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1, 삶의 무게에 관하여

죽을 용기가 없는 것은, 아직 삶에 애정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by N의 시선

영화 <버닝>을 보다가, 주인공이 수십 년의 더께가 내려앉은 창고 문을 여는 장면에서 화면을 두 번 눌러 멈췄다. 어려운 영화라는 소식에 한껏 눈썰미를 벼리고 혹시 놓칠 만한 단서라도 있는지 살펴보려는 심산이었다. 그런데 햇살에 먼지가 나부끼는 적막한 장면을 보고는 스르르 몽상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저 퀴퀴한 먼지가 한 올 한 올 창고 안에 쌓이는 동안 바깥세상에는 어떤 일들이 일어났을까. 가볍게 나풀거리는 저 미세한 입자들에 새겨진 세월은 얼만큼 무거울까.


예컨대 서해안 해저에 가라앉은 무역선과 산화된 은화에, 안산 산책로 옆자락에 묻힌 불발탄과 바스러진 철모에, 광주에서 홀로 사는 앉은뱅이 아주머니의 손 닿지 않는 찬장 위에, 켜켜이 쌓여 있을 사연들. 바닥에 누워 곰곰이 그런 것들을 헤다 보면 내 삶은 비교적 사연이라 할 만한 것이 하나도 없어서 경박했습니다.


세상으로부터 실종된 사물이 수없이 많을 텐데, 그보다 나의 생애가 가볍다는 게 부끄러워야 하는 일인지, 당연한 일인지 가늠할 수 없었습니다. 부끄럽다면 과연 누가 은화보다, 철모보다, 빛바랜 사진보다 무거운 삶을 자신할 수 있습니까? 당연하다면 우리는 어디까지 살아야 잊혀진 분실물이라도 능가할 수 있는 것입니까?


그러나 오래 살아 내 삶이 의미 있기를 바라는 것은 하루만에 가물가물해진 어젯밤 개꿈보다 터무니없을지도 모릅니다. 특히 요즘 세상은 더 그렇습니다. 시대를 풍미한 상징조차 한 세대를 넘기기 어려운데, 앞으로는 평균 수명이 서너 세대를 넘나든다고 하더군요. 차라리 짧게 살다 가면 지금처럼 가벼운 생애가 정상 참작이라도 될 텐데. 어쩌면 요절한 사연 덕분에 없는 내 삶의 가치를 사람들이 알아서 만들어줄 텐데.


하여 죽을 용기가 없는 것은 아직 삶에 애정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미적지근하게 숨을 쉬고 깨작깨작 밥을 삼키는 것입니다.

달력을 보니 벌써 오늘이 25일, 이번 달 식권을 받는 날입니다. 아직 용기가 나지 않으니 식권을 받는 수밖에는 어쩔 도리가 없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