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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수성가로 상급지 입성한 친구

장바구니 목록: 서울 집 (5년 전 담음)_12

by Posy 포지


부동산이나 재테크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부터 세상이 훨씬 흥미로워졌다. 자산이 조금씩 불어나는 재미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대화의 폭이 넓어졌다. 인생을 멋지게 사는 사람들을 더 자주 만나게 되었고, 원래 알던 친구들과 더 가까워지기도 했다.


삶이 달라지면 주변 사람들도 달라진다고 한다. 다행인지 내 친구들의 대부분은 나와 비슷한 방향으로 변해갔다. 나이가 들수록 추억 팔이나 우리와 상관없는 이야기를 하는 대신, 현실적인 얘기를 더 많이 하게 되었다. 특히 돈과 관련된 이야기.


그리고 그런 대화 속에서 친구들의 인생이 '집' 하나로 달라지는 걸 여러 번 목격하게 되었다. 이건 그중에서도 집으로 가장 성공한 친구의 이야기이다.





때는 첫 회사를 그만두고 이직을 준비하던 시절이었다. 그 무렵 나는 한 취업 스터디 그룹에 들어갔다.



나의 관심사는 여전히 외국계만 기업에만 있었지만, 외국계 기업 특성상 공채라는 것이 없고 TO가 나야만 모집 공고가 났던 것이다. 내가 원하는 곳에 언제 자리가 날 지 모르는 상황이었기에, 나는 국내 기업 중 S 전자만 따로 준비해 보기로 했다.



스터디그룹에 모인 사람들은 총 6명, H 자동차, L사 디스플레이 등 모두 국내 유수 기업의 현직자였다. 다들 충분히 좋은 회사에 다니고 있었지만 각기 다른 이유로 S 전자를 준비하게 되었다.



내 또래로만 구성되어 있었고, 나를 포함한 네 명은 동갑이었다. 대부분 비슷한 전공을 가지고 있었고, 알고 보니 몇몇은 출신 학교도 같았다. 모두 학생이 아닌 직장인 신분에 나이도 비슷했고, 하나의 목표로 모인 우리는 급속도로 친해졌다.


백수였던 나를 제외한 모두 회사원이었기 때문에 평일에는 시간이 나지 않아 주로 주말에 모였다. 강남역 근처 스터디룸에 모여, 아침부터 해가 질 때까지 인적성 문제를 풀었다. 그렇게 하루를 불태운 뒤에는 늘 다 같이 저녁을 먹고 술을 한잔하러 갔다.



회사에서 몰래 스터디 숙제를 하다 걸릴 뻔한 일, 각자 회사를 욕하며 절대 우리 회사 주식은 사지 말라는 농담들, 그렇게 수다를 떠는 것이 당시 우리의 낙이었다.


그 무렵 나는 장거리 연애 중이었다. 더불어 남자친구가 매우 바빴기에 자주 만나기가 힘들었다. (현 남편 아님 주의) 그래서 주말이면 어김없이 스터디 그룹 친구들과 함께했다.


스터디원들을 우연히 만났음에도 신기하게 다들 비슷한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인생의 목표를 세우고 앞만 보고 나아가는 데에 거침이 없었다. 그러니까 나름 좋은 직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조금이라도 더 나은 목표를 위해 취업도 다시 준비한 것이겠지만. 다들 자기 계발에 진심이었고 1분 1초도 허투루 살지 않도록 노력했다. 당시에는 내가 잘 모르는 분야였지만, 주식, 부동산, 부업과 같은 얘기도 빠지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특히 열심히 사는 친구 Y가 있었다. Y는 정말 자기 계발에 미친 사람 같았다. 출근 전에 수영을 하고, 점심시간엔 회사에서 혼자 자격증 공부를 하고, 퇴근 후에는 이직 준비를 한다고 또 공부를 했다.



홀로 백수였던 나는 평일에도 시간이 많았고, Y는 퇴근 후 종종 나에게 “같이 공부하자"라고 했다. 나는 어차피 혼자 있어도 공부할 거였으니, 흔쾌히 카페나 도서관에 같이 다녔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열심히 공부를 하고 카페가 문 닫을 시간이 되어 나가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먼저 나간 Y가 갑자기 트렁크에서 큰 꽃다발과 선물 박스를 꺼내어 들고 오는 것이 아닌가.



그 순간 나는 얼어붙었다. 나는 눈치가 빠른 편이라 누군가 나에게 관심이 있으면 대체로 알아차리는 편인데, Y가 나에게 고백할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



무엇보다 내가 장거리 연애 중인 걸 누구보다 잘 아는 Y가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혼란스러운 와중 ‘내가 당연히 거절할 것을 알 텐데, 그러면 앞으로 우리 스터디 모임은 어떻게 하려고?’라는 생각이 들면서 갑자기 화가 났다.


Y는 나에게 꽃과 선물을 건네며 다른 말은 하지 않았고, 오직 미안하다는 말만 남기고 돌아갔다. 집에 가서 보니 선물과 함께 편지가 있었고, 나는 Y가 꽤 오랜 시간 고민한 것임을 알게 되어 마음이 더 불편해졌다.



돌이켜보면 Y는 나에게 은근히 자신의 준비된 상황이나 꿈꾸는 미래 같은 것에 대한 얘기를 많이 했던 것 같다.


“자산관리사가 내가 버는 거에 비해 너무 적게 쓴대. 그러니까 식사는 내가 살게. 나 친구 없으니까 나랑 밥 먹어주는 게 감사한 거야.”



“중국 주재원에 가있는 동안 돈 쓸 일이 없어서 다 모았더니, 1년이 지나니 통장에 1억이 불어있더라. 이거 나중에 어디 써야 좋을지 고민이야.”


“내가 다른 건 몰라도 성실함이랑 끈기 하나만은 누구보다 자신 있거든. 나중에 우리 가족만큼은 진짜 잘 살게 하고 싶어”


나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친구의 속도 모른 채 언제나 그를 진심을 다해 칭찬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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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일을 계기로 우리 사이는 서먹해졌다. 나는 어색한 것이 싫어 예전과 똑같이 행동하기로 했고, 모임에서도 그날 Y와의 사건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모임이 지속되었던 것을 보면 아마 다른 멤버들도 우리 둘의 어색한 기류를 알아채지 못했던 것 같다.


6명이 함께 준비했지만, S 전자에 최종 합격한 사람은 오직 한 사람밖에 없었다. 나머지는 원래 회사를 계속 다니거나, 다른 곳으로 이직했다. 결국 지금까지 S 전자에 다니는 사람은 Y뿐이다.


우리는 처음엔 스터디 그룹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냥 친구 모임이 되었다. 가끔 연말에도 만나고, 서로의 결혼식에도 모두 다녀왔다.



우리 중 결혼을 가장 먼저 한 건 Y였다. 원래도 성실하고 자기 계발에 진심이던 친구였는데, 여자친구와 결혼을 앞두고는 부동산 공부에 가장 열을 올린다고 했었다. Y의 예비신부도 그와 비슷한 성향을 가진 사람 같았다. 둘은 주말마다 임장을 다닌다고 했다.



"요즘엔 카페에 갈 필요가 없어. 커피는 부동산에서 주는 믹스커피가 제일 맛있거든."



Y는 신혼집으로 동탄의 아파트를 매수했다. 예전에 나에게 자본금 얘기를 해준 터에, 나는 그가 저축과 재테크로 이미 충분히 투자금을 모은 상태였으리라 짐작했다. Y의 노력으로 이룬 성과를 모두가 축하해 주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은 다음 모임에서 Y는 동탄 아파트를 팔고 영등포에 있는 한 아파트를 매수했다고 했다. 실거주를 해야하는 상황이라서, 영등포에서 수원 사업장까지 출퇴근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아내의 직장은 더 멀었다.)



무엇보다 놀라웠던 건 대출 규모였다. Y는 대출금을 갚느라 아내와 함께 한 달에 용돈 20만 원으로 살고 있다고 했다. 대출이 얼마냐고 물어봤을 때 나는 그의 답변을 듣고 깜짝 놀랐다.



“지금 영등포집에 들어간 대출금이 8억이야.”



나는 주변에서 그렇게 큰 금액을 대출받은 것을 본 적이 없었다. 걱정되지 않느냐고 묻자, Y는 이렇게 답했다.



“우리가 평생 여기서 살 것도 아닌데, 얼른 모아야지. 빨리 옮기려면 레버리지를 크게 일으키는 수밖에 없어.”



말로는 축하한다고 했지만 그날 나는 많은 생각이 들었다. 회사에서 가까운 동탄을 놔두고 도대체 왜 영등포에서 출퇴근을 하며 힘들게 살지? 그리고 영등포가 8억 대출을 감수할 만큼 좋은 지역인가?



그때는 몰랐다. 그 정도의 대출을 일으키는 것도 능력이 되어야 가능하다는걸.





시간이 흘러, 내 결혼을 앞두고 청첩장 모임을 가졌다. 그 자리에서도 Y의 근황이 빠질 수 없었다. 친구들 모두 갓생을 사는 그의 삶을 궁금해했다.



“Y야 요즘은 또 뭐 하면서 열심히 살고 있니? 너 알고 보면 부동산 하나 더 산 거 아냐?”



“어 어떻게 알았어? 안 그래도 최근에 이사했어. 그래서 예전보다 회사 가기가 훨씬 수월해졌어.”


“오 축하해! 회사 가까운 곳으로 다시 간 거야? 수원 가까운 곳이라면 광교 쪽인가?”



“아 경기도로 간 건 아니고, 서울에 있기는 해. 옥수로 이사했어.”


“와 옥수? 옥수 너무 좋지. 옥수 극동이나 삼성 이쪽인가 보네?“



“아니 이제 애도 생각하고 있어서 구축 말고 신축. 옥수파크힐스로 갔어.”



그 말을 듣고 우리 모두는 자리에서 탄성을 질렀다.



Y는 부모님의 도움을 받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단 세 번의 갈아타기로 상급지에 입성했다. 내 주변에 부자들이 꽤 있지만, 내가 아는 사람 중 자수성가로 가장 성공한 사례를 꼽자면 단연 Y라고 말할 수 있다.


청첩장 모임에서 Y와 여러 이야기를 나눴지만, 내 결혼식 당일 그는 오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축의금은커녕 축하 인사 한마디조차 없었다. 다른 멤버들은 와주었는데, 따로 전달을 부탁한 것도 없어 보였다. (나는 물론 Y의 결혼식 때 축하도 하고 축의금도 당연히 선물했다.)


하루는 남편과 대화하며 '청첩장 모임에서 식사도 함께하고 2차까지 하고 갔는데, 결혼 축하 메시지 한 줄 보내지 않은 사람이 있었다'라고 말해줬다. 화가 나서 말한 것이 아니라, 조금 의아해서 남편의 의견을 들어보고 싶었던 것이다. 남편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Posy야, 세상에 그런 사람은 없어. 그냥 잊은 거겠지. 설마 그런 사람이 있을까? 아니야 있을 수가 없을 거야..”


유머러스한 남편의 대답을 듣고 웃을 수밖에 없었다.


친구의 인생에서 나의 결혼은 크게 중요한 일이 아니었을 테니 아마 잊어버렸겠거니 생각한다. 그게 아니면 혹시 오래전 일에 대한 소심한 복수일까? 물론 Y와의 비하인드 스토리는 남편에게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Y에게 축하를 받지 않아도 괜찮다. Y는 나에게 그것보다 더 큰 것을 주었다. 누구도 쉽게 보여줄 수 없는 '성공한 인생의 모범 사례'를 보여주었으니까. 그 과정을 옆에서 지켜볼 수 있었던 게 나에게 행운이었다.



부의 사다리가 점점 끊긴다고 하지만, 나는 여전히 한국이라는 나라가 희망이 있는 곳이라고 믿는다. 그걸 내 주변 사람들을 통해 계속 보고 있으니까. Y의 이야기도 그중 하나이다.



Y는 언젠가 아크로서울포레스트에 살고 싶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의 말을 떠올리며 나는 이 에피소드를 그저 인생에서의 재미있는 한 장면으로 승화시켜본다.



"이미 부자인 너에게 큰 의미는 없겠지만, 내게 주었을 그 축의금으로 내가 너의 다음 갈아타기를 응원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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