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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림이스트 포로리 Oct 21. 2023

300L 냉장고로 살아남기

오늘도 잘 먹었습니다.

  냉장고 문을 유심히 바라본다. 오늘의 메뉴가 무엇인지 확인하며 냉장고 문을 뚫어져라 바라본다. 


'밥은 해 놨고, 국도 끓여두었고, 남은 반찬 요거 꺼내고 하면 오케이. 오늘 한끼는 또 어찌 해결되겠구만.'


  모든 살림이스트들의 고민은 [먹을 것]이다. 돌아서면 밥하고 돌아서면 밥하고, 돌밥돌밥 돌아버리겠네! 

먼저 결혼했던 친구가 왜 밖에서 먹자고 했는지, 외식이면 다 좋다고 했는지 이해가 가는 부분이었다. 이건 셀프 삼시세끼도 아니고 말이지 아침에 일어나서 밥하고 설거지하고 나면 점심을 해야 한다. 점심을 먹고 설거지하고 나면 간식을 해야 한다. 간식을 준비해서 먹이고 치우고 나면 저녁을 해야 한다. 응? 다람쥐 쳇바퀴 돌아가는 일상이라 해도 이건 너무 반복적이지 않은가? 누가 집에서 논다고 했던가! 나는 정말 궁딩이 한번 붙일 사이도 없이 종종걸음을 치며 하루 종일 밥하는데 정작 나보고, 논단다. 너도 집에서 놀아봐라. 크앙!


  냉장고 속이 가득한데 먹을 게 없다는 것은, 정말 먹을 게 없는 게 아니라 먹을 걸 만들 기운이 없다는 말일 거다. 감잣국 하나 끓이려 해도 육수 내야지, 감자 씻어 깎아야지, 별것 아닌 것 같아도 손목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다. 그저 내 가족 먹일 생각에 움직이지만 그런 가족이 맛있게 먹어주지 않으면 맥이 탁 풀린다. 아 나도 누가 해주는 밥 먹고 싶다고!


  신혼 시절 우리 집 냉장고는 김치냉장고 1대였다. 일회용과 외식을 사랑하던 나는. 맞벌이하던 우리는 뭐 집에서 얼마나 먹겠느냐며 김치냉장고 딱 1대만 들였다. 집이 15평짜리 오래된 복도식 아파트라 큰 냉장고를 넣을 공간도 없는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일반 냉장고가 아닌 김치냉장고를 들인 이유는 하나였다. 

'맥주' 

시원한 맥주를 퇴근 후 한잔하고 싶어서였다. 1대뿐인 김치냉장고에 김치는 없고 맥주와 콜라 캔이 나란히 줄을 맞추어 서 있었다. 김치냉장고에 냉동 기능도 있어서 전자레인지에 돌려먹을 인스턴트들을 가득 채웠다. 냉동 만두, 냉동 치킨, 냉동 피자 등등. 


"요즘은 말이야 냉동식품이 너무 잘 나와!"


  그런데 상황은 달라졌다. 사람이 매일 인스턴트에 외식으로는 살 수는 없었다. 양가에서 밥이라도 굶을까 봐 식재료에 반찬을 해다 주시기 시작했다. 집은 좁은데 냉장고를 더 둘 수도 없는데 말이다. 


"집에 큰 냉장고 있잖아!"


  이게 양문형 냉장고처럼 생겨서 다들 큰 냉장고인 줄 아는데 사실 468L 짜리 김치냉장고다. 요즘 양문형 냉장고가 820L부터니까 절반 정도밖에 들어가질 않는다. 리터는 468L 지만 16칸짜리 냉장고 1칸당 쌀 10Kg 들어가는게 전부인 냉장고다. 결단을 내려야 할 순간이 왔다.


"냉장고를 하나 더 사자.'


좁은 판상구조의 15평짜리 아파트 주방에 냉장고 하나 더 넣으려니 머리가 아찔해졌다. 그래서 고민 끝에 제일 작은 냉장고를 놓기로 했다. 이왕이면 에너지 등급 1등급인 거로 A/S가 잘 되는 브랜드로 검색을 시작했다. 삼성, 대우, LG 등등 열심히 고민하다 LG로 사기로 했다. 냉장고 크기는 320L. 세워서 보관하는 음료수들과 각종 냉장 보관 양념들을 냉장고에 넣으니 냉장고가 꽈악 들어찼다. 문제는 냉장고가 문제가 아니라 내가 먹던 음식들이 문제였다. 대형마트에서 24캔들이 맥주캔과 콜라 캔을 사서 냉장고에 쟁여두니 냉장고에 공간이 없던 것이었다. 맥주와 콜라 캔을 24캔들이로 사지 않고 먹고 싶으면 집 앞 편의점에서 사다 먹기로 했다. 임신과 출산은 나의 삶을 다른 방향으로 비틀고 있었다. 임신했던 나는 어차피 맥주를 마시지 못하니 신랑도 술을 줄였다. 같이 마실 사람이 없으면 재미가 없다면서 편의점에서 한 캔씩 사다 먹는 것에 흔쾌히 수락했다. 재미있는 것은 고작 5분 걸어 나가는 편의점이 세상 귀찮다는 것이다. 까짓 5분 걸어갔다 오면 되는데 귀찮아서 사 먹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출산을 하고 분유를 먹이려는 나의 노력은 수포가 되었다. 감사하게도 나는 젖이 많이 나왔고, 아이는 젖병을 거부했다. 젖병을 바꿔보고 분유도 바꿔보다 모유를 짜서 젖병에 넣어 주어도 아기는 혀로 메롱 젖병을 밀어버렸다. 그러고는 젖을 한 움큼 쥐고는 꿀꺽꿀꺽 먹고는 꺼억 트림하고 잘 잤다. 


"남들은 젖이 돌지 않아서 모유 수유하고 싶어도 못한다는디 니는 분유를 못 먹여서 안달인 게냐. 아가 배불리 먹으니까 순한데 왜 분유 멕여서 얼라를 예민하게 키울라 해. 너희도 젖 먹고 자라서 순한겨."


  또 엄마의 잔소리다. 얼렁 분유에 적응해야 나도 일할 것 아닌가! 당시 나는 100일 되면 아이를 보육 시설에 맡기고 복직할 생각이었다. 그러려면 아이는 분유에 적응해야만 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이는 분유를 거부했고 아토피는 심해졌다. 천 기저귀를 쓰면서, 완모를 하면서 아이 피부는 깨끗해지기 시작해 갔고 날짜는 100일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모든 일은 내가 선택하고 그 선택에 따른 책임은 나의 몫이다. 복직을 한 달여 앞두고 나는 치열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내가 일하려는 목적이 무엇인가. 내가 삶의 가치를 두는 게 무엇이 우선인가에 대한 치열한 고민에 휩싸였다. 일회용 기저귀에 분유를 멕이면 아이 피부가 다시 엉망이 될 것 같았고, 그렇다고 복직하지 않기엔 가정 경제가 부담되었다. 아이는 커가고 들어가는 돈이 많아질 텐데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은 누구나 하지 않던가! 


  신랑과 치열하게 대화 끝에 복직하지 않고 육아에 전념하기로 결정 내렸다. 일이야 나중에 또 하면 되는 거고, 아이가 자라는 건 순간이라는 말과 함께 신랑이 육아를 많이 도와주겠다는 약속도 해주었다. 사장님께는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사직을 했고 나의 육아가 시작되었다.


  마음을 다잡고 육아에 전념하고자 하니 젖은 더 잘 나왔다. 아이가 먹고도 젖이 남아 유축해서 냉동실에 얼리기 시작했다. 혹여나 나중에 아이가 입원하거나 할 때 유축한 젖을 가져오란 소리를 듣고 부지런히 유축해서 냉동실에 얼려두기 시작했다. 냉동실에는 인스턴트 냉동식품이 아니라 유축된 모유팩으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그렇지않아도  작은 냉동실 3칸이 전부 모유로 가득 채워졌다. 모유로 목욕을 하면 피부 모습에 좋다는 말에 먼저 얼린 모유들은 아이 목욕할 때 섞어서 목욕도 시켜주었다. 신랑은 옆에서 모유 공장 생산하냐며 농담도 던졌다. 냉동실에 자리가 없다 보니 자연스럽게 우리 집 냉장고에는 인스턴트 냉동식품이 사라졌다. 역시나 너무 먹고 싶으면 집 앞 편의점에서 하나씩 사다 먹기로 했는데 5분 걸어나기가 너무도 귀찮아 포기했다.


  본격적으로 모유 수유를 하려고 보니 내 섭식도 바뀌게 되었다. 모유가 잘 나오려면 잘 먹어야 한다는데 나는 너무 많아서 육류, 유제품 등 기름이 많은 음식을 먹을 수가 없었다. 모유 잘 나오게 족발도 삶아 먹는다는 말을 듣고는 신나게 족발을 배달시켰다. 


"이거 다 우리 아가 먹는거다."


신나게 족발을 먹고는 가슴이 뭉쳐서 마사지를 받았다. 정말 돌덩어리가 가슴을 짓누르는 그 느낌은 말로 형용이 안 된다. 나는 채식 위주의 신선한 야채와 과일의 식단으로 바뀌었고 신랑도 함께 먹었다. 덩달아 냉장고 속 인스턴트도 비워지게 되었다. 3일에 한 번씩 먹을 만큼의 야채와 과일을 장을 보다 보니 300L 냉장고는 여유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냉장고가 작다보니 마트에 가서 먹고 싶다고 이것저것 담을수가 없고, 세일한다고 이것저것 담을 수가 없다. 양껏 장을 보면 냉장고에 넣을수가 없기 때문이다. 감사한것은 마트가 그리 멀지 않다는 것이다. 집에서 도보로 갈수있는 대형마트 2곳, 식자재마트 2곳이 있고 주변으로 편의점이 5개가 넘는다. 재래시장까지는 아니지만 5일장이 열리는 곳이 2곳이나 모두 도보 10분거리에 있다. 더군다나 요즘은 새벽배송, 당일배송등등 배송 서비스가 있어 예전처럼 쟁이며 살 필요성이 없어졌다. 정말 필요한 만큼만 장을 보면 낭비되는 식자재가 없어져 냉장고의 부담이 적어진다.


  만약 내가 900L짜리 냉장고를 가지고 있었더라면 지금처럼 했을까? 나도 냉장고 속 이것저것 쑤셔넣고는 먹을것이 없다며 투덜거리고, 세일한다고 무작정 식재료를 쟁이고 있었을 것 같다. 냉장고를 정리하려고 해도 그 규모에 압도되어 살포시 냉장고 문을 닫아버릴 것 같다. 어쩌면 내가 식재료를 아끼고 매일 요리하며 살림을 디자인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냉장고가 작아서 이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나의 강제 미니멀 제로웨이스트는 오늘도 순항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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