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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림이스트 포로리 Jun 13. 2023

육아의 시작

그렇게 나는 이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귀한 아이였다. 어느 집 아이가 귀하지 않겠냐만 나에게 귀한 아이였다. 2년간의 난임 끝에 얻은 귀한 아이였다. 요즘은 이유 없는 난임에 시달리다 보니 병원에서도 딱히 해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렇게 귀하게 얻은 귀한 아이였다.     


출산의 기쁨도 잠시 아이에게는 작은 이벤트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출산병원에 딸린 조리원에 예약 했는데 조리원에 자리가 없단다.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지만 작은 병원의 작은 조리원에는 자리가 없었다. 설마 했던 일이 먼저 일어났다. 난 고스란히 병실에서 조리원 빈방이 나기를 기다려야만 했다.     

그래도 꾸역꾸역 산모들이 모여있는 곳에 가서 인사도 하고 같이 대화도 하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여기 말고 내가 다른 곳 예약하자고 했잖아. 이게 뭐야!"     

          

잘 지내려고 노력했지만 요동치는 호르몬 때문인지 불편함 때문인지 모든 설움을 신랑에게 쏟아내고 있었다.  당시 내가 가고 싶었던 조리원은 최신 시설의 깔끔한 고급 조리원이었다. 가격은 2주에 330만 원이나 하는 고급 산후조리원이었다. 침대부터 모든 시설이 깔끔하기 그지없었다. 다만 출산하는 병원에서 차를 타고 30분이나 가야 하는 위치와 신랑이 퇴근하고 나면 출퇴근 시간에 겹쳐 1시간이 넘게 걸려서 와야 하는 부담감도 있었다. 사실 경제적인 게 제일 컸을 것이다. 그래서 병원에 딸린 작은 조리원에 들어가는 대신 조리원 나와서는 산모 도우미를 2주를 더 쓰는 것에 합의를 보았다.     


작은 조리원은 2주의 140만 원으로 내가 보았던 그 고급 조리원의 절반도 안 되는 가격이었다.      

시설은 말해 무엇하랴. 방은 무슨 60년대 여관방 같은 느낌에 침대 하나 겨우 들어가는 작은 수용소 같은 느낌이었다. 그나마 위로가 된 것은 집에서 도보 10분 거리라 신랑이 언제든 퇴근해서 올 수 있다는 장점은 있었다.               


돈은 돈대로 내고 조리원은 들어가지도 못하고 병실에서 일주일이나 있었다.     

병원 침대에서 누워있자니 허리는 부러질 듯 아프고 방이 아닌 병실에서 오는 나는 눈치 아닌 눈치를 봐가며 조리원 방이 없어 병실에 있다는 해명 아닌 해명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고 겨우 병실이 하나 생겼다. 룰루랄라 신나게 짐을 싸서 방으로 옮겼는데 그날 아이가 이상했다.        

       

"컥. 켁. 컥"            

   

이상한 소리를 내며 젖을 잘 빨지 못했다. 먹성이 좋은 아이 인지라 젖도 금방 잘 물고 분유도 벌컥벌컥 먹어 간호사분들이 1등으로 분유 먹여 재울 정도였던 아이였다.     

          

"아이가 이상해요. 감기일까요? 기침해요."     

"신생아는 감기 안 걸려요."          

     

나의 질문에 돌아온 건 짜증 섞인 짧은 답변 하나였다.      

그래도 느낌이 이상해서 아침마다 회진을 도는 의사 선생님께 다시 말씀드렸다.      

         

"아기가 이상해요, 선생님."               


친절한 의사 선생님은 아기를 보더니 어서 큰 병원으로 옮기라는 답을 주셨다.       

        

"신생아는 감기 안 걸린다고 간호사 선생님이 말씀하셨는데요."     

"누가 그런 말을 해? 신생아는 사람 아니야?"          

     

버럭 간호사들에게 소리를 지르는 선생님은 전염성이 의심된다며 어서 큰 병원으로 가보라고 재촉하셨다. 나의 아이가 귀한 만큼 다른 아이들도 귀하니 어쩔 수 없는 거지만, 나는 병실 침대에서 폭신한 침대로 겨우 옮겼는데 잠도 못 자 보고 쫓겨났다. 남은 1주일의 금액은 환불 해주신다고 했지만 난 조리원 침대에서 잠도 못 자봤는데 1주일의 비용을 내려니 너무도 아까웠다.        

       

"그러게, 여기 말고 거기에 갔더라면 이런 일이 없었을 거 아니야!"             

  

난 또 울화가 치밀어 신랑에게 쏟아부었다.     

신랑은 그저 미안하다고 할 뿐인데 그 모습이 또 부아가 솟아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모세기관지염은 전염성도 높지만, 신생아에겐 위험한 질병이라 예후가 좋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이 나를 더욱 날카롭게 만들뿐이었다.         

      

신생아를 받아주는 큰 병원에 가서 정밀 진단을 한 결과 다행히 모세기관지염은 아니었다. 때는 기온이 40도로 치솟아 올라 가마솥더위라고 연일 뉴스가 나오던 날이었다. 에어컨 영향으로 그런 것 같다며 에어컨을 끄고 있으면 괜찮다고 말해주었다.            

   

문제는 날씨였다. 7월 한낮의 기온이 40도. 30도만 넘어도 더운데 40도라니.     

이런 날씨에 에어컨을 틀지 말라니 미칠 노릇이었다. 신생아라고 또 꽁꽁 싸매는데 에어컨은 켜지 말라니 기침은 하지 않았으나 다른 문제가 생겼다. 온몸이 땀띠가 모자라 얼굴에서 하얀 여드름이 생기더니 이내 고름이 쏟아졌다. 태열이 심한 거라며 조금 지나면 나을 거라고 했지만 얼굴에서 노란 고름을 쏟아내는 아기를 보니 이건 다른 의미로 환장할 노릇이었다. 태어난 지 한 달도 안 된 아기에게 항생제에다 이제는 스테로이드 연고를 온몸에 바르려니 못 할 짓 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안 되겠다 싶어서 다시 에어컨을 켰다. 피부가 괜찮은가 싶다가도 다시 고름을 쏟아내기를 반복했다. 온갖 보습제에 연고에 좋은 걸 다 써도 피부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피부 접힌 곳곳이 짓무르고 벌겋게 변했다. 내 가슴이 짖무르는 것 같았다.               


그러다 우연히 천 기저귀가 생각이 났다. 피부에는 천 기저귀가 좋다지 아니한가.     

일회용 기저귀 치우고 천 기저귀를 썼다.      

당연하게도 천 기저귀 쓴다고 바로 피부가 좋아지는 건 아니다.     

그래도 무엇인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천 기저귀를 하며 아이를 돌보기 여념이 없었다.     


그렇게 아이는 자라 100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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