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밤 들국화가 별처럼 빛났다

by 엄마캠퍼 방성예

가을이었다. 내가 자주 찾는 옥천의 단골 캠핑장에는 전에 없이 들국화가 지천으로 피었다. 산비탈을 정비하여 만든 캠핑장인지라 장마철에는 흙이 쓸려 내려오고, 태풍이 오면 나무가 부러지곤 해서 자리 잡기까지 몇 해 동안 애를 많이 먹었다. 그 과정을 오래 지켜본 곳이다.

그런데 그해 가을에는 그간의 고생에 보답이라도 하듯, 사이트마다 들국화가 피어났다. 흐드러진 들국화와 키를 나란히 하고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좋은 가을날이었다.


그곳에 가면 나는 순식간에 딸이 넷이 된다. 우리 따님이 둘, 그리고 젊은 캠프장님의 어린 따님 둘. 그 아이들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자주 봐 왔던 터라 우리 아이들이 무척이나 잘 놀아준다. 성격이 내성적이고 예민했던 큰딸은 두 살 터울의 제 동생과는 끝없이 싸우는데, 캠프장님의 막내딸에게는 아낌없이 언니 노릇을 한다. 본인 몫의 밥을 숟가락으로 떠서 네 살 된 그 아이 입에 넣어주면서 세상 흐뭇한 엄마 미소를 띨 정도다. 열 살짜리가 네 살짜리에게 보이는 엄마 미소란!


숲을 이고 있는 캠핑장에는 나비와 꿀벌도 많다. 캠핑장 할아버지가 여름 내내 정성껏 키운 과수나무는 달디 단 열매로 보답했다. 배나무에서 딴 배를 반쪽 갈라놓았더니 세상에나, 나비와 꿀벌이 배즙을 빨아먹으려 달라붙었다가 배즙에 취한 듯 온종일 머물러 있는 모습도 보았다.

네 아이는 떼 지어 캠핑장을 누비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논다. 그리고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자 자연스럽게 모닥불을 피운다. 캠핑 조기교육이 잘 된 큰 따님은 차분하게 토치도 직접 다룬다. 왜냐하면 엄마 몰래 동네 문방구에서 구입해 둔 불량식품 쫀드기를 구워 동생들에게 특별 간식으로 내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혀에 착 붙는 쫀드기의 얕은 맛은 숯 향기가 더해져 매혹적으로 변신한다. 엄마는 짐짓, 모른척한다.


들에 집을 짓고, 아이들을 먹이고, 불을 피우는 일은 분명 고되다. 그러나 참으로 즐겁기도 하다. 이 상반된 매력은 중독성이 크다.

아이들이 모닥불 앞에서 알콩달콩 노는 모습을 지긋이 바라보면서 나는 생각한다

'얘들아, 너희는 지금 잘 모르겠지만, 이런 경험들이 앞으로 살아가면서 너희에게 힘이 되길 바라.

가을볕과 봄볕이 다름을 알아채고, 자연이 얼마나 고맙고도 두려운지 깨닫는 순간도 오겠지.'


긴 나뭇가지를 불쏘시개 삼아 숯을 뒤적이던 아이들이 장작이 떨어졌다며 벌떡 일어선다. 이대로 끝낼 수는 없어. 주변을 둘러보니 나무에서 떨어진 잔가지들, 솔방울들과 솔잎들이 적지 않다.

"저거 한번 넣어볼까?" 아이들이 스스로 해결책을 찾아냈고 경쟁이라도 하듯 주변에서 땔감을 줍기 시작한다. 주워 온 것들을 화로대에 한 움큼 던져 넣으니 솔방울이 크리스마스트리에서 빛나는 장식 마냥 가장자리부터 붉게 빛나며 타들어간다.

”와~! 예쁘다~~“

아이들이 뜻밖의 발견을 했다. 이제 사이트 주변의 솔방울을 더 열심히 찾기 시작한다.

"언니, 여기도 있어"

"응, 그래 갈게"

땅에 떨어진 솔방울을 찾느라 아이들이 캠핑 랜턴을 들고 들국화가 핀 쪽으로 간다.

어둠으로 보이지 않던 들국화가 순식간에 빛을 받아 땅에 떨어진 별과 같이 보인다.

마른 솔방울을 줍던 그 가을밤에 네 아이들은 천사와 같고, 들국화는 별처럼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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