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초가을 연세대 교수였던 마광수씨가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세간에서는 그를 일컬어 ‘시대를 앞서간 비운의 작가’, ‘시대와 불화한 자유주의자’, ‘품위를 잃은 엘리트’ 등으로 다양하게 평가했지만, 그의 죽음이 자연스럽지 못했던 탓인지 대중매체에서는 고독하게 생을 마감한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
마광수 교수는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수석으로 입학하고 졸업한 보기 드문 수재였으며, 교수가 된 이후에는 한국문학의 지나친 교훈성과 위선을 꼬집는 등 현대 우리 사회의 고상한 척하는 시류를 노골적으로 비판하는 개방된 의식의 소유자이자 거침없는 행동파 지식인이었다.
그는 문학의 실제 효용 가치를 본능적 욕구의 배설에 있다고 보고, ‘몸의 철학’, ‘육체주의’ 등에 주목하였으며, 그런 그의 성향은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가자, 장미여관으로』 등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는 육체 탐미적 작품으로 표출되었다.
그의 작품 중 가장 문제가 되었던 것은 1992년 출간된 소설 『즐거운 사라』였다. 내용이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문학계로부터 무차별적인 비난과 동시에 ‘음란 교수’라는 낙인이 찍혔고, 급기야 강의하는 도중 서슬 퍼런 군사정부 공안 당국에 의해 연행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순식간에 직장을 잃은 그는 한동안 집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며 멍하니 지내는 삶을 살았는데, 이런 결과를 두고 한 언론은 마광수가 한 여자 때문에 일생을 망쳤다고 하면서, 그 여자는 바로 그의 작품 속 주인공인 ‘사라’라고 했다.
요즘 거리에는 음란성 잡지들이 넘쳐나고, 범람하는 개인 방송은 노출 정도가 심할수록 인기가 높으며, 죄악시되었던 간통죄조차도 헌법재판소가 성적 자기 결정권과 개인의 사생활 보호를 이유로 폐지하였으니, 아마도 『즐거운 사라』가 지금 출간되었다면 음란성 논란에 휘말릴 일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협곡을 흐르는 물이 일단 바다로 나아가면 전혀 다른 성격의 물이 되듯 누구에게나 상식처럼 여겨지는 사회적 통념이란 것도 당시를 지배하는 일시적 유행에 불과할 뿐 시대를 관통하는 부동의 진리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시간이 갈수록 변화의 속도는 더해가고, 조그만 신소재 하나의 발명으로 전통처럼 굳건했던 기술들이 한순간에 쓸모없는 낙엽처럼 뒹구는 세상이 되었다. 아무리 당대에 대세를 이루는 것이라도 새로운 환경이 도래하면 그에 걸맞은 사고의 전환과 대응이 이루어져야 하며, 그런 과정이 원활치 못하면 어김없이 도태의 과정을 밟게 된다.
1881년 “버튼만 누르세요. 나머지는 우리가 다합니다”라는 슬로건과 함께 창립하여 131년 동안 전 세계의 필름 시장을 주름잡던 코닥(Kodak)이 2012년 1월 미국 연방법원에 파산신청을 한 것도 새로운 시대적 조류에 적응하지 못한 전통의 몰락이었다.
한때 세계 필름 시장 90% 점유율을 기록하며 영원히 황금기를 누릴 것 같았던 코닥이 몰락하게 된 것은 다름 아닌 디지털카메라의 등장 때문이었다. 1998년 디지털카메라가 출시되면서 필름 카메라의 입지가 위축되었고, 그에 따라 필름 수요가 급감하면서 수익이 줄어들어 파산을 맞게 된 것이다.
「블룸버그 통신」의 전문가 그룹은 코닥이 몰락한 것은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적응을 거부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그들은 코닥이 1975년 세계 최초로 디지털카메라를 개발하고서도 디지털카메라에 집중하지 않고 기존의 필름 산업에 집착한 것을 몰락의 주된 원인으로 지목하고, 이는 회사 중역들이 디지털 시대가 오리라는 예견을 하면서도 당시 잘 나가는 필름 시장에서 과감하게 손을 떼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프랑스의 진화론자인 J. 라마르크는 “생물에는 환경에 대한 적응력이 있어서 자주 사용하는 기관은 발달하고, 그렇지 않은 기관은 퇴화한다”는 것으로 요약되는 ‘용불용설(用不用說)’을 주장하였다.
라마르크는 1809년 출간한 『동물 철학』에서 동물의 형질이 변화하는 과정을 “동물이 어떤 기관을 다른 기관보다 더 자주 쓰거나 지속해서 사용하게 되면 그 기관은 사용 시간에 비례하여 점차 강해지고 발달하며 크기도 커지게 된다. 반면 어떤 기관을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으면 그 기관은 점차 약화하고 기능도 쇠퇴하여 결국 사라지게 된다”고 설명하였다.
그는 용불용설의 개념을 설명하면서 기린의 목이 늘어나는 과정을 예로 들었는데, 기린은 평생 높은 가지에 있는 잎을 먹기 위해 목을 늘리는 것을 되풀이하여 목이 점점 늘어나게 되었다고 설명하고. 기린의 목이 늘어나는 원인을 ‘완벽함을 향한 자연적인 경향성’이라고 했다.
처음에는 분명 인간의 생존에 중요한 역할을 했을 맹장이 지금은 삶에 불편함만을 주는 천덕꾸러기 신체 기관이 된 것처럼 시간이 흐르고 여건이 변화하면 진리처럼 여겼던 것도 언제든 폐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
고대 그리스의 대표철학자인 플라톤은 『국가론』에서 인간이 또 다른 인간을 종처럼 부리는 노예제도를 지극히 당연한 사회현상으로 보았고, 오늘날 가장 이상적인 정치체제로 여기는 민주정치를 “겉으로는 훌륭해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온갖 무질서와 혼란을 발견하게 된다”고 혹평하였으며, “철인(哲人)에 의한 통치가 가장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정치체제”라고 역설하였다.
서구 철학사의 가장 영향력 있는 중심인물로 평가되는 플라톤의 이러한 정치관은 오늘날의 보편적 세계관에 비추어 볼 때 망언에 가깝다.
시류에 편승하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과거의 고루한 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수구적 태도만큼은 생존을 위해서라도 버려야 한다.