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캠퍼들이 자녀가 네 살 무렵부터 취학 전 일곱 살 무렵에 가족캠핑을 시작한다. 아이가 네 살이 넘어가면 이제 혼자서도 넘어지지 않고 자유롭게 뛰고 온다. 그래서 에너지가 넘치고, 부모들은 주말에도 집안일에 아이들 뒤치다꺼리에 바쁘기 십상이다. 그래서 아이들과 몸으로 놀아줄 자신이 없으면 아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는 게 더 편하다. 나 또한 그랬다.
그렇지만 온갖 의식주와 관련된 캠핑장비를 이고 지고 다녀야 하는 캠핑이란 웬만큼 부지런하지 않으면 힘들다. 부부가 의기투합해 캠핑을 시작하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도 더 많다. 아내가 캠핑에 관심이 있어도 남편이 바쁘거나 주말엔 소파에서 껌딱지 모드로 누워있는 걸 좋아한다면, 시작도 못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어떤 일이든 예외가 있는 법. 나처럼 캠핑에 열정을 불태우는 엄마가 나 혼자 뿐이었을까.
캠퍼들 사이에서는 엄마가 아빠 없이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는 여성캠퍼를 맘캠퍼라고 부른다. 캠핑 동호회는 주로 네이버나 다음 같은 포털 사이트의 카페를 중심으로 발달되었는데, 우연히 맘캠퍼들만 모이는 카페가 따로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표적인 카페는 [미즈캠퍼] 그리고 [여우캠퍼]다.
대부분의 캠핑 카페는 일 년에 한두 번 정도의 정모(정기 모임)를 한다. 정모가 열리면 수십, 수백 명의 캠퍼들이 날을 정해 하나의 캠핑장으로 모인다. 그런 날은 온라인에서 다지던 친교를 오프라인으로 확장하는 큰 행사가 된다. 하지만 맘캠퍼들만 모인 캠핑 카페는 한 달에 한 번씩 꼬박꼬박 정모를 한다. 혼자서는 엄두가 안나는 맘캠퍼 들은 대규모로 거행하는 정모보다 정기적으로 모여 캠핑을 하는 것을 더 선호한다.
나는 본래 무슨 일이든 대규모를 선호하지 않는 성향이다. 그래서 많은 인원이 모이는 카페보다는 상대적으로 적고 오붓한 느낌의 [여우캠퍼]라는 카페를 선택했다. 한 달에 한번, 정모에 보통 열 팀 정도로 모이는 카페였다. 무척이나 반가웠다. 혼자서 외롭게 떠돌던 여우가 무리를 만난 느낌이랄까?
그곳에는 나보다 캠핑 경험이 훨씬 많고 노련한 선배가 있는가 하면 이제 막 시작해서 이것저것 챙겨주고 싶은 초보 맘캠퍼도 있었다. 바로 그러한 조합이 여성캠퍼 전용 카페의 목적이었다. 혼자서는 부족한 그 무엇인가를 서로 보완해 주는 만남. 선배 캠퍼는 후배들에게 경험과 노하우를 나누고 후배들은 캠핑 초기의 열정과 추진력을 나눈다. 그 무엇보다 남편 없이 캠핑을 하는 맘캠퍼로서 겪는 어려움이 공통점이었던 만큼 연대감도 컸다.
우리가 정모를 하는 날이면 캠핑장에는 조금 색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카페지기가 캠핑장 한 구역을 통째로 빌린다. 멤버들의 차가 하나 둘 도착한다. 모두 여성 드라이버들이 운전하는 차다. 차량의 종류도 선입견을 벗어난다. 코란도 스포츠 같은 화물차를 터프하게 운전하는 그녀, 작은 경차로도 온갖 캠핑 장비를 야무지게 수납해 오는 그녀, 고급 외제 차량을 몰고 등장하는 경제력 빵빵한 그녀도 있다. 나이도 이십 대부터 오십 대까지 천차만별이지만 그 모든 것은 캠핑장에서 별로 영향력이 없다. 영향력의 최고봉은 바로 캠핑 경험치. 캠핑 경험 만렙인 카페지기 ‘가을여우’와 몇몇 캠핑 고참들의 지휘 아래 여우캠핑의 정모는 일사불란하다.
고참 맘캠퍼는 대부분 다른 사람들보다 일찍 도착해 자신의 장비를 세팅 완료한다. 그리고는 멤버가 도착하는 대로 분업을 한다. 누가 뭘 하겠다고 사전에 약속한 바는 없지만 분업은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장비를 잘 다루는 이는 아직 장비가 서투른 후배들의 텐트를 함께 쳐주고, 요리를 잘하는 이는 닭을 몇 마리씩 끓여 백숙을 만들어놓고는 다른 캠퍼가 장비를 세팅하는 사이 배고파할 그 집 아이들을 먹인다. 어린이집 교사인 누군가는 아직 서로서로 낯가림하는 아이들을 불러 모아 보드게임을 시키거나 소꿉장난을 할 수 있도록 판을 만든다. 여우캠퍼 정모에서는 서로가 서로를 스스럼없이 돌보는 이러한 일들이 자연스럽게 벌어진다.
아주 아주 오래전, 사람들이 공동으로 의식주를 해결하던 시절, 그때도 여성들은 이렇게 살지 않았을까. 남자들이 사냥을 나가거나 논과 밭으로 나가 일을 하는 동안 여성들은 옆집과 음식을 나누고 옆집 아이를 돌보고 살림에 필요한 일들을 함께 했다. 지금도 김장철이면 주부들이 함께 모여 김장 품앗이를 하는 것처럼 말이다.
가족과 부족을 지켜야 했던 남성들이 본능적으로 경계와 경쟁을 할 수밖에 없다면 여성들은 협력과 연대, 공생에 익숙하다. 여성들만 모이는 여우캠핑을 하면서 이러한 연대와 협력이 자연스럽게 발현되는 경험을 했다. 여성들이 가진 힘을 새삼 확인했다.
캠핑장 한쪽에서 벌어지는 이러한 광경들에 여타 캠퍼들의 눈길이 쏠릴 수밖에 없다. 상상해 보라. 한떼의 무리가 도착해 텐트와 타프를 거리낌 없이 치고 있는데 모두 여자들이다!! 선글라스와 챙모자를 쓰고 작업용 장갑을 날렵하게 낀 여자들이 커다란 텐트와 타프를 뚝딱뚝딱 세운다. 그건 좀 멋지지 않은가? 게다가 여우캠퍼가 정모를 하는 자리에는 아래와 같은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이 무리에 왜 남자는 없을까 하는 의구심에 일일이 답을 하기 어려우니 고심 끝에 작성한 플래카드다.
[여우캠퍼 정모 / 남편은 집에. 캠핑장에는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