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선은 언제나 너를 향해 달려간다.
결혼을 하면 바로 아이를 가질 줄 알았다. 주변이 그러했기에 당연한 건 줄 알았다. 하지만 그런 당연한 것도 누군가에겐 당연한 것이 아닐수도 있다. 그 당연함을 내가 누리지 못하는 건 퍽이나 슬픈 일이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갖고 집을 넓혀가는 평범한 일상이, 평범한 삶이 그렇게 힘든 건 줄은 삶을 겪으면서 알게 되었다. 임신역시 평범하지만 평범할 수 없는 삶이라는 것을 2년의 노력 끝에 나의 노력이 부질없음을 깨닫고 그만두기로 마음먹었다.
"괜찮아, 난 여전히 자기를 사랑하고 앞으로도 사랑할 거야. 둘이 더 좋지."
위로해주는 남편이 너무나도 고맙고 미안하고 감사했다. 그리고는 바로 시댁으로 달려가 크게 말했다.
"우리는 아이 없이 둘이 살 거야!"
2년간 아이를 낳으라고 단 한마디도 하지 않으셨던 고마운 시부모님이셨다. 그런데 남편의 선언에 많이 당황하심을 보였다. 그리고는 답을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 남편은 나를 데리고 시댁을 나섰다. 걱정이 한아름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시원한 마음도 들었다. 이제는 나는 출산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남편과 둘이서 살아갈 미래를 그리기로 마음을 먹었다. 아이를 낳으면 어떻게 살지에 대한 고민은 싹 가져다 버리고 둘이서만 행복하게 단단하게 살아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임신을 하였다.
정말 마음을 내려놓고 임신에 대한 생각도 접은 채로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갔다. 그 동안 임신 준비로 취직도 미뤄둔 상태였지만 당당하게 임신을 하지 않을 거란 말과 함께 한 입사와 동시에 임신을 하였다. 너무도 죄송하고 죄스러운 마음이 가득했지만 다행히 사장님은 축하를 해 주셨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나는 일을 하며 출산준비를 했었다. 출산을 하고 백일이 지나면 아이를 보육시설에 맡기고 다시 일할 생각이었다. 그렇기에 100일부터 받아주는 어린이집을 찾는 게 제일 큰 미션이었다. 집 근처 어린이집도 찾아두었고 나는 열심히 일을 하던 어느 날 아랫배가 뭉쳐오기 시작했다. 8개월 차 배뭉침이 있는 시기라서 그런 줄 알았는데 의사 선생님은 단호한 말씀을 하셨다.
"일을 선택하던지 아이를 선택하던지 하세요. 더 이상 무리하면 아이에게 위험해요."
단단하게 버텨주던 아이인 줄 알았는데 힘겹게 버티고 있었는지 아이는 밖으로 미리 나올 준비를 하고 있었다. 결국 사장님께 말씀드리고 일을 관둘 수밖에 없었다. 조산기는 일을 관두자마자 바로 잡혔다. 나도 모르게 무리를 하고 있었나 보다. 한달을 집에서 누워지내며 아이 만날 준비를 했다. 아이는 아주 건강하게 자라고 건강하게 태어났다. 나도 엄마가 처음인지라 아이가 처음인지라 모든 것이 낯설었다. 설렘과는 다른 낯섦이 나를 감싸고 있었다.
"안녕, 아가야."
이름조차 낯선 아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내 품에 포옥 안겨있었다. 초복에 태어난 아이는 태열이 심했다.
신생아는 꼭꼭 싸주라는 말에 한여름에 너무 싸맸는지 태열이 점점 올라 양 볼에서 고름이 쏟아져 나왔다.
병원에 가니 시원하게 해 주란다. 하루 24시간 나의 모든 시선이 아기에게 집중이 되어 있었다. 남편도 가급적이면 빠르게 집으로 와서 나를 도와주었다. 잠을 잘 수 있게 배려도 해주고 밥을 먹을 수 있게 배려도 해주었다. 남편이 오면 밥을 먹고 잘 수가 있었다.
한낮의 기온은 40도를 넘어서고 뉴스에서는 연일 기록적 더위라고 떠들고 있었다. 어른들도 당해낼 수 없는 더위에 이제 태어난 아기가 버틸 더위가 아니었다. 에어컨은 24시간 내내 돌아가고 1달이 넘도록 에어컨은 꺼지질 않았다. 에어컨바람을 쐬는 아이는 콧물이 나기 시작했고 추울까봐 이불을 덮으면 태열이 심해져 피부에서는 고름이 터졌다. 정말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갔다. 엉덩이는 다 짓물러서 내가 해줄수 있는거라곤 울면서 온몸에 스테로이드 연고를 발라주는 것 뿐이었다.
"미안해, 아가야."
백일이 지나면 괜찮아 질 줄 알았는데 아이의 태열은 아토피로 바뀌었다. 어린이집에 맡기고 일을 하기로 했는데, 엄마 일해야 하는데, 또 죄송한 마음으로 사장님께 연락을 해서 일 못하게 되었다고 말을 했다.
"아기 괜찮아지면 나와요, 기다릴께요.'
정말 감사한 사장님이셨다. 하지만 아이는 괜찮아지지 않았다. 다행히 잘 먹고 잘자고 잘 노는 아주 건강한 아기였지만 딱 하나, 피부가 말썽이었다. 좋다는 보습연고도 바르고 당시 모유수유하던 나는 채식과 절식위주의 식사를 하였다. 그러다 문득 집에 사둔 천기저귀 꾸러미가 생각이 났다. 일회용기저귀를 벗겨내면 엉덩이가 짓물러 있었지만 천기저귀를 잠시 하고 있을때는 엉덩이가 보송해졌다. 앞뒤 가릴것 없이 시작한 천기저귀가 그렇게 시작이 되었다.
처음에는 15장의 땅콩기저귀로 시작했다. 친정엄마랑 갔던 베이비페어에서 스타트세트라고 산게 15장들이 땅콩기저귀였다. 그런데 신생아는 오줌을 뭐 그리 자주싸는지 하루에 15장을 다 썼다. 다시 빨고 말리는동안은 일회용 기저귀를 사용할 수 밖에 없었다. 큰 마음 먹고 인터넷에서 35장을 마저 더 들였다. 그렇게 기저귀는 50장이 되었고 한무더기는 빨고, 한무더기는 말리고, 한무더기는 사용하는 사이클을 돌리게 되었다. 하루종일 아이 궁딩이 보면서 언제싸나 찔러도 보고 아이에게 말도 걸어주고 힘들지만 달콤한 제로웨이스트 육아가 시작되었다. 기저귀를 일회용에서 천기저귀로 바꾸었을 뿐인데 쓰레기 양이 팍 줄어들었다. 매일 20L 종량봉투를 채우던 기저귀가 사라지자 어딘지 모르게 마음이 편했다. 저 쓰레기 매일 버리는것도 참 일이다 했는데 그 줄어든 쓰레만큼 마음이 편안해졌다.
신생아 시절 집으로 오셨던 산후도우미께서 물티슈가 너무 차가우니까 따뜻한 물에 한번 빨아서 아기 엉덩이를 닦아주라고 하셨다. 아기가 놀라지 않게 잘 닦아주라고 말이다. 그래서 물티슈도 잘 온수에 빨아서 아기 엉덩이를 닦아주었다. 하루는 아이를 데리고 마트에 장을 보러갔다. 아기들이 그렇듯 외출해서는 똥도 잘 싼다. 급하게 수유실을 찾아 아기 엉덩이를 닦아줘야 하는데 온수를 찾을수가 없었다. 다행히 수유실에는 물티슈가 비치되어 있어서 아기 엉덩이를 수유실에 있는 물티슈로 잘 닦아 뒤처리를 했다. 장도 무사히 보고 집으로 왔는데 다음 날 아이는 자지러지게 울기 시작했다. 급히 병원으로 데려가니 엉덩이가 또 문제였다. 약하게 화상입은것 같다는데 특별한 이벤트라고는 마트 수유실에서 사용한 물티슈가 다였다. 결국 나는 또 스테로이드연고를 처방받고 울면서 아기 엉덩이에 바르고 있었다. 그 동안 물티슈를 빨아 쓴데다가 집에서는 거즈 손수건을 물티슈 대신 사용하고 있었다. 어차피 기저귀 빨대 같이 빨면되기도 하고, 물티슈 빠는거나 손수건 빠는거나 비슷해서 손수건으로 엉덩이를 닦아주고 있었다. 외출해서 사용한 물티슈 속 화학물질이 아기 엉덩이를 화상입게 하였고 난 또 울었다. 그렇게 우리집에서 물티슈도 아웃이 되었다.
사실 나는 일회용신봉자다. 커피는 종이컵에 먹는 믹스커피가 제일 맛있다. 편의점이나 식당에서 먹는 나무젓가락이 훨씬 위생적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소독을 한다고 하지만 모든 식당이 식기를 잘 소독할까? 란 생각에 나무젓가락은 한번 쓰고 버리니까 위생적이라고 생각을 했다. 설거지가 너무 싫어서 배달해 먹는 음식이 좋았다. 물로 헹구어서 버리면 그만이니까. 청소도 귀찮아서 물티슈를 사다놓고 슥슥 닦고는 휴지통에 쏘옥 넣으니 세상 편했다. 걸레 빨면 손목도 아프고 널었다가 거두기도 귀찮으니까. 빠르게 소비하고 게으르게 퍼저있는게 너무도 좋은 나다. 특히나 좋아했던건 요구르트 1줄에 빨대를 5개 꼽아놓고 마시는거다. 작은 요구르트 까는것도 귀찮고 그렇다고 빨대를 옮기는것도 귀찮아서 아예 처음부터 빨대 5개를 꼽아놓고 쭈욱 쭈욱 쭈욱 마시는걸 좋아한다. 다 자본주의의 산물이고 나는 그런 자본주의 소비를 누리는게 현대인의 미덕이라고 생각을 하고 살았다. 그런 일회용의 댓가를 나의 아이들이 겪는줄도 모르고 말이다.
여린 아기는 작은 환경의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을 했다. 결국 집안의 모든걸 친환경으로 바꾸기로 마음먹었다. 힘이 들어도 창문을 열어 환기하고 빗자루로 바닥쓸고 걸레를 꺼내 닦기 시작했다. 음식도 채식 위주로 바꾸고 비싸더라도 유기농 친환경 식재료를 구매하였다. 비싸니까 먹는 양을 줄이기 시작했다. 가급적 배달은 시켜먹지 않고, 집에서 사용하던 나무젓가락도 전부 집어넣고 구석에 있던 식기류를 꺼냈다. 세제도 1급 친환경 세제로 바꾸고 수세미도 진짜 수세미로 바꾸었다. 그렇게 친환경 제품으로 하나씩 바꾸고 있고 쓰레기도 줄여갔다. 어른들은 힘들고 귀찮았지만 아이의 피부 발진은 눈에띄게 좋아졌다. 귓볼이 찢어져 피가 흐르던것도 멈추었다. 지금은 '우리아기 아토피가 있어요.' 라고 말하면 믿지 않을만큼 건강하게 자라나 주었다.
그렇게 나는 지구도 환경도아닌 나의 아이를 위해 제로웨이스트의 길을 걷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