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제자리에 두는 일

by 공원

평소엔 식사를 마치고 다 마신 차의 티백이나 입을 닦은 휴지는 일반 쓰레기 통에, 배달 받은 용기들은 씻어서 플라스틱 쓰레기 통에, 남은 수저는 설거지를 하고 수저통에 넣는다. 사용이 끝난 것들을 제자리에 두어 정리하는 일은 하나도 어렵지 않다. 이 쉬운 일을 가끔씩은 정리를 하나도 안 한 채로 내버려두고 싶고 일반 쓰레기통에 다 털어넣고 싶을 때도 있다. 마음이 산만해지면 간단하게 하는 일 조차도 엉망으로 두고 싶어진다.


생각이 많은 터라 내 생각과 마음을 냉정하게 다듬고 제자리에 두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이걸 못하면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몸져 누워야하는데 그런다고 해결이 되는 것도 아니다. 빠른 시간 내에 내가 할 필요가 없는 생각들을 처내고 정리해야만 한다. 이것도 이제는 습관이 되어 머리가 반자동으로 움직이고는 한다.


헤어지고 나서 걔에 대한 생각에서 필요없는 가지를 처내고 나에게 의미있는 사실이나 인사이트 만을 정리하고자 했다. 걔에게 내 마음의 90프로 이상을 두는게 익숙해져서 그 마음들을 이리저리 나에게 필요한 구석으로 분산시키기도 했다. 남은 감정들은 마구 쏟아내며 소멸되길 바랬다. 이 작업들이 마무리를 짓고 몇년 만에 내가 좀 마음에 들어하는 내 모습으로 돌아왔다고 좋아하고 있었다.


이때 생각도 못한 걔의 연락이 왔다. 예상치 못한 말들에도 내가 정리해둔 결론을 말했다. 뿌듯한 마음으로 '이게 나지 !!' 하던 것도 잠깐이고 며칠은 걔 생각을 했다. 잘 정리해둔 감정이 갑자기 한데 뒤섞였다.

정리만 하면 다 끝난거라고 생각했는데 걔에게 마음을 들이던 습관은 내가 잊고 있었던 거다.

걔가 갑자기 등장하고 나니 내가 열심히 정리해둔 것들이 와르르 한데 털어 넣어졌다. 그렇게 잠깐 또 내 마음을 정리하기를 망칠 뻔했다.

결론은 여전히 걔를 안만나겠다는 것이었지만 미운 존재라고 도장 찍고 넣어뒀었는데 전화를 다 하고 나니

며칠은 그 흔적을 싹싹 지우고 응원한다는 마음이 붙었다. 쉽게 바뀐 내 태도에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누굴 미워하는 마음의 공간을 두는 것 보단 응원하는 곳에 두는게 내 정신 건강에도 이롭겠다 싶어

응원하는 마음을 굳이 고쳐먹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여기가 아닌 어딘가에 티를 내지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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