, 사진으로 보기에도 동네가 무척 좋아 보였다. 우리는 곧바로 부동산 예약을 잡았다.



퇴근 후 현장을 찾았을 때는 아직 해가 지기 전 어두워질 무렵이었다. 직접 가보니 상상치도 못했던 좋은 환경에 깜짝 놀랐다. 주변이 온통 신축 아파트로 이루어져 있었고, 동네 전체가 깨끗이 잘 정비되어 있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남자친구도 이곳은 처음 와봤다고 했다.



그 이름은 가재울 뉴타운.



그동안 구축만 보던 우리는 눈이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했다. 뉴타운이 이런 곳이구나, 이런 곳에 살면 너무 쾌적하겠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서울에 있는 신축 아파트 가격이 10억이라니 믿기지 않았다. 게다가 서대문구면 그리 외곽도 아닌데. 상암엔 일자리가 많으니 수요도 계속 많을 것이다.



“사실 저희는 서울에서는 절대 신축 아파트에 못 살 줄 알았거든요. 당연히 구축에 살 거라고 생각했어요.”


“여자는 몸이 편해야 마음도 편해요. 좋은 데 살아야 좋은 기운 받고, 나중에 또 더 좋은 곳으로도 이사 갈 수 있지 않겠어요?”



맞는 말 같았다. 정확히는 부동산 소장님의 말씀이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중심지까지 얼마나 걸리나 확인하기 위해 지도를 켜보니, 지하철이 아닌 버스를 타는 경로로 검색이 되었다. 그러고 보니 근처에 지하철역이 없었다.



교통이 안 좋은 게 좀 아쉽다고 말했더니, 부동산 소장님은 서부선 호재 이야기를 꺼냈다. 서부선이 생기면 여의도랑 노량진으로 바로 연결된다고.



"명지대 역이 여기 도보 3분 거리 바로 코앞에 생겨요. 서부선만 개통되면 초역세권 단지가 되는 거지. 그럼 지금보다 훨씬 더 오르지 않겠어요."



모든 매물들을 둘러보고 공인 중개소 사무실로 돌아갈 때가 되자 깜깜한 밤이 되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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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부동산 방문 예약 날짜를 잡았을 시점에는 운 좋게 급매 물건이 하나 나와있었다.



"지금 볼 수 있는 것들 중에 특히 L 아파트는 급매에요. 주인이 사업을 하는데, 급전이 필요해서 싸게 내놓았어요. 지금 시세가 10억인데 9.5억으로 나온 거예요."



그런데 우리가 방문하기 전 당일 오후, 상황이 바뀌었다. 집주인이 자금이 다시 여유로워졌다며 10억으로 가격을 되돌리겠다고 한 것이다.



그럼에도 부동산 소장님은 만약에 우리가 계약한다고 하면 특별히 우리까지는 9.5억으로 할 수 있도록 밀어붙여주겠다고 했다. 적극적으로 신경 써주시는 소장님이 감사했다.



실제 매물을 보고 나니 이 동네가 더욱 마음에 들었다. 부동산 소장님은 이런 급매 물건은 쉽게 나오는 게 아니라며, 기회가 있을 때 빨리 결정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답을 오늘 내로 달라는 것이다.


"우리도 오래는 못 잡아둬요. 집주인 마음이 언제 바뀔지 모르니까 급한 대로 가계약금이라도 넣어두는 게 좋을 거예요."



그 제안에 솔깃했던 우리는 갑자기 마음이 바빠졌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계약금을 걸기에는 확신이 없어서, 죄송하지만 하루만 시간을 더 달라고 부탁했다.




SE-233EF2F7-7635-4D53-97DE-2DA7A743D843.jpg?type=w773 남자친구가 부동산과 주고받았던 문자



당장 결정을 내려야 할 것 같은데, 우리는 이게 기회인지 무모한 도전인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다행히 내 주변에는 부동산 공부를 열심히 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그날 밤 우리는 급히 주변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혹시 가재울 뉴타운 쪽 잘 알아? L 아파트 급매가 나왔는데, 직주근접에 신축 대단지여서 매전차도 낮고 실거주로도 괜찮다는 생각이 드네. 그런데 갑자기 결정하려니 입지를 몰라서 투자 가치가 있는 건지 판단이 잘 안 서서. 네가 볼 때 어떤 것 같아?"



주변 고수들의 답변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았다.


- 친구 A

"거기 알지. 갭 얼마 보고 있는데? 있어봐. (조금 있다가) 네가 보고 있는 거랑 비슷한 조건으로 매물 몇 개 찾았거든. 방금 카톡으로 보냈으니까 한 번 봐봐. 그 아파트는 지금 신축 빨로 좀 비싼 것 같다."



- 친구 B

"실거주하기 조용하고 깨끗하긴 한데, 지하철역이 멀고 심지어 가좌역이 경의중앙선이라. 그 가격이면 광진구 성동구 구축을 봐."



- 아는 언니 C

"잘 정비된 뉴타운 보고 오면 끌리지. 근데 투자하기에는 이미 신축 프리미엄이 다 반영되어 있으니 상승 여력은 적을 것으로 보이네."



그리고 마지막 관문인 부모님께 여쭤보았다. 우리 부모님이 부동산을 잘 아셔서라기보다는, 그냥 부모님이니까 큰 결정을 하기 전에 말은 해두어야 할 것 같아서.


- 아빠

"급하게 결정하지 않는 게 좋겠다. 금액이 왔다 갔다 하는 것도 신뢰가 안 가고."



- 엄마

"지난주에 한국은행 총재가 2-30대 부동산 구입은 신중하라고 했어^^ 애매한 거 결정하면 괜히 걱정만 많아져. 기회는 계속 오니까 조급한 결정은 금물."



각기 설명은 달랐지만, 한 마디로 모두가 반대했다.


결국 우리는 그만두었다. 주변 사람들의 말이 다 맞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우리가 여태까지 공부한 '입지'는 다 뭐였는데. 깨끗한 동네를 실물로 보고 나니, 기준을 잃고 순간적으로 이성적인 판단이 흐려졌던 것이다.



돌이켜보면 자금 계획도 없었고, 남자친구와의 결혼에 대해서도 결정된 것 하나 없었다. 그런데도 처음 보는 지역을 보고 매수를 진지하게 고민했다니, 지금 생각하면 웃기다.




SE-8BA9C032-3553-4EE9-99A4-4FC572EB67DA.jpg?type=w773 우리가 고려했던 L 아파트의 실거래가



그 시점에 L 아파트를 10억에 샀으면 신고가와 나란히 했을 뻔했다. 물론 지금은 시세가 올라서 12억 정도 하는 것 같던데, 그래도 내가 주식으로 번 것보다 수익률이 낮네.


안 사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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