짚신여행님은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가족들과 함께 전국의 산을 넘나들고 캠핑을 하던 관록의 소유자였다. 짚신여행이라는 특이한 닉네임의 뜻도 이와 관련이 있는데, 짚신을 삼아 신고서라도 세상 곳곳을 다니겠다는 의미를 담았다 한다.
그는 오토캠퍼라기보다는 백패커에 가까웠는데 내가 마로니에숲을 단골로 다니던 초보 시절, 그 또한 이곳을 각별히 자주 찾던 중이었다. 그가 이 캠핑장을 좋아하는 이유는 뷰 때문이다.
산 하나를 깎아 조성한 옥천 마로니에숲의 맨 상단사이트에는 아주 멋진 느티나무 한 그루가 가지를 펼치고 있다. 수백 년의 수령을 가진 이 나무는 비바람에 시달리면서도 꿋꿋하게 버티고 생명력을 잃지 않은 고목 특유의 웅장함과 비장한 자태를 간직하고 있다. 게다가 이곳은 장찬저수지라는 커다란 담수 저수지를 앞에 놓고 있다.
그 느티나무 아래가 이 캠핑장의 가장 높은 곳이었는데, 이곳에 자리를 잡게 되는 행운이 주어진다면 뒤로는 아침 햇살이 쏟아지는 숲의 장관을, 앞으로는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저수지의 장관을 독차지하게 된다.
짚신여행님은 이 자리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여러 캠핑장을 가봤지만 이만한 자리가 없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었다. 하지만 맨 꼭대기에 위치한 이 사이트는 개수대나 화장실이 멀기 때문에 편리함이 중요한 캠퍼라면 선호도가 다를 것이었다.
내가 그를 ‘사부’라고 부르는 이유는 또 있었다. 한 달에 한두 번씩 같은 곳을 찾아가는 단골 캠퍼가 되다 보니 자주 캠핑장에서 마주치게 되었는데, 그런 때 장비를 다루는 나를 보면서 무심한 듯 세심하게 던지는 그의 한마디 한마디가 나의 캠핑 생활에 아주 큰 지침이 되었기 때문이다.
단단한 땅에 팩을 박느라 망치에 있는 힘을 다하고 있는 나.
지나가면서 사부님의 한마디 툭.
“팩 박을 때 힘으로만 하려고 들면 팔꿈치 망가집니다.
그냥 팔을 높이 들고 천천히 내리치면서 스냅의 힘을 쓰시죠”
아하, 실제로 그렇게 팩을 박으니 정확도도 높고 어깨와 팔도 덜 피곤했다.
장비를 세팅하느라 바삐 서두르는 나.
사부님 한 말씀 툭.
“텐트를 빨리 치려고 하기보다는 그 과정을 즐기시면 좋아요.
저는 팩 하나 박고, 담배 한 대 피우고, 의자 하나 넣고 멍 때리곤 합니다.
몇 시간이 걸려도 그게 뭔 상관이 있겠어요. 어차피 쉬려고 온 건데”
아, 그러네. 내가 왜 이걸 노동처럼 하고 있지?
그러한 에피소드가 쌓여가면서 알게 되었다. 그분은 나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에게 두루 도움을 주고 있었다. 도움을 주는 방법도 세심했다. 마구잡이로 돕겠다고 덤비는 것이 아니었다. 지켜보다가 상대가 난감해할 때만 나타났다. 마치 돌 지난 아기가 뒤뚱거리면서 걷는 걸 지켜보다가 넘어질 것 같을 때만 손을 잡아주는 아빠처럼 말이다. 짚신여행님은 그 캠핑장의 초보 캠퍼들에게 그러한 존재였다. 아주 가볍게, 유머와 함께 투입되는 그분 따뜻한 관계 맺음 덕분에 캠핑장은 가족적인 분위기마저 형성되기도 했다. 심지어 짚신여행님을 캠핑장 관계자로 오해하는 사람이 생길 정도였다.
캠핑 경력이 쌓이다 보니 이제 나는 그의 섬세한 오지랖(?)이 이해된다. 캠핑에 처음 오거나 경험이 얼마 안 된 분들은 멀리서 보아도 한눈에 들어온다. 그들의 움직임과 자리가 정리되는 속도를 보면 안다. 그리고 대략 난감한 상황이 벌어질 상황까지 예측할 수 있다. 하지만 나 또한 나의 멋진 스승에게 배웠으니 섣불리 굴지 않는다. 대부분은 스스로 해결할 수 있기에 인내심을 갖고 지켜본다. 그리고 상대가 원할 때나 정말 위험한 때만 손을 내밀어야 한다는 것을 안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다. 짚신여행님은 나와 처음 만난 날 진짜로 근처를 드라이브하던 중이었을까? 우연인 듯 왔지만 사실은 캠핑에 빠진 막무가내 캠린이에게 뭔가 도움을 주고 싶어서 일부러 시간을 낸 것은 아닐까?
이제 와서 정색하고 물어본다 한들 분명 그분은 빙글빙글 웃으면서 엉뚱한 농담을 할 터이니 이 궁금증은 영원히 미제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