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르지만 천기저귀 육아를 하고 있습니다.
첫 시작은 15장의 땅콩 기저귀였다. 아기가 장염에 걸리면 천 기저귀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는 말을 또 어디서 들었다. 만삭의 배를 안고 기쁜 마음에 친정엄마와 함께 베이비페어에 갔다. 여기저기 구경하다 무루 땅콩 기저귀 15장짜리 스타터 세트를 사주셨다. 덤으로 포대기도 사주셨다. 전통 육아가 아이의 정서에 좋다는 말도 어디서 들었기에 포대기도 함께 구매했다. 육아용품은 또 다른 세계였다.
아기가 태어나면 그냥 젖병에 분유만 타서 주면 될 줄 알았다.
기저귀야 뭐 그냥 갈면 되는 줄 알았다. 그게 끝인 줄 알았는데 이는 나의 교만이었다. 육아는 새로운 신세계를 경험하는 곳이었다. 분유를 먹이기 위해서는 젖병도 필요하지만, 젖병을 닦을 솔이 필요했다. 젖병 세제도 필요하고, 젖병소독기도 필요했다. 공갈 젖꼭지도 필요하고 치발기에 딸랑이도 필요했다. 잘 잘 수 있는 침구도 아기침대니, 범퍼 침대니 끝이 없었다. 머리가 이뻐지라고 두상 베개란 것도 있었다. 포대기만 있는 줄 알았더니 아기띠야 슬링이야 힙시트야 세상 종류가 다양했다. 옷도 배냇저고리 내복 슈트 이건 뭐 끝이 없는 퍼레이드였다. 모유 수유하면 간편한 줄 알았더니 유축기는 무엇이며 모유 저장 팩이란 것도 필요했다. 통곡 마사지란 것도 있고 이건 나열하다 보면 끝이 없는 그런 세계와 조우하고 있었다.
필요하면 사야지 했던 것은 일주일에 한 번씩 필요한 물건이 생기고 있었다. 나도 모르는 아이템들로 꽉꽉 들어차고 있는 이 현대사회에서 딱 하나 역행하는 나의 선택이 바로 그 천 기저귀였다.
아이의 발진에 좋을까 싶어 15장으로 시작한 천 기저귀는 3시간 만에 끝났다. 오줌을 많이 싸는 것도 아닌데 찔끔찔끔 싸다 보니 3시간 만에 15장은 끝났다. 세탁하고 건조하는 동안 사용할 천 기저귀가 없었다. 부랴부랴 기저귀를 30장 추가 주문을 했다. 세탁하고 건조하고 사용하는 시간으로 해서 30장이면 넉넉할 줄 알았던 내 생각은 또 빗나갔다. 소변뿐만 아니라 대변을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덕분에 또 추가로 20장을 주문하면서 기저귀 부자가 되었다.
매일 아침 세탁기를 돌리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던 나에게 또 다른 난관이 봉착했다. 그것은 바로 기저귀 건조였다. 기저귀를 널고 나면 신랑과 나의 옷을 널 공간이 없었다. 때마침 건조기가 새롭게 나와 신나게 TV에서 광고가 나오고 있었다. 이제는 기저귀 덕분에 건조기까지 구매하게 되었다. 점점 일이 커지는 느낌.
그렇다고 힘들거나 불편한 건 없었다. 아이가 잘 놀다가 갑자기
"잉~"
하면 소변을 보고 있었다. 이 과정이 너무도 재미가 있어서 아이를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처음에는 낮에만 천 기저귀를 사용하다가 밤에 잘 때도 사용해보고 외출해서 사용하는지 보니 점점 천 기저귀가 익숙해졌다.
무엇보다 신난 건 나 혼자 천 기저귀를 하는 게 아니라 천 기저귀 동지를 만났다.
천 기저귀 동지들은 신나게 서로의 무용담을 공유하며 일주일이 멀다 하고 만났다. 혼자 하는 육아가 아니라 함께하는 육아여서 즐겁기만 했던 양육 시간이었다.
무한히 즐겁기만 한 건 아니었다. 천 기저귀라고 하면 옛날 소창 둘둘둘 기저귀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인지라 제일 먼저 질문은
"괜찮아?"
였다. 응 나 괜찮아.
"빨래는?"
세탁기가 빨래하지요. 옷 속옷 전부 세탁기가 하는데 기저귀도 세탁기 돌리면 되지요.
"그러면 똥은?"
애기똥인데 뭘요. 세탁기로 빨아서 햇볕에 널어두면 똥 자국도 없이 깨끗합니다
일일이 설명하는 그것도 나중에는 지쳐갔다. 그러다 차츰 주변에서 나는 천 기저귀 하는 독특한 엄마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 무엇인들 어떠리 내 아기만 좋다면 좋은 것인데 말이야. 무엇보다 좋은 건 아이의 피부였다. 피부가 접히는 부분에서 나던 진물도 사라지고 얼굴에서 나오던 고름도 사라졌다. 뽀송한 아기 피부로 돌아와 기분이 너무 좋았다. 또 기저귀를 사용하다 보면 나오던 쓰레기가 없어서 더 좋았다. 신생아 때는 기저귀가 하루가 멀다고 쓰레기통을 채우더니 천 기저귀를 사용하면서 쓰레기가 줄었다. 버릴 게 없이 재사용하다 보니 쓰레기가 줄어서 너무 좋았다. 은근히 아깝던 쓰레기봉툿값을 아끼니 뿌듯함도 밀려왔다. 가장 큰 건 치수에 대한 고민이 없었다는 거다.
사람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천 기저귀는 구매해서 기저귀 뗄 때까지 쓴다. 스냅단추로 길이를 조절해가면서 사용하면 키가 크면 옆으로 단추를 더 늘려주면 되는 거였다. 빨아 쓰다 보니 애착 아닌 애착도 생겼다. 무엇보다 가장 고마운 건 묵묵히 도와준 신랑이었다. 다들 일회용을 쓰자 어쩌자 한다는데 신랑은 퇴근하고 아이 기저귀도 빨아주고 기저귀도 개 주면서 육아를 적극적으로 도와주었다는 거다. 신랑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아마 끝까지 하지 못한 육아가 되지 않을까 싶다. 다들 부지런하다가 칭찬해주는데 나처럼 게으른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싶다. 그래서 나는 대답한다.
"게을러서 천 기저귀 해요."
기저귀 시기 맞추어 사는 게 귀찮아서, 사이즈 봐가면서 바꾸어 주는 게 귀찮아서, 쓰레기 버리러 나가는 게 귀찮아서 천 기저귀를 쓴다. 빨래는 세탁기가 하고 건조기가 한다. 바구니에서 꺼내서 채우면 그만이고 똥을 싼 기저귀는 저녁에 신랑이 빨아준다. 아아 게으른 나란 사람. 싸면 바로 갈아주는 게 귀찮다지만 일회용도 어느 정도 싸고 나면 갈아주는 게 맞지 않나? 어차피 아이가 기저귀 떼기 전까진 그냥 다 귀찮다. 번거롭고. 그럼에도 우리 아기들은 열심히 자라서 기저귀 떼니까.
그렇게 첫째를 천 기저귀로 키우고 나니 둘째도 자연스럽게 천 기저귀로 크고 있다. 재미있는 건 형이 쓰던 천 기저귀 고대로 물려받아 사용하고 있다는 거다. 기저귓값 굳었다. 올래!
오늘도 나에게 괜찮냐고 물어보면 나는 또 대답한다.
"제가 좀 게을러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